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5 조회수1,93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7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 1테살 5,1-6.9-11

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복음 루카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저는 지금 현재 강아지

(‘개’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너무 커서요.)

3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 밖에서 키우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이 개들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어떤 때에는 외출을

나가야하기 때문에 겨우

하루에 두 번 정도

함께 산책하면서

놀고 난 뒤에

밥을 주는 정도입니다.

작년 초에 먼저 두 마리를

성지로 데려오게 되었는데,

이 개는 누군가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즉, 제게 왔을 때에는

이미 다 커서

(현재 6살, 3살입니다)

전 주인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을 때였지요.

래서일까요?

틈만 나면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러도

본체만체하고 가까이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 큰 개를 키우기란 쉽지

않다는 누군가의 말에 깊이

공감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워낙 귀엽고 예뻐서

더 많이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전에는 앞발만 잡아도

 “깨갱”대며 질색을 하던 개가

오히려 이제 제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면서

몸을 제 다리에 비비면서

친밀감을 표시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요?

자그마치 1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나 포기하지 않고

‘좀 더’라는 관심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는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종 주님을 느끼기가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성당에 가도 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주님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느끼기도 힘들고,

미사를 비롯한

성사 생활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몇 번

시도를 해보고서는

 “나와는 안 맞아.”라면서

포기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는

소리를 지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귀도 알아보는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괜히 슬퍼지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제는 예수님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좀 더’라는

관심을 갖고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성사와 기도 생활에 ‘좀 더’

충실해보고, 성경 읽기에

‘좀 더’ 집중해보고,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랑도

 ‘좀 더’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위와 힘으로 더러운

영들도 힘을 잃고 나가버립니다.

우리 곁에 있는 악 역시 주님께

다가가 주님의 권위의

 힘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좀 더’ 노력하면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상황에서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자신의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엘리너 루스벨트)

새벽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움직이면 됩니다."

젊은 농부 한 명이

배를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쪽에서 배 한 척이

빠른 속도로 강물을 따라

그의 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농부는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방향을 바꾸세요.

그러지 않으면 제 배와 부딪쳐요.”
문제의 배는 농부의 배를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결국

두 배는 부딪쳤습니다.

젊은 농부는 “멍청이 같으니라고!

이렇게 넓은 강에서 어떻게

내 배와 부딪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쳤잖아!”

라면서 화를 냈습니다.
농부는 책임을 물기 위해

배의 안쪽을 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계류용 밧줄이 풀려서

강물을 따라 표류해 내려오던

텅 빈 배였던 것이지요.
농부는 소리를 질러 경고했고

신의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맞습니다. 농부가 먼저

자신의 경로를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부딪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만 늘 책임을

묻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내가 먼저 움직이면 어떨까요?

새벽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멋지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