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확실히 승리하는 총파업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9 조회수1,36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연중 제23주일


<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복음: 마태 18,15-20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존스홉킨스 대학의 행동학자 존 B. 왓슨(John B. Watson)1919년 우연히 개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공포감을 느끼는 한 아이를 목격하게 됩니다.

공포는 선천적인 것일까, 학습되는 것일까?’

왓슨은 당시 재직 중이던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에서 일련의 실험을 계획하고 실시하는데 이게 바로 후세에 두고두고 논란이 되는 아기 알버트 (Little Albert)”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파블로프의 개실험을 인간에게 적용시킨 것입니다. 파블로프 실험은 1900년 초반 러시아 학자가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인데요, 개에게 종을 울리며 밥을 주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 나중에 밥을 주지 않고 종만 울려도 개는 침을 흘린다는 실험입니다. 현실이 아닌 것에도 현실처럼 반응할 수 있도록 몸이 학습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기 알버트는 흰 쥐나 다른 종류의 동물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물을 만지거나 볼 때 뒤에서 쇠붙이와 망치를 부딪쳐 소리를 냈습니다. 알버트는 겁을 먹었고 이런 일을 반복하자 망치 소리를 내지 않는데도 알버트는 털이 있는 모든 짐승들이나 가죽 옷, 심지어는 솜뭉치만 보아도 겁에 질리는 행동을 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얼굴에 털 가면을 쓰고 다가가도 겁을 먹었습니다.

이 비 윤리적인 실험은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데 알버트는 6살에 뇌수종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뇌수종은 스트레스로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른들의 호기심의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어쨌든 이 비극적인 실험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이 필요이상의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면 그 사회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사람은 그 속한 사회에서 각 개인에게 요구되는 합당한 역할을 수행해야 되는데 두려움은 그 역할수행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어떤 공동체에 속하도록 강요받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업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지금 MBCKBS가 총파업에 들어간 지 며칠이 흘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 임명되었던 사장들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여 방송다운 방송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파업을 하는 공동체에 섞이게 된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합니다. 만약 파업이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커다란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위험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이 물러났을 때 분명히 같은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파업도 몇 명의 겁 없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됩니다. MBC 파업도 김민식 PD가 올린 동영상이 큰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2012170일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5년 동안 드라마 연출은 할 수 없게 됐고 작은 골방에서 하루 종일 TV만 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MBC의 왜곡된 뉴스를 1년 반 이상 보면 울화가 치밀어 처음엔 아주 작은 소리로 김장겸은 물라나라!”를 외치다가 결국엔 사내에서 크게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5월 말이었습니다. 결국 회사에도 나오지 못하여 자택대기발령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투쟁을 계속 하였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다시 MBC는 물론 KBS까지 총파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김민식 PD2012년 파업 때부터 받아오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다시 혼자 일어서게 된 이유는 그의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2012년 파업 당시 그는 회유파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강경파였던 동료 이용마 기자는 퇴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공범자들이란 언론장악의 실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에서 그가 울면서 자신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때 그가 끝까지 함께 버텼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단체에 속하든 이런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합니다. 두려움이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공동체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그 배를 타고 있으면 영원한 생명을 따 놓은 당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실 때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지금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가톨릭교회 단 하나밖에 없고 죄의 용서를 위한 권한이 교회에서 행사되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 머문다면 죄로 쫓겨난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런데 파업하는 위험천만한 단체에 머물 용기는 아니더라도 교회에 머물기 위해서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바로 복음전파소명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을 회개시켜야 합니다. 이 소명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파견하실 때 교회에게 준 사명입니다. 따라서 교회에 머물려면 선교하고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나에게 죄를 짓게 하면 그 형제에게 먼저 개인적으로 타이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을 더 데려가서 타일러보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고 그의 말마저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 취급을 하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교회 중심이어야 합니다. 나중에 교회가 약속된 영광을 받게 될 때는 그 복음전파 소명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에 따라서 각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차범근씨가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라는 칼럼에 나도 많이 비겁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세월호 비극이 터졌을 때 국수집 할머니가 국수집을 닫고 세월호 푯말을 들고 집회에 나가는 것을 보며 저 국수집 주인은 괜찮을까?”라고 세월호 가족의 아픔보다는 국수집 주인이 먼저 걱정이 됐다고 합니다. 이것이 너무 미안하여 세월호 변호사인 박주민 의원이 총선에 출마했을 때 그를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하기 두려워 결국 자신이나 아내의 이름이 아닌 친구 아내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촛불 집회 때도 얼굴이 나갈까봐 당당하지 못하게 자신을 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와대를 지날 때는 집에 간다고 하면 되는데도 거짓으로 둘러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뀐 지금 느끼는 것은 승리의 기쁨보다는 나도 많이 비겁했다!”는 마음입니다. 김민식 PD도 상영정지가처분 신청을 뚫고 상영하게 된 공범자들영화 앞에서 감격의 기쁨도 있었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과연 저항세력이 맞는가?”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교회에 속해있다고는 하지만 작은 두려움들 속에서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교회가 영광을 받을 때 저 역시 저는 비겁했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편을 명확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당신 이름으로 모이면 당신도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이라는 뜻은 편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당신 편과 아닌 편. 그리고 당신의 편에게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거나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것이 이쪽 편에도 저쪽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게 만듭니다. 미지근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차갑거나 뜨겁거나 선택을 해야지 미지근하면 뱉어버리겠다고 합니다. 파업을 할 때 두려움으로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 제일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편에 확실히 서야합니다. 그러려면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첫 보좌신부를 할 때 저에게 선교하셨던 할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제가 부임한지 약 반 년이 지났지만 신자들은 여전히 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워낙 큰 본당이었고 미사 후에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해서 인사할 시간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후에 짬이 나사 뒷산에 올라갔는데 묵주를 드신 할머니가 다가오시더니 대뜸 총각, 성당 다녀!”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성당을 다닌다고 했더니 어느 성당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밑에 있는 성당이라고 했더니 당신도 다니시는데 매일 미사에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저도 매일 미사 나간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요즘 그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그 할머니는 확실히 교회를 선택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싸워 이기셨고 또 교회를 파견하시며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 총파업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받을 때 고개를 함께 들고 기쁨을 함께 나눌 일원들이 되기 위해 두려움 없이 이 싸움에 열렬히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확실히 승리할 총파업에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