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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15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5 조회수2,19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15 () 가해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Our Lady of Sorrows

히브리서 5,7-9
요한복음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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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히브리서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Reading 1


1 Tm 1:1-2, 12-14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command of God our savior and of Christ Jesus our hope, to Timothy, my true child in faith: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I am grateful to him who has strengthened me, Christ Jesus our Lord, because he considered me trustworthy in appointing me to the ministry.
I was once a blasphemer and a persecutor and an arrogant man, but I have been mercifully treated because I acted out of ignorance in my unbelief.
Indeed, the grace of our Lord has been abundant, along with the faith and love that are in Christ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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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요한복음 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Gospel


Jn 19:25-27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When Jesus saw his mother and the disciple there whom he loved he said to his mother, "Woman, behold, your son."
Then he said to the disciple, "Behold, your mother."
And from that hour the disciple took her into his home.

or

Lk 2:33-35

Jesu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what was said about him; and Simeon blessed them and said to Mary his mother, "Behold, this child is destined for the fall and rise of many in Israel, and to be a sign that will be contradicted and you yourself a sword will pierce so that the thoughts of many hearts may be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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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09 15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고통의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결합된 성모님의 인생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십자가의 의미를 더 명료하게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시는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아들 예수님께서 처절하게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마음속 깊이 숙고하시고 되새기셨습니다. 그런 성모님의 인생은 복음서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고 증언합니다.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할 때 겪게 되는 인간성 자체의 고통도 포함합니다. 인간은 생존의 욕구,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소유하고 집착하는 인간의 의지적 욕구가 좌절되는 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아에 몰두하고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는 교만이야말로 우리 스스로의 고통의 원인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인간이 겪는 이 고통의 의미를 가장 깊이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모순처럼 다가온 수많은 순간들을 인간 존재의 숙명으로 받아들이시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시는 용기를 보여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둠 속 신앙의 길’을 걸으셨기에, 십자가의 어두움을 넘어 부활의 빛을 만나실 수 있었던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고, 예수님께서 요한 사도에게 맡기신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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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15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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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15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날인 오늘, 우리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지내는데, 오늘 말씀은 이 두 축일을 연이어 지내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우선 십자가를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라고 고백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삶의 자세는 오늘 십자가 아래 계신 성모님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성모님께서도, 제자도, 그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눈물과 탄식으로 기도하셨듯이, 성모님께서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계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느냐고 부르짖으실 때, 성모님께서도 하느님을 향해 그렇게 외치셨을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듣는 이 없이 그저 홀로 허공을 떠돌며 울부짖는 소리로 그쳤을까요?
오늘 히브리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기도와 탄원을 들어주셨다고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시도록 그분의 청원을 들어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분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일어나게 하심으로써 그 죽음을 구원의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비로소 구원의 길을 깨닫게 되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곁을 늘 지키시는 성모님이셨지만, 십자가의 길에서는 예수님을 어느 누구보다 더 바짝 따라가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탄원하시고, 아드님의 죽음을 끌어안으심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순종을 배우시고 구원의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성모님께서는 정신적인 순교자가 되시어, 순교자의 모후도 되셨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당신 외아드님 대신에, 그분의 제자를 아들로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셨듯이,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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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15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리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지냅니다. 이날 미사에는 ‘복음 환호송’ 전에 ‘부속가’를 자유로이 바칠 수 있습니다. 이 부속가는 성모님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묵상과 그분의 슬픔에 함께하려는 간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속가를 통하여 성모님께서 몸소 겪으신 고통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한편 그 고통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절절한 슬픔과 신앙을 담은, 중세의 어느 수도자의 기도였던 이 부속가는 많은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어 뛰어난 곡을 여럿 낳게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요절한 이탈리아의 작곡가 페르골레지(1710-1736)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슬픔의 성모)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약 당대 음악계의 주목을 끈 그는 이내 자신의 병마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이 곡의 완성에 전념한 그에게 ‘스타바트 마테르’는 간절하고 진실한 마지막 기도 자체였습니다. 조촐한 현악 협주에 소프라노와 알토 두 사람의 목소리로 엮어진 이 곡에는 비애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절절한 간구가 배어 있습니다.
음악가이신 선배 신부님이 다른 음악가들과 사순 시기에 어떤 본당에서 이 곡을 연주하였을 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음악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우리 가슴속 깊이 계시는, 세상 모든 자녀들의 고통을 아시고 함께하시는 성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그 눈물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고통에 함께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우리가 주님의 고통에 깊이 참여하도록 이끄십니다. 성모님에 대한 사랑의 의탁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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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15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연중 제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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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15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씨는 남편과 사별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외아들을 잃었습니다. 26세밖에 안 된 외아들이 죽자 그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벽에 달린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도 화가 나 그것을 땅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을 데리고 가신 하느님을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긴 세월 동안 하느님을 원망하고 증오하던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온종일 하느님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하느님,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하느님은 계셔야만 해.
시간이 흘러 그녀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며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하느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가끔 생각해 봅니다. 살기는 살았겠지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그녀가 하느님을 원망하고 울부짖을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히시는 아드님을 보러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드님께서 겪으시는 고통 하나하나가 어머님의 마음을 찔러 꿰뚫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의 미움과 증오가 끝까지 아드님을 괴롭히는 그 자리에 고통을 참으며 아드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성모님을 그토록 강하게 만든 것은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성모님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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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15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장애인 바르나바 형제가 큰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는 마흔이 다 되도록 말 한 번 시원하게 못해 보고 제 힘으로 밥을 먹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수술 후 그는 호흡기 장애를 일으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최악의 고통을 안으로만 삭이고 있었습니다. 통증을 호소하며 소리라도 지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그가 고통 속에서 그저 버둥거리기만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남들의 마음이 이럴진대 평생을 아들과 한 몸처럼 지냈던 바르나바 형제의 어머니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십자가 아래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바르나바 형제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신부님, 하느님 나라가 분명히 있지요? 아들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니까 이제 그만 놓아 주고 싶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놓는다고 놓아지겠습니까? 자식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바라보다 못해 던진 질문입니다. 차마 겉으로 말할 수 없어 마음속으로 혼자 대답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가야 할 하느님 나라는 꼭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알려 주신 것이 결국 하느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 희망이 없다면, 죄 없는 이의 억울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 어떤 고통도 무의미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십자가 곁에 성모님께서 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감당하시고 있는 이 기구한 운명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부활과 인류 구원의 역사가 숨어 있었지요. 지금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날에는 그 모든 것의 의미가 환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슬퍼하는 사람들, 그 너머에 더 이상 눈물이 없는 눈부신 부활의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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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09 15)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신 예수님의 발아래 어머니 마리아께서 서 계십니다. 비통한 모습으로 아드님을 바라보시는 어머니께 주님께서는 위로를 보내십니다. 죽어 가는 아드님을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께는 어떠한 위로도 소용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께 그윽한 눈빛으로 위로를 보내십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순간, 어머니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셨을 겁니다.
흔히 사랑하는 님은 앞산에 묻고, 사랑하는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드님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그 어떤 말도 위로의 말로 들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다.”라고 하신 아드님께서 마리아에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을 때, 성모님께서는 그 어떤 말보다 아드님의 그 한마디 말씀에 온갖 고통〔七苦〕이 한순간에 사라지셨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드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자녀들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아드님을 바라보시던 그윽한 눈매로 이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겁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극히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받드시듯이, 그렇게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모님을 모셔 줄 것을 청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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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09 15)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자녀의 죽음은 불효로 여겨져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십니다.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가로막았던 또 하나의 유혹은 이렇듯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었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어떤 표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차분한 슬픔으로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 주었을 때도 그분께서는 담담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때의 모습 그대로이셨을 것입니다. 이후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셨습니다. 철저한 겸손으로 사신 것입니다.
주위에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슬픔 역시 주님께서 주시는 감정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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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09 15)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방문을 받는 순간부터 평범한 여인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말씀 속에는 그러한 결단이 숨어 있었습니다. 특별한 신분으로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만큼 의무가 주어지고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메온의 예언은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께서는 평생 아버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을 기다리며 사셨습니다. 잘 모르더라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왜 그런 삶을 사시는지, 왜 사람들에게 반대를 받아야 하는지, 기적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 어찌하여 죽음의 길을 가시는지, 잘 모르셨지만 주님의 뜻에 따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였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보는 어머니의 고통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억울한 죽음이 분명한 것을 알면서도 그저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고통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성모님께서는 받아들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순간에도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신앙인은 성모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보살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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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09 15)


죽어 가는 자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대신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나설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비할 데가 없이 강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셨습니다.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분이 누구이시던가! 천사의 발현으로 당신이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된 이분은 위대한 구세주가 될 분이 아니던가! 소년 시절의 추억과 청년 시절의 체험이 성모님의 가슴을 채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결실도 이루지 못하신 채 죽음의 길로 나아가시다니…….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고뇌 속에서도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하셨습니다. 어머니로서 신앙인으로서 십자가를 함께 지셨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은 육체적 아픔만이 아니었습니다. 믿고 사랑했던 예수님에 대한 고뇌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성모님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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