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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14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4 조회수1,26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14 () 가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복음 묵상

Feast of the Exaltation of the Holy Cross

민수기 21,4-9
요한복음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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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민수기 21,4-9
(
또는 필리피서 2,6-11)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Reading 1


Nm 21:4b-9

With their patience worn out by the journey, the people complained against God and Moses, "Why have you brought us up from Egypt to die in this desert, where there is no food or water? We are disgusted with this wretched food!"

In punishment the LORD sent among the people saraph serpents, which bit the people so that many of them died.
Then the people came to Moses and said, "We have sinned in complaining against the LORD and you. Pray the LORD to take the serpents from us."
So Moses prayed for the people, and the LORD said to Moses, "Make a saraph and mount it on a pole, and if any who have been bitten look at it, they will live."
Moses accordingly made a bronze serpent and mounted it on a pole, and whenever anyone who had been bitten by a serpent looked at the bronze serpent, he lived.


Reading 2


Phil 2:6-11

Brothers and sisters:
Christ Jesus, though he was in the form of God, did not regard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Rather, he emptied himself, taking the form of a slave, coming in human likeness; and found human in appearance, he humbled himself, becoming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
Because of this, God greatly exalted him and bestowed on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end, of those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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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요한복음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Gospel


Jn 3:13-17

Jesus said to Nicodemus:
"No one has gone up to heaven except the one who has come down from heaven, the Son of Man. And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desert,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ight not perish but might have eternal life.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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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09 14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역설적인 표징이지만, 우리에게는 가끔 불평 가득한 삶의 무게로 느껴지기도 하고, 지혜롭지 못해 짊어진 어리석음이거나, 전능하신 하느님께 어울리지 않는 걸림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분명히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표징이지만, 현실에서는 짊어지고 싶지 않은 짐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십자가’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가장 깊이 느끼게 해 주는 표현은 ‘한 맺힘’과 ‘한풀이’일 것입니다. 누구나 가슴에 맺힌 ‘한’이 있어서 억울한 심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 ‘한’이 맺힌다고 합니다. 맺힌 한은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 하는데, 한풀이는 보통 한이 맺힌 이유를 찾아내어 현실 속에서 화해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불평하면서 종살이의 편안함을 그리워하느라 하느님께서 주신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기에 벌을 받지만, 그들이 죄를 뉘우침으로써 치유되는 한풀이를 체험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상처받은 당신의 마음에 대해 인간에게 앙심이나 보복의 한 맺힘이 아니라,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역설적인 사랑을 통해 진정한 한풀이가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십자가는 나의 삶의 모순과 불평의 한을 예수님께 떠넘겨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며, 인내하고 기도하는 수행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고 참된 한풀이로 초대하는 표징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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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14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창세기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를 불순종의 죄로 유인한 동물로 묘사됩니다. 민수기에서 뱀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게 하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하느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은 죽음을 불러오지만,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은 그들에게 생명을 찾아 줍니다. 그 구리 뱀은 기둥 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예표된 것처럼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우리는 입당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생긴 십자가의 예수님 상처가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드러내고,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하느님의 지혜가 되고 있으며 그 고통은 하느님의 영광과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상처와 아픔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치유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림도 조각도 내 영혼의 갈망을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팔을 벌리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만이 채워 줍니다.”
우리가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따라나설 때, 그분께서 아버지께 드린 한없는 신뢰가 우리의 것이 될 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며 우리 안에 십자가의 생명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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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14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광야의 구리 뱀과 주님의 십자가!’
독서의 말씀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도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어, 당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누군가 부당하게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고 죽었다면, 그 일을 자랑하시겠습니까? 더욱이 처형 도구로 사용된 형구를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시겠습니까?
로마 시대, 극악무도한 정치범이나 흉악범의 사형을 집행할 때 십자가형에 처하였는데, 고통이나 그 방법 면에서 너무 수치스럽고 끔찍해서 로마인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죄수에게 사형을 집행할 때 십자가 외에도 여러 도구가 사용되었는데,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참수로 순교했습니다. 그나마 그래도 로마인의 명예를 존중해 준 것이었으니, 바오로 사도는 이른바 명예사한 것이지요!
이와는 달리, 한 순간에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서서히 죽어 가게 하는 십자가형은, 단순히 큰 죄에 대한 벌로서만이 아니라 그 형벌을 내리는 편에서 볼 때,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요.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의 최후는 반드시 이러할 것이라는 일종의 교육적인 효과도 고려하여, 십자가형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였고(갈라 6,14 참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수치스러운 처형 도구인 십자가를 곳곳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그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고백합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는 오늘, 이렇게 끔찍한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다는 커다란 역설을 기억하면서 십자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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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14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상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십자가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그 뜻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거행하는 주님 수난 예식의 십자가 경배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장엄하게 고백합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에 우리는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안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주교 에곤 카펠라니는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에서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거기에 매달려 죽은 나자렛 출신의 한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위로와 확신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실패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인 동시에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습니다. 그분의 부활 사건으로 사랑이 증오보다 강하며, 영광이 죄보다 강하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인간 늑대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부활 사건은 메마른 십자 나무를 생명나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자는 이어서 미켈란젤로의 고백을 전해 줍니다. “그림도 조각도 내 영혼의 갈망을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팔을 벌리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만이 채워 줍니다.”
우리 또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인간이 고난 중에서 절망할 때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부활의 희망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현존을 믿고 느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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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14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교리 시간 때 이러한 내용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로부터 구원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례를 받고도 여전히 죄에 얽매여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구리 뱀 이야기를 먼저 되새겨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광야에서 날마다 돌보아 주셨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불 뱀들을 보내시어 벌하셨습니다.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모세를 찾아가 하느님께서 살려 주시기를 간청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이에 모세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고,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에 매달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결과 불 뱀에 물린 이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낫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세례 받기 이전의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으로 세례를 받아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내며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받아 죄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죄의 근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세례 이전을 그리워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할 때 죄에서 나온 독성이 우리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마치 불 뱀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죽어 갔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러한 우리의 삶에서 구리 뱀의 역할을 합니다. 죄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죄를 거듭 짓게 되는 우리가 그 죄의 독성으로 쓰러질 때,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영혼의 생기를 얻어 약속의 땅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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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14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할 때 너무 힘들어서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시어 그들을 물어 죽게 하시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기도 드리자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고 뱀에 물린 자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이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인 당신은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상기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리 뱀처럼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입니다. ‘들어 올린다는 말은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뜻도 있지만부활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은총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의 끝인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치신 예수님께 부활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패배는 곧 하느님의 승리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걷는 십자가의 길은 궁극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잃음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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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14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뱀은 옛날부터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뱀은 하느님과 적대적인 존재로 죄와 죽음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동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뱀은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동물이고 하느님을 거슬러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죄로 저주를 받아 평생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어야 하는 가련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창세 3,1-1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싫다며 불평불만을 할 때도 불 뱀이 나타나 사람을 물어서 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모세는 하느님 말씀대로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습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기둥에 매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고 다시 생명을 얻었습니다.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죄와 죽음의 상징인 뱀의 형상을 쳐다봄으로써 생명을 다시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에도 끔찍한 십자가는 죄와 죽음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생명을 얻고 구원됩니다.
이냐시오 영신 수련 피정을 할 때면,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고 무거운지를 살핍니다. 그리고 마치 광야에서 구리 뱀을 쳐다보듯, 십자가의 주님을 관상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와 죽음의 고통을 대신 품고 계신 주님의 큰 사랑을 만나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지요.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우리의 부끄러운 죄 너머에 주님의 은총 또한 풍성히 쏟아지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죄짓지 않고 살 수 없는 우리지만 주님 십자가로 이렇게 숨 쉬며 살 수 있습니다. 원망의 눈물은 우리를 슬픔 속으로 더욱더 몰아넣지만 회개의 눈물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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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09 14)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세상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분에게서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시며,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끝에 가서는 모두 그분께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그분께 돌아가지 않으려 하며, 그분의 뜻에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을 그저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몸소 부르시고 찾아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때가 차자 당신의 외아드님을 인간에게 보내십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아드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드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당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거룩하신 아드님께서 지고 가시고 못 박히신 십자가는 곧, 인간을 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내어놓으실 수 있는 아버지의 대자대비하신 마음의 발로(發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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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09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사건’은 민수기에 나옵니다. 광야 생활에 싫증을 느낀 백성은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고생이 싫었던 것이지요.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보잘것없는 양식은 ‘만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의 음식’이었습니다. 눈처럼 ‘하얀 만나’가 내려앉으면, 백성은 집으로 가져가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눈과 입으로’ 체험하는 매일의 기적이었습니다. ‘만나’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살 수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음식이 지겹다고 합니다. 기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깨우치시고자 시련을 내리십니다.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 겁니다. 백성은 그제야 기적의 고마움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구리로 만든 뱀을 기둥 위에 매달고, 그것을 바라보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뱀에게 물렸는데 ‘구리 뱀’을 쳐다본다고 어떻게 낫겠는가? 고통 속에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시련에는 주님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내 생각만 내세우면 그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님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구리 뱀’ 이야기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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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09 14)


십자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큰 십자가는 성당에 있습니다. 작은 십자가는 집에 걸어 둡니다. 목걸이와 반지에도 십자가를 새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모든 것은 장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입니다. 시련입니다. 억울함입니다. 마침내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희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십자가를 모셔 두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삶은 방황합니다. 왜 이 고통을 주시는지, 어찌하여 이러한 시련에 부대껴야 하는지 불평하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민수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 생활에 싫증을 느낍니다. 보잘것없는 음식과 계속되는 여정에 넌더리를 내며 항의합니다. 고생하며 ‘시달려야 하는 이유’를 몰랐던 것이지요. 그러자 ‘불 뱀’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불평하는 이들은 뱀에 물려 죽어 갔습니다. 사람들이 뉘우치자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달아 올립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이들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민수 21장 참조).
우리 역시 십자가를 보면서 힘을 얻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은총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 십자 성호를 그으며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삶의 중심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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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09 14)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갑니다.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그들을 환영할 곳은 없었습니다. 정착할 곳도 경작할 땅도 없었고, 초원도 물도 부족하였습니다. 탈출의 흥분이 가라앉자 현실의 문제로 불안에 떨던 백성은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이집트 탈출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사막과 다름없는 광야의 생활도 여태껏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기적을 이어 온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불평하는 등 근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혹독한 보속으로 백성의 정신을 차리게 하신 것입니다. 오갈 데 없던 백성이 살려 달라며 다시 모세에게 애걸합니다.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한 백성의 청을 결코 모른 체하지 않으십니다. 또 다른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그 기적의 구리 뱀에 비유하십니다. 오늘의 우리는 무엇과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까? 돈과 물질이라는 뱀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다시 예수님께 돌려야 합니다. 기적은 믿음을 가진 이에게는 언제라도 힘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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