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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07 -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 이기양 요셉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7 조회수1,29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
09 07 () 가해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콜로새서 1,9-14
루카복음 5,1-11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사람 낚는 어부 베드로의 순명 >


가끔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사목을 하시고 좋은 결과들을 내실 뿐 아니라 큰 애착을 가지고 성전을 꾸미고 가꾸시는 모습이 너무나 뵙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 정성을 다 들이시다가 어떻게 여기를 떠나실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몇 년 머무르다가 훌쩍 떠나야 하는 성직자의 상황을 잘 아는 신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두려움이지요.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다져놓은 자리는 편안하고 안락합니다.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하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자리를 떠나서 예측이 안 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은 두려움일 수밖에 없지요. 애착이 깊을수록, 또 확신과 지식이 가득 차 있을수록 떠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기에 안주한다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제나 수도자가 한 곳에 안주한다는 것은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수도자나 성직자는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 또 업적이나 사람들보다는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인간적인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을 성숙시키는 이러한 떠남의 과정은 아픔과 아쉬움을 뒤로하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를 믿는 경우를 봅니다. 자신에 집착하고 연연해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위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정치인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떠나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것을 그 주변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본인만 모르지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어리석음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 상황을 여실히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실 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오늘 복음에 그려지고 있지요.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들을 뽑으시는 장소가 어디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뽑으시는지를 알면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베드로를 사도로 부르시는데 인간 베드로가 가장 애착을 갖고 확신하고 있는 직업을 통해서 부르고 계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장 애착을 느끼며 놓으면 죽을 것처럼 여겨 떠날 수 없었던 자리는 바로 “어부”의 자리였습니다. 몸담고 있는 겐네사렛 호수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그 자체로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어부라는 직업을 떠나고 더군다나 배를 버린다는 것은 베드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꿈도 꾸어보지 못한 일이었을 터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오늘 예수님께서 부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만나신 곳은 겐네사렛 호숫가입니다. 겐네사렛 호수는 우리가 잘 아는 갈릴래아 호수의 옛 이름이지요. 말 그대로 베드로에게는 겐네사렛 호수가 홈그라운드였습니다. 고기잡이에는 누구보다도 선수였던 베드로에게 그물을 쳐 고기를 잡을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직업적으로 예수님과 베드로는 상극이었지요. 호숫가에서는 모든 것이 베드로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루가 5,4)

예수님의 이 한 마디에 베드로는 반문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루가 5,5)

베드로의 인간적인 반응을 볼 때 벌써 그의 전문적인 지식이 예수님의 권위에 꽉 눌려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힌 것을 보자 베드로는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요.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한 갈릴래아 호수에서 밤새 이 잡듯이 뒤졌지만 한 마리도 안 잡혔던 고기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두 배에 가득 그물이 찢어질 지경으로 잡혔던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며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순간과 맞닥뜨리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나면 당황하고 두려워하게 되지요. 베드로는 엄청나게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기뻐하거나 당장 달려가 퍼 담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잡혔으면 “웬 떡이냐!” 하고 반가워하며 한 걸음에 달려갔을 텐데 지금 베드로의 반응은 전혀 그와 다르지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루가 5,8)

이것은 어부의 반응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의 반응이지요. 지금 베드로는 ‘이 예수님이라는 분이 인간이 아니고 정말 하느님이시구나.’ 하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루가 5,10)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말이 필요 없는 예수님의 완전한 KO 승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를 살찌우는 ‘순명’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예수님께서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 베드로에게 다가와 다시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베드로였다면 그 말씀을 따랐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신자들이 더 깊은 신앙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식을 뛰어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베드로와 달리 그물을 치는 수고를 다시 하려고 하지 않지요.

하느님께 순명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어야 새로운 계기가 생깁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지요. 나의 지식과 경험에 안주하면 거기까지 밖에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내 지식과 경험의 범주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스스로 하느님을 제한하는 한계를 두는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나의 경험과 지식을 접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풍요로움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다 놓고 하느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자 밤 새워 노력했으나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고기잡이로서의 절망과 피로가 한 순간 희망으로 바뀌고, 실패는 성공으로 바뀌었으며, 보이지 않던 앞날에 새로운 길이 제시되었습니다. 비린내 나는 고기잡이 어부에서 인간 영혼을 구원하는 사도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신앙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넘어서 예수님의 말씀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루가 5,5) 하고 따를 때 풍요로운 결실이 맺어질 수 있다는 오늘 복음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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