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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신앙의 열매, 변화)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6 조회수1,368 추천수0 반대(0) 신고

 

"신앙의 열매, 변화"

+ 찬미 예수님

 여러분,

배티에 오시면 좋으십니까?

뭐가 좋으세요?

그런데 배티

다녀가시면 달라지세요?

많이 달라지세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타볼 산에 올라가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십니다.

적혀있지 않지만 아마 모세와

엘리야가 당신 체험담을

얘기하면서 수난 전 예수님께

힘을 실어드렸을 거예요.

큰 성인 두 분을 만난 다음에

예수님은 어떻게 변하세요?

이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에서

 눈부신 아우라(aura)가 퍼지면서

하얗게 변하시죠.

그때 그 순간을 제자들은

잠자느라고 못 봤어요.

 아무튼 배티 오면

좋으시다 했으니

배티에 와서 돌아갈 때는

뭔가 변화가 되어야합니다.

신앙의 열매는

변화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분명히

세 가지가 변합니다.

 첫 번째 얼굴이 변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얼굴은

얼굴빛이 달라요.

걱정과 두려움의

얼굴에서 평화의 얼굴로,

교만에서 가득 찬 얼굴에서

겸손의 얼굴로,

분노의 얼굴에서

용서하는 얼굴로,

굳은 얼굴에서

부드러운 얼굴로,

애늙은이처럼 보이는

얼굴에서 동안으로

 바뀌어 있어요.

 두 번째는 마음이 바뀝니다.

포기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

꾸 움켜지려고만 합니다.

포기와 비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도 같이 커집니다.

그래서 행복은 소유하는 만큼

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포기하는 만큼 옵니다.

우리가 애착하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는

얘기는 뭡니까?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기쁨의 기적을 원하면

욕심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포기하십시오.

암이 낫는 기적을 원하신다면

암까지도 내 몸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것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하십시오.

그 순간에 치유의 은사가

분명히 내려갈 겁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기도하지 않는 봉사자들은

꼭 티를 내요.

유세 떨고 자기 몰라주면

난리법석을 떨고, 또

 시기와 험담을 해요.

그러나 기도하면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들기에 늘 순명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와 봉헌을 해요.

 세 번째로 기도하면 행동의

변화가 오기 시작해요.

소극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바뀌어요.

그리스도 신앙의 추진력은

 앞으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뜨겁게 사는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전례에

임할 때도 적극적이 돼요.

미리 전날 내일 들을 1독서,

2독서 복음을 다 한 번씩

읽어 보고 묵상도 하고

헌금도 새 돈으로 준비해놔요.

그렇게 해서 미사를 할 때는

분심, 잡념이 없고 신부님

강론 말씀이 하나하나가

쏙쏙 귀에 들어오죠.

아무리 신부님 강론

어눌하게 했다 하더라도

듣는 밭이 좋으면 모든 씨앗은

다 싹이 낼 수 있는 거죠.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밭이 문제에요.

왜? 밭이 씨앗보다 비싸잖아.

신부님 강론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어떤 밭으로

 씨앗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봉헌할 때도 적극적이 돼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 봉헌이죠.

내 몸 보신을 위해서는

 1년에 몇 번 보약을 먹으면서도

 헌금 낼 때 잘못하다가

만 원짜리나

만 원짜리가 따라 나오면,

 “언니 왜 나오셔?

들어가서 쉬시지.”

하며 오천 원짜리

벌벌 떨면서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과

일할 힘을 주심에 정말

제일 깨끗한 봉헌을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봉사할 때도

적극적으로 해요.

늘 앞장서서 봉사하다

보면 돌 맞을 때 많아요.

자기는 안 하면서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휘돌림을 당하지 않아요.

담대해져요.

 기도하는 사람은

무절제한 삶에서

절제가 있는 삶으로 바뀌어요.

그 전에는 기도도

기분 나쁘면 안 하고,

날 덥다고 안 하고,

졸린다고 안 하고..

뭔가 기도의 절제도 없고,

사람을 만나는 절제도 없고,

한 번 휴대폰 붙들면

배터리가 뜨거워져

손이 델 정도로 해야 되고,

TV 볼 때도 눈이

새빨개질 때까지 앉아서

봐야 되고. 무절제한 거죠.

절제가 있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내 일생의

마지막으로 알고 살아요.

여러분에게 하루 밖에

안 남아있다고 한다면,

정말로 무절제하게

쓰겠습니까?

우리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내년 이맘때에 이 자리에

몇 사람이 갈지 몰라요.

기도하면 정말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일의

순서를 정확히 알아요.

하느님을 첫째 자리

모시는 게 가장 중요한

시간인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다른 순서를 찾게 되겠죠.

 또 이기적인,

지독한 에고이스틱

(egoistic)한 행

동에서 이타적인

행동으로 바뀌어요.

기도 안하면 죽을 때까지

자기 밖에 몰라요.

철저하게

자기중심으로 살아요.

 지금까지 기도하면 얼굴,

마음, 행동 이렇게

세 가지가 바뀐다고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열매는

변화되는 거라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피정을

들어도 변화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죠.

 자, 기도하면 세 가지가

변하다고 했는데,

기도 못하게 막는 영적인

졸음들이 있습니다.

아까 얘기했죠?

 예수님이 눈부시게 변할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잠에 떨어져서

그 광경을 못 봤다고요.

 성서에서는 첫 번째로

자기 편견이라고 합니다.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절대로

 기도를 못 합니다.

늘 자기의 잣대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자기가 정확하기 때문에

의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에게 분별을 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왜? 내 판단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적 졸음을 깨우는

두 번째는 결핍감입니다.

항상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하느님을 못 만납니다.

본인 자신이

나는 늘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 못 만납니다.

하느님께 용서

청할 일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절대

커지 않습니다.

결핍감, 다른 말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사랑을 못 느낍니다.

용서도 못 받습니다.

받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이 용서해 주고

싶어도 용서를 거부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하면

죄 의식도 커진다고 하시며,

본인을 죄인의

괴수라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나보다 더 가련하고

비참한 죄인은 없다고 합니다.

결핍감의 밑바닥까지

내려갈 때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죄의식이 없는 것,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핍 의식은 하느님의

용서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고통과 주님 앞에 늘

부족하다고 하는 결핍감은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워줍니다.

 오늘 주님의 변모 축일을

지내면서 ‘여러분, 배티와서

 뭐가 변화되었습니까?’

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가정,

서로 탓하지 않는 가정으로

변화시키셔야 됩니다.

오늘 가자마자 한꺼번에

 ‘오늘 우리 저녁기도 하자.’고

하면 누가 저녁 기도 합니까?

기도 생각 안 하던 아이를

갑자기 끌어내지 마십시오.

치킨을 사 주면서,

‘엄마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묵주기도 1단만 같이하고

자면 안 될까?’

 몇 사람 살지도 않는

집이 맨날 서로 네 탓,

네 탓, 네 탓.

물그릇 거실 바닥에

어떡하다가 뒀어.

밤에 오줌 누러 가다가

 발로 찼어.

“이 놈의 여편네.

어디다 물그릇을 둬”

부인도 “넌 눈깔 없냐?”

서로 탓하지 않는

가정으로 변화되기를,

또 그렇게 되셔야 합니다.

또한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그런 가장으로

변화되셔야 됩니다.

 두 번째로 성당에서도

말씀을 통해서,

성체를 통해서,

 친교를 통해서,

봉사를 통해서

변화되셔야 됩니다.

배티에 왔다 가신 분들에게는

그런 충분한 힘을 주십니다.

여기서 받은 어마어마한

영적 에너지, 휴대폰 붙들고

 3시간 버티는데 쓰지 마세요.

 그리고 가정과 성당에

변화된 그 모습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보여줘야 될

장소는 이 세상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의

말씀대로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실을 단정히 하십시오.

이방인인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는 성당 안 나가는

며느리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셔야 됩니다.

‘성당을 나가려고 수십 번

 마음을 먹고 있다가

시어머니를 보면 싫어진다.’

이것은 보통

스캔달이 아닙니다.

스캔달(scandal)이라고

하는 라틴어의 뜻은

 ‘걸려 넘어지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십시오.

성서 말씀대로 교우들끼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고

금전 거래 깨끗이 마십시오.

신의를 지키셔야 됩니다.

 신앙은 근본적으로 변화입니다.

머리로 들어오는 좋은 말씀이

내 심장을 통해서 수혈을 받고

 내 의지를 통해서

열매가 맺어져야 됩니다.

이게 바로 변화입니다.

 오늘 성지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 미사 중에

치유의 은혜와

구마의 은혜를 통하여

어둠에 헤매고 있는

내 마음을 새로운

빛으로 바꿔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오늘 주님께서 타볼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듯이

오늘 여러분들도 눈이

부시게 변화되어 돌아가

작은 열매를 맺는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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