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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13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이기양 요셉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3 조회수99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09 13 () 가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콜로새서 3,1-11
루카복음 6,20-26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사람이 찾아야 할 참된 행복 >


"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새옹(塞翁)이란 새상(塞上:북쪽 국경)에 사는 늙은이란 뜻이지요. 글이 생겨난 이유는 이렇습니다.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또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새옹지마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또 마냥 기뻐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의미의 고사성어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화와 복이 노끈처럼 번갈아 찾아옵니다. 결코 어느 한쪽만 찾아오는 일은 없지요. 언제나 행복과 불행이 함께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4개의 행복 선언과 4개의 불행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바라는 행복과 불행이 반대로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 박해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시고, 반면에 부유한 사람, 배불리 먹는 사람, 웃고 지내는 사람, 칭찬 받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이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 등은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심한 낭비벽으로 가난해진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다가 어려워진 사람들입니다.
또 여기서의 부자 역시 재물과 권력과 세상을 사는 재미에 빠져서 하느님을 떠나 눈 앞 세상에만 의지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세상에서 부유해진 사람은 자칫 이 세상의 형편에 만족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붙잡지 않게 됩니다. 자기의 재물과, 지혜와 권력에만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재물은 더 많은 재물을 요구하고, 권력은 더 높은 권력을 요구합니다. 끝없이 세상에 집착하게 만들지요. 그럼으로써 결국 재물이 인간을 지배하게 됩니다.

반대로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욕망에서도 멈출 줄 알고, 소유한 것이 많지 않아도 함께 나눌 줄 알며, 적은 것에 감사하고, 끝없는 소유의 욕망 앞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참된 행복은 만족할 줄 아는 데서 비롯되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알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지금 우리는 순교자 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만 순교자들의 삶을 보면 오늘 복음이 얼마나 명확한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 때문에 말 그대로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혹독한 박해 중에서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고, 박해 중에도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 순교자들을 박해했던 사람들은 부유했고 권력가들이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 안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눈에 너무나도 잘 보이는 사실입니다. 박해를 하고 사람을 죽이면서 오히려 더 불안하고 힘겹게 살게 된 사람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가난하게 되거나 박해 받는 상황을 자처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실하게 노력해서 풍요롭게 살아야 하지요. 그것이 하느님 축복의 열매입니다. 그래야 이웃과 나눌 수도 있고, 가정을 꾸려갈 수도 있지요.

“배부른 김에, ‘야훼가 다 뭐냐?’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주십시오.(잠언 30,9)라는 잠언 저자의 말처럼 게을러서 가난해지지도, 또 재물 때문에 하느님을 떠나서도 안되겠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교차됩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권력이나, 재산, 또는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참 행복은 재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지요.

그런데 우리 시대는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돈! ! ! 하며 살아갑니다.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또 자녀들까지도 돈을 벌러 나가지만 만족보다는 끝없는 갈증에, 그리고 상대적인 빈곤에 시달립니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지요.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줄 알며 절제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 공동체 안에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으로 나의 중심을 채우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재물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에 끝없이 휘둘릴 뿐 참된 평화나 행복은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을 말씀하시며 우리 삶의 핵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을 떠나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내 중심에 계실 때 참 행복이 시작됨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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