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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06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6 조회수1,91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06 () 가해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Wednesday of the Twenty-second Week in Ordinary Time

콜로새서 1,1-8 / 코린토 13,1-9
루카복음 4,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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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Reading 1


Col 1:1-8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and Timothy our brother, to the holy ones and faithful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in Colossae: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We always give thanks to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en we pray for you, for we hav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and the love that you have for all the holy ones because of the hope reserved for you in heaven.
Of this you have already heard through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that has come to you.
Just as in the whole world it is bearing fruit and growing, so also among you, from the day you heard it and came to know the grace of God in truth, as you learned it from Epaphras our beloved fellow slave, who is a trustworthy minister of Christ on your behalf and who also told us of your love in th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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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 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Reading 1


1 COR 3:1-9

Brothers and sisters, I could not talk to you as spiritual people, but as fleshly people, as infants in Christ.
I fed you milk, not solid food, because you were unable to take it.
Indeed, you are still not able, even now, for you are still of the flesh.
While there is jealousy and rivalry among you, are you not of the flesh, and walking according to the manner of man?
Whenever someone says,
I belong to Paul, and another, I belong to Apollos, are you not merely men?

What is Apollos, after all, and what is Paul?
Ministers through whom you became believers, just as the Lord assigned each one.
I planted, Apollos watered, but God caused the growth.
Therefore, neither the one who plants nor the one who waters is anything, but only God, who causes the growth.
He who plants and he who waters are one, and each will receive wages in proportion to his labor.
For we are God
s co-workers; you are Gods field, Gods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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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Gospel


Lk 4:38-44

After Jesus left the synagogue, he entered the house of Simon.
Simon's mother-in-law was afflicted with a severe fever, and they interceded with him about her.
He stood over her, rebuked the fever, and it left her.
She got up immediately and waited on them.

At sunset, all who had people sick with various diseases brought them to him.
He laid his hands on each of them and cured them.
And demons also came out from many, shouting, "You are the Son of God."
But he rebuked them and did not allow them to speak because they knew that he was the Christ.

At daybreak, Jesus left and went to a deserted place.
The crowds went looking for him, and when they came to him, they tried to prevent him from leaving them.
But he said to them, "To the other towns also I must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because for this purpose I have been sent."
And he was preaching in the synagogues of Ju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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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06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일상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가장 가까운 당신의 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주저 없이 그 부인을 찾아가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그 “열을 꾸짖으시니”라는 표현을 보면 열병이란 것이 내 안에 있는 불평불만으로 생긴 화병 같은 것인가 봅니다. 내 안에 분노와 미움을 일으키는 악한 영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기에 마음의 병이 치유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병만이 아니라 육신의 병도 치유하십니다.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어 모든 것을 창조의 질서로 되돌리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전하십니다. 그러자 마귀들이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봅니다. 군중은 그런 예수님을 곁에 오래 두고 싶어 합니다. 수시로 삶을 괴롭히는 병과 고통으로부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외딴곳’으로 가시어 하느님의 뜻을 물으시고, 당신의 소명을 재확인하십니다. 칭송 받고, 영웅시 되는 곳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해방과 치유를 바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선교 사명을 엿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이러한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이 되고, 사람들의 칭송에 안주하지 않으며, 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자기만족에 머물면, 믿음도 이기적 욕망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언제나 예수님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도로 숨을 쉬고 살아야 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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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31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신심 깊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시몬의 장모이지요.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자 즉시 시중을 들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감사의 예를 다하는 자세이지요.
당연한 행동이지만 실생활에서 간과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주님께 절박하게 매달리지요. 하지만 막상 그 일이 해결되면 그만 하느님께 소홀해지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하느님께 받은 것이 있으면, 하느님을 위해 또 다른 봉사를 해야만 합니다.
또한, 오늘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모든 활동을 마치고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활동으로 기도를 대신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활동도 기도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기도와 활동을 병행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무르고 싶은 점은, 예수님께서 또다시 길을 떠나셨다는 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온갖 병을 다 고쳐 주셨기에 예수님께서 그 마을에 머무르신다면 온갖 대우를 다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새로이 낯선 땅을 향해 길을 떠나신 것입니다.
우리도 늘 새로운 임무를 받습니다. 한 가지 일을 끝내고 이제 좀 쉬려 하면 주님께서는 또 다른 일을 맡기지 않으십니까? 피하고 싶기만 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일을 늘 고맙게,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결국, 나 자신이 영적으로 더욱 튼튼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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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02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카파르나움에서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외딴곳에 계신 그분을 발견하고서는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 하고 매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 다른 고을로 가십니다.
군중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보았고, 마귀를 쫓아내시며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주님의 은혜로운 해”(루카 4,19)가 이미 벌써 도래했구나 하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평가가 주님께는 적절하지도 않고 커다란 결례가 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사명을 아주 출중하게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시쳇말로 인기 짱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곳에 머물려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한 장소에, 특정한 사람들에게 매이는 것을 거부하십니다. 그들만의 구원자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그들만을 당신의 지지자로 만들려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날 홀연 떠나서 다른 이들에게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선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곧 기쁜 소식이 아닌를 중심에 세우고 내 주위에 세력을 형성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파견된 사람은 카파르나움에만 남아 있으려 해도 안 되고, 어디를 가든지 늘 카파르나움 사람만 데리고 다녀도 안 됩니다. 물론 이것은 신심 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선전이 아니라, 치유받은 시몬의 장모처럼 조용히 봉사함으로써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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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03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얼마 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60회 생일을 맞아 잔치 대신에 지인들과 함께 저명한 역사학자를 초대해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살펴보는 강의를 듣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십 년 가까이 독일을 이끌면서 유연성과 포용력 있는 태도와 균형 잡힌 정책으로 자국과 국제 사회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젊은 물리학자로서 정치에 입문했을 때 그녀가 이처럼 탁월한 정치력의 지도자로 성장하리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지도력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도 겸허한 마음과 깨어 있는 정신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늘 배우려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겠습니다. 신앙은 깨달음을 통해 넓고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성인들의 삶에서 성숙한 신앙인의 참모습을 배웁니다. 우리가 그분들에게서 얻는 중요한 통찰은 인생에 대한 전체적 태도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인생을 무의식 중에문제로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삶의 문제를해결하는 데만 힘을 기울이다가 지쳐 갑니다. 신앙과 영적 여정 또한 단지 지속적인 문제 해결의 과정으로 여기며 성공과 실패, 업적과 좌절의 관점으로 판단합니다.
성인들은 자신의 삶을 무엇보다하느님의 신비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신비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그 안에 머물며 살아가는 집과도 같았습니다. 우리도 그 신비 안에 머물 때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의문과 아픈 상처도 함께 끌어안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리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을 비롯한 교회의 여러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울 점은 그분이 자신의 일에 도취된 것이 아니라 늘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 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은약함이 자신의 힘이라는 역설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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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04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복음의 등장인물들을 관찰해 봅시다.
첫 번째로 시몬의 장모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해 주십사고 간청합니다. 다른 이를 위한 간청과 기도는 하느님을 기뻐하시게 합니다. 그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시몬의 장모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낫자마자 시중듭니다. 하느님께 얻은 은총이 결코 그 자신을 위한 은총만이 아님을 시몬의 장모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병자들입니다.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의 믿음과 겸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다른 이들의 도움을 통해서도 예수님께 다가서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로 마귀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는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당신이 왜 우리 일을 방해하느냐?’는 투의 항변인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을 붙잡는 군중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깨달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분에 대한 인간적인 집착입니다. 첫 번째의 것은 영적인 만남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 드리게 할 수 있지만, 두 번째의 것은 결국 정화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으신 채 헌신하시면서도 기도하시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는 환대를 뒤로하시고 다른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위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누구를 가장 닮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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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05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한마디 말씀으로 고쳐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 옛날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을 한 말씀으로 이루신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느님 말씀의 힘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과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4,12). 마치 의사가 수술을 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송두리째 열어 놓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몹쓸 것은 도려내고 사람을 살리는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해 보면,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어려움을 이겨 내는 교우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만납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는말씀 나누기를 하는데, 어느 여교우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제 아이는 장애아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런 아이를 보내 주신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제가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저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한 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눈먼 사람을 두고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9,2)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의 죄도 아니며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9,3 참조). 장애아를 둔 어머니는 성경의 이 말씀이 자신을 두고 한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 여교우를 이처럼 변화시켰습니다. 이 모두가 주님 말씀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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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31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용기가 없어서 회사에서는 성호를 긋지 않고 식사를 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그 회사는 타 종교 신자들이 대부분이고 상관마저 열렬한 개신교 신자라 성호 긋는 것이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식사하기 전 크게 성호를 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동료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며 함께 성호를 긋고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자 하나둘,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며 다가와 함께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회사 안에 서른 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모였고, ‘신우회라는 모임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체험담을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용기 있게 표현한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변화되고 신자들의 작은 공동체까지 만들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보자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떠납니다. 어쩌면 그 회사에서 침묵하던 천주교 신자들도 십자 성호를 긋는 그 사람을 보자, ‘당신도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자신도 용기를 내어 성호를 긋게 되고, 그것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자신 안에 있던 어둠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과 나약함을 붙잡고 우리를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에증거자가 되어야 할 신자가 신자임을 드러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주님의 은총에 기대고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강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기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 잘난 사람이 모인 교회가 아니라, 못나고 부족하고 죄스러움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십자 성호를 긋는 우리의 기도 안에는 죄스럽고 나약한 우리를 불러 주신 삼위일체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그분에 대한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성호를 그으면 마귀는당신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고 소리 지르며 떠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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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01)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의 하루 일과를 보여 줍니다. 이 대목을 사람들은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마르 1,21-34)라고 이름 붙입니다. 주님의 하루 일과는 참으로 바쁘십니다. 먼저 회당에서 가르치시면서 더러운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고,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시어,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는 등, 하루 종일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그들을 무거운 죄에서 풀어 주시며 그들과 함께 지내십니다.
사람들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질병은 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병든 이의 질병을 고쳐 주신다는 것은 그를 죄의 고통에서 해방시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질병이 생기는 이유를 속 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간의 질병을 신비에 속한다고까지 말합니다. 질병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찾아다니시며 고쳐 주십니다. 아픈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분을 따르는 우리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아파하고 신음하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고, 또 매일을 기쁜 소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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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02)


사람들은 의학 지식을 앞세워 질병과 믿음을 무관한 것으로 여깁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질병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개입하시면 ‘못 고칠 병’은 없는 것이지요. 다만 그러한 청을 ‘감히’ 못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낫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작심하시고 병자들을 대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시려는 데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질병도 주님께는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의 치유는 ‘그분의 다스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다스림’을 인정하면, 주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십니다. 그리하여 질병을 그분의 손길로 보게 합니다. 병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병이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병을 이기게’ 되는 것이지요.
병을 친구라 생각하면 인생의 또 ‘다른 불가사의’와 우정을 맺는 것이 됩니다. 그 우정을 주님께서 주관하신다고 여기면 마음은 달라집니다. 질병을 은총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주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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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03)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치유의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신 겁니다. 그리하여 무서운 질병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질병은 신비에 속합니다. 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병들어 있습니다. 질병도 ‘인간 본질’의 한 부분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건강만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병 때문에 부정적으로 바뀐 시각을 바로잡아 주신 것입니다. 치유 받은 사람 중에는 좌절이나 포기를 체험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육체의 아픔만이 치유의 대상은 아닙니다. 몸은 멀쩡해도 마음과 정신이 황폐해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개입이 절실합니다. 그분께서 치유해 주셔야 새로운 방향으로 삶이 전개될 수 있습니다. 병자들을 낫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살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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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05)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수많은 환자들을 낫게 하십니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당신께 그러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교회에서 병이 나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의 치유 기적을 여러 사람 앞에서 증언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일까요? 진정으로 그들의 병이 나았을까요? 분명 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신앙으로 병이 낫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든 치유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시는 예수님과 지금 우리가 성체를 통하여 만나는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분이십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하셨다면 성체의 예수님께서도 병을 낫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천 년이 지났다고 해서 그분의 치유 능력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고자 아픈 사람을 낫게 하셨습니다.

의학적인 지식만을 앞세워 질병과 믿음은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질병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확신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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