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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5 화/ 삶의 터를 생명과 해방의 터로 바꿔주시는 주님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4 조회수2,818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22주 화, 루카 4,31-37(17.9.5)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으십니까?”(루카 4,34)




The cure of a demoniac in the Synagague





 

삶의 터를 생명과 해방의 터로 바꿔주시는 주님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활동은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내쫓는 일입니다. 옛 사람들은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 특히 질병은 마귀의 짓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병을 고치려면 마귀를 쫓아내야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병의 치유로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몹시 놀랍니다. 왜 놀랐을까요? 그것은 율법학자들의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가르침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가르침과 선포를 구체적인 해방의 실천에 적용하셨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억압과 차별, 질병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끼어드시어 해방을 가져다주는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소외시키는 그 삶의 관계에 파고드시어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시고 해방의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다시 말하면 관계를 단절시키고, 소외와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행동과 활동이 마귀의 영의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하고, 비인간화 하며, 국민을 속이고 조작하는 이념, 거짓 뉴스와 선전,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와 체제 안에 마귀의 영이 꿈틀거립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가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하고 크게 외칩니다(4,34).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거라.”(4,35)하고 꾸짖으시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마귀에 들린 이에게서 나갑니다.

오늘날 ‘더러운 마귀의 영’은 누구일까요? 마귀의 영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거스르는 모든 실체입니다. 마귀는 하느님과 우리, 나와 이웃, 나와 피조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오늘의 마귀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과 백성을 속이고 짓밟으며 착취하는 이들입니다.

나 자신이 관계를 단절시키고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더러운 마귀의 영’이 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그분의 말씀의 진리에 따라 행동하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드러내야만 하겠지요.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도외시하지 않고 첫 자리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처럼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과 권력, 불의한 자본 권력 등 기승을 부리며 비인간화를 재촉하는 오늘의 마귀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부패, 초자본과 빈곤층의 극심한 양극화 속에 인간의 삶을 비참으로 내모는 마귀의 장난을 방치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터가 마귀의 영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의 혼과 구체적인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소외를 극복하고 더욱더 인간답고 자유로운 ‘생명과 해방의 터’가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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