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0916 -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6 조회수64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09 16 () 가해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Saints Cornelius, Pope, and Cyprian, Bishop, Martyrs
Saturday of the Twen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티모테오 1 1,15-17 / 코린토 110,14-22
루카복음 6,43-49

 

-------------------------------------------------

 

 

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 1,15-17

사랑하는 그대여,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Reading 1


1 Tm 1:15-17

Beloved:
This saying is trustworthy and deserves full acceptance: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Of these I am the foremost.
But for that reason I was mercifully treated, so that in me, as the foremost, Christ Jesus might display all his patience as an example for those who would come to believe in him for everlasting life.
To the king of ages, incorruptible, invisible, the only God, honor and glory forever and ever. Amen.

 

-------------------------------------------------

 

 

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10,14-22

14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8 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19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20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1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다는 말입니까?


Reading 1


1 COR 10:14-22

My beloved ones, avoid idolatry.
I am speaking as to sensible people; judge for yourselves what I am saying.
The cup of blessing that we bless, is it not a participation in the Blood of Christ?
The bread that we break, is it not a participation in the Body of Christ?
Because the loaf of bread is one, we, though many, are one Body, for we all partake of the one loaf.

Look at Israel according to the flesh; are not those who eat the sacrifices participants in the altar?
So what am I saying?
That meat sacrificed to idols is anything?
Or that an idol is anything?
No, I mean that what they sacrifice, they sacrifice to demons, not to God, and I do not want you to become participants with demons.
You cannot drink the cup of the Lord and also the cup of demons.
You cannot partake of the table of the Lord and of the table of demons.
Or are we provoking the Lord to jealous anger?
Are we stronger than him?

 

-------------------------------------------------

 

 

복음


+ 루카복음 6,43-4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Gospel


Lk 6:43-49

Jesus said to his disciples:
"A good tree does not bear rotten fruit, nor does a rotten tree bear good fruit.
For every tree is known by its own fruit.
For people do not pick figs from thornbushes, nor do they gather grapes from brambles. A good person out of the store of goodness in his heart produces good, but an evil person out of a store of evil produces evil; for from the fullness of the heart the mouth speaks.


"Why do you call me, 'Lord, Lord,' but not do what I command? I will show you what someone is like who comes to me, listens to my words, and acts on them.
That one is like a man building a house, who dug deeply and laid the foundation on rock; when the flood came, the river burst against that house but could not shake it because it had been well built.
But the one who listens and does not act is like a person who built a house on the ground without a foundation.
When the river burst against it, it collapsed at once and was completely destroyed."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16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신앙’은 ‘신앙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신앙 감각’이란 “올바른 그리스도교 교리와 실천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며, 잘못된 것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런 신앙 감각을 얻으려면 내가 지닌 본능의 감각이 복음적 가치들을 지향하도록 꾸준히 수련해야 하고, 그 결과 ‘제2의 본성’이라고 불리는 ‘덕()’을 쌓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신앙인은 믿음의 덕을 쌓아 얻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이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지을 때 참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대비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실천 없이 말뿐인 신앙인들을 향한 경고와도 같습니다. 오랜 세월을 신자로 살았어도 믿음의 덕을 쌓지 않고 산 사람은 신앙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지 못합니다. 이런 신자들은 머리로 이해한 신앙을 가슴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의 여정을 걷지 못합니다. 반면에 강렬한 신앙 체험을 토대로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오르는 사람은, 반석처럼 든든한 믿음 위에 삶을 세워 가기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물론 순간의 열정이 아닌, 회심과 결단을 통한 습관과 행동의 변화를 보여 주는 사람만이 그렇습니다.
좋은 열매를 얻고 든든한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지으려면, 교회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하느님 말씀인 성경에 맛들이며, 맹목적이 아닌 이성의 도움을 받아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겸손과 자유, 기쁨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훌륭한 설교가나 예언자보다는, 겸손하고 가난한 ‘신앙 감각’을 지닌 일상의 성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10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좋은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상 숭배 등 나쁜 행위를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분리됩니다. 그때 우리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따르지 않기에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지은 집처럼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탐스러운 포도송이 같은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좋은 생각들과 지향들이 넘쳐야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머물고 있는지는 우리가 하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려는 행위와 지향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의 보물들로 간직됩니다.
기도와 성사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나아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머무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 육의 행실은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등입니다(갈라 5,19-21 참조). 우리 안에 어떠한 열매들이 달리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12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주님께서 왜 바오로를 사도로 부르셨을까요?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킬리키아 지방 타르수스의 바리사이 가문에서 그가 유다 사람으로 태어나,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으며, 그 당시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는 화려한 경력 때문일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로마 시민권을 바오로가 가지고 있고 열성도 대단하고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서였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자기가 죄인들 가운데에서도 첫째가는 죄인이었기에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평범한 죄도 아니고 바로 예수님을 박해하던 그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면서 증언할 사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바오로 사도가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가 세상 곳곳을 다니며 선포한 것은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죄인이던 우리와 화해를 이루셨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였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고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먼저 그 자신이 하느님의 인내와 용서를 체험해야 했는데, 그래서 박해자였던 바오로가 사도가 되었습니다.
중병에 걸렸다가 치유된 사람이 자기가 치료받은 과정이나 약효에 대하여 진술하면 그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신뢰를 줍니다. 마찬가지로 복음도 그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전할 때에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이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가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인내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13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금구’(金口)라는 별칭이 붙었듯, 성인은 교회 역사상 으뜸으로 꼽히는 설교자입니다. 그의 설교가 지닌 표현의 탁월성과 내용의 뛰어남에 대해, 그리스도교에 비판적 시각을 가졌던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기번도 그의 기념비적 저술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다음과 같이 찬탄합니다.
이 그리스도교 웅변가의 우아하고 풍부한 어휘를 자유롭게 다루는 솜씨, 수사학과 철학에서 얻는 장점을 감출 줄 아는 사려 깊음, 아무리 익숙한 주제라도 다양하게 그려 내는 은유와 비유, 끊임없이 쏟아 내는 개념과 이미지들, 미덕을 위해서만 불태우는 능력, 진실과 극적인 재현 능력으로 악덕의 어리석음뿐 아니라 비열함까지 파헤치는 재능에 대해서는 모든 비평가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위대한 설교자로서 자신의 수사학이라는 학식의 그릇에 하느님의 말씀을 조금도 왜곡하거나 희석하지 않고 온전히 담았습니다. 그의 설교는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크나큰 위안을 주었으며, 부자와 권력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며 거침없이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의 삶 또한 자신의 설교 내용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권력의 중심지에서 주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재능에 반해 발탁한 왕실에조차 비위를 맞추는 법이 없었고, 권력자들의 부패와 위선적 신앙을 끊임없이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음모에 밀려 쫓겨나고 유배 생활을 하였지만 결코 굴하지 않는 가운데 주님과 교회에 끝까지 충실했습니다. 그가 진정 위대한 설교자였던 것은 뛰어난 언변만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설교 한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그의 모범을 기려 봅니다.
나는 진정 내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성경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지팡이요 보호자이며 잔잔한 항구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14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15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10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내 친구에게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하나 있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 ……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이사 5,1-4)
『성경』에서 말하는 포도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이사야 예언서는 주님께서 당신 포도밭 이스라엘에 사랑의 열매를 맺을 포도나무를 심으셨지만 들포도가 맺히자 한탄하시는 모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제때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들포도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 탐스러운 포도송이 같은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들포도 같은 형편없는 열매를 맺을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농부가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 정성을 다하면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 하고으로만 부르는만 무성한 나무가 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 내고 제때에 영적인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주님 정원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 한 그루는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11)


참된 그리스도인은 결코 헛된 우상을 좇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나누어 먹고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며, 우리가 받아 모시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룹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아야 하는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면서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환난이 닥치면 곧 무너져 버리는 모래 위의 집과 같아질 것입니다.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성체성사이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복음 때문에 순교하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12)
(
동정 마리아 성명 선택 기념일)


누구나 시련을 겪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고통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 몫의 십자가’는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가벼워지지만, 거부하고 따지면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시련의 법칙’입니다.
이솝 우화에는 ‘잔꾀 부리는 나귀’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금을 싣고 가던 나귀가 개울에 넘어집니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짐이 가벼워진 것을 알게 되지요. 나귀는 너무 신기해합니다. 그때부터 개울만 보면 일부러 미끄러집니다. 주인은 나귀의 약은 꾀를 혼내 주려 하지요. 그래서 솜뭉치를 싣고 떠납니다. 이번에도 나귀는 개울을 만나 쓰러집니다. 하지만 일어나려니까 엄청 무겁습니다. 나귀는 힘겹게 걸어가야 했습니다.
삶을 정면으로 부딪치며 사는 이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는 확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머리를 굴리며 사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하늘의 ‘수’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나귀가 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주인의 눈에 금방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쉬운 인생’을 사는 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통해 ‘인생의 짐’을 가볍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겁게 받아들이는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소연만 하고 불평하면 무거워집니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가벼워집니다. 주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13)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무엇이 좋은 나무를 결정짓겠습니까? 뿌리입니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결정짓는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입니다.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멍들면 머지않아 시들고 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의 기초는 행동입니다.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려움이 닥쳐도 쉬이 신앙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김성우 안토니오 순교 성인은 한강 기슭의 구산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갈대숲에 싸여 있어 피난 교우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의 집에는 유방제 신부도 머물렀고, 모방 신부도 거기서 조선말을 익혔습니다. 그만큼 김성우 성인은 신심이 깊었습니다.
그는 기해박해 때 붙잡혀 혹독한 심문을 받으며 숱한 매를 맞았습니다. 배교하라는 독촉에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1841년 교수형을 받고 순교한 김성우 성인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분’입니다. 그분의 무덤이 있는 곳이 ‘구산 성지’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