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0911 -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1 조회수2,05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11 () 가해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Monday of the Twen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콜로새서 1,24-2,3 / 코린토 15,1-8
루카복음 6,6-11

 

-------------------------------------------------

 

 

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Reading 1


Col 1:24
?2:3

Brothers and sisters:
I rejoice in my sufferings for your sake, and in my flesh I am filling up what is lacking in the afflictions of Christ on behalf of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of which I am a minister in accordance with God's stewardship given to me to bring to completion for you the word of God, the mystery hidden from ages and from generations past.
But now it has been manifested to his holy ones, to whom God chose to make known the riches of the glory of this mystery among the Gentiles; it is Christ in you, the hope for glory.
It is he whom we proclaim, admonishing everyone and teaching everyone with all wisdom, that we may present everyone perfect in Christ.
For this I labor and struggle, in accord with the exercise of his power working within me.

For I want you to know how great a struggle I am having for you and for those in Laodicea and all who have not seen me face to face, that their hearts may be encouraged as they are brought together in love, to have all the richness of assured understanding, for the knowledge of the mystery of God, Christ, in whom are hidden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

 

 

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5,1-8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Reading 1


1 COR 5:1-8

Brothers and sisters:
It is widely reported that there is immorality among you, and immorality of a kind not found even among pagans
? a man living with his fathers wife.
And you are inflated with pride.
Should you not rather have been sorrowful?
The one who did this deed should be expelled from your midst.
I, for my part, although absent in body but present in spirit, have already, as if present, pronounced judgment on the one who has committed this deed,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when you have gathered together and I am with you in spirit with the power of the Lord Jesus, you are to deliver this man to Satan for the destruction of his flesh, so that his spirit may be saved on the day of the Lord.

Your boasting is not appropriate.
Do you not know that a little yeast leavens all the dough?
Clear out the old yeast, so that you may become a fresh batch of dough, inasmuch as you are unleavened.
For our Paschal Lamb, Christ, has been sacrificed.
Therefore, let us celebrate the feast, not with the old yeast, the yeast of malice and wickedness, but with the unleavened bread of sincerity and truth.

 

-------------------------------------------------

 

 

복음


+ 루카복음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Gospel


Lk 6:6-11

On a certain sabbath Jesus went into the synagogue and taught, and there was a man there whose right hand was withered.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watched him closely to see if he would cure on the sabbath so that they might discover a reason to accuse him.
But he realized their intentions and said to the man with the withered hand, "Come up and stand before us."
And he rose and stood there.
Then Jesus said to them, "I ask you, is it lawful to do good on the sabbath rather than to do evil, to save life rather than to destroy it?"
Looking around at them all, he then said to him, "Stretch out your hand."
He did so and his hand was restored.
But they became enraged and discussed together what they might do to Jesus.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11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예수님의 치유 행위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많습니다.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 이야기 속에는 손이 말라붙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할 수 없는 인간의 무기력감과 움켜쥔 채로 손을 펴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의 편협한 마음을 지닌 바리사이들과의 긴장이 잘 드러납니다. 기적적 치유까지도 안식일에 하면 치료 행위로 여기는 법 지상주의자 바리사이들의 교만은, 안식일이 선행과 생명에 도움을 주는 날이어야 한다는 율법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예수님의 치유 행위 자체에 불만을 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의 현존과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회당에 모인 이유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손을 뻗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오그라든 손이 성하여지는 치유의 행위이자 동시에 움켜쥔 나의 아집과 욕망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규정으로 전락해 버린 율법의 조항들로부터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되찾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자신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느끼며 선포한 하느님의 신비는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고 사랑으로 결속시켜 주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며, 복음은 끊임없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치유의 행위를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의 치유 행위에 감동했을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골이 잔뜩 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도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싶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05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율법의 모독자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주님을 배척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 손을 내밀고 그분의 뜻과 계획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완고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온유하심과 자비하심에 시선을 고정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율법의 모독자로 고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당신께서 율법의 주인이심을 당당하게 피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에 얽매어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법률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고 인간의 구원에 봉사하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잘린 포도나무 가지처럼 말라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5,6). 말라서 오그라든 포도나무 가지와 오그라든 손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결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잘린 가지처럼, 오그라든 손처럼 병들게 됩니다. 그들은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되어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옹졸해진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07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유다교 묵시 문학에서신비는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갖고 계시지만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인간 역사의 계획을 가리킵니다. 한편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신비 종교에서는신비가 그 종교에 입문한 이들에게만 전해지는 은밀한 가르침을 지칭하는데, 그 가르침을 전수받은 이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신약 성경에서신비는 이 두 가지 전통의 영향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는 감추어진 채로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래서 콜로새서는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이르는데, 그분께서 오심으로써 이제 그 신비가 우리에게 계시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완성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덧붙여 콜로새서는, 그 신비를 전하는 교회의 일꾼이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자신의 육신으로 채우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기 시작한 하느님의 계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인 우리 신자들이 해야 할 수고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넓은 전망 안에서 살펴볼 때, 아직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수고와 환난은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느님의신비안에서 그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에게 계시는 되었지만 인간이 아직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신비의 특성이라면, 그 수고의 의미는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보다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분명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 근본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규정과 법규를 자기에게 편리하고 유리하게 마음대로 해석하려는 유혹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08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한가위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09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 복음은시선이라는 주제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계셨는데 마침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병을 고치시면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자자했을 테니,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수많은 시선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길의 대부분은 부정적이었을 것입니다.
제주교구의 사제인 저도 시선에 대한 얽매임은 예외가 아닙니다. 교구가 작아 웬만한 신자들은 저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하든, 신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많은 눈길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어리석지만, 그것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 역시 어리석습니다. 해답은 수많은 시선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시선만이 정답입니다. 주님의 시선입니다. 주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시선을 뒤로하신 채 오직 하나의 눈길만을 염두에 두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주님의 시선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합니다. 또한 겸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불투명합니다. 또한 교만하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십상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떻습니까?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10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시며 포도나무에서 잘린 가지는 말라 죽는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5,1-6 참조).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말은 그리스 말로말라서 오그라들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잘라진 가지가 말라 오그라드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생명의 말씀인 하느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사는 것은 영적으로 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라는 조건을 붙여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을 일으키고 살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살리시고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람을 살리시려는 예수님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표상합니다. 바리사이들이야말로 육신은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손이 오그라든 사람들입니다. 손을 편 사람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손을 펴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손은 어떠합니까?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05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마음공부라는 것이 있지요. 불교에서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데 정신적인 수양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늘 안고 사는 것이 마음이지만, 또한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달마 대사는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 하고 우리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지요.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는 옹졸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안식일 규정이라는 율법으로 마음이 돌같이 굳어 있습니다. 어딜 가나 그들은 율법을 들먹이며 예수님께 트집을 잡았습니다. 오늘도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회당에서 예수님 앞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앉아 있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회당 한가운데로 불러내시어 손을 펴 주십니다.
우리는 손이 오그라들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병자의 모습에서 오히려 그곳에 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마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회당 한가운데로 불러내시어 그를 고쳐 주신 것은 오그라든 그들의 마음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마저도 고치시기 어려운 병은 오그라들어 옹졸해진 마음의 병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뭉친 마음을 펼 수 있습니다. 손을 펼치면 온 우주를 품을 수 있지만 오므리면 한 점 바람도 머물지 못합니다. 마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06)


주님께서는 온갖 법률 위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여러 종교적 법률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모든 법률 위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법률을 지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법률을 지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법률을 상대화시키십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법률이든지 개의치 않으시고, 대신에 그 법률이 인간을 생존에 필요한 공동의 선익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지적하시고, 그러한 법률은 폐기되어야 마땅함을 보여 주십니다.
가끔씩 세상의 법이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생명과 사랑과 정의와 진리에 어긋나는데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세상의 법이 정당하다고 추켜세우거나 그 법을 따라갑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못된 법에 항거하는 형제자매들을 욕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은 곧 주님이십니다. 아무리 세상의 법이 집요하게 파고들어도 그것이 주님의 뜻에 비추어 잘못된 법률이라면, 우리는 과감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07)


오그라든 손은 고통스러운 손입니다. 병으로 그랬든 사고로 그랬든, 그는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한’을 풀어 주려 하십니다. 그는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을까요?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딴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기는지 ‘어기지 않는지’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언제 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기약이 없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려 합니다. 안식일인 줄 아셨지만 ‘모든 것’을 뛰어넘으셨습니다. 그분의 넓은 마음입니다. 바리사이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직 법을 어긴다는 행위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도 답답하니까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바리사이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라는 율법이지, 죽이라는 율법은 아닙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소홀히 했기에 그런 해석이 등장합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법을 따지지’ 않습니다.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법을 따지고 규칙을 내세웁니다. ‘베푸는 연습’을 게을리하면 남아도는 것도 주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인간은 하늘도 좋아하지 않는 법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08)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10)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지켜보고 있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이 이에 대한 답을 모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린이를 대하듯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안식일의 근본에 대해 모르고 있음을 질책하신다는 암시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쉬는 날입니다. 이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도 안 되고 남에게 일을 시켜서도 안 되었습니다. 일에서 온전히 벗어나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맹탕 놀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었습니다. 휴식을 취하되 거룩함을 지녀야 올바른 안식이었습니다. 율법의 본래 정신이 그러했습니다.

오늘날 주일은 의무적인 미사 참여의 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틀린 생각은 아니나, 주일 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게 귀찮아 성당에 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수동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사는 하느님과 연결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축복을 체험하는 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