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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17-성김대건안드레아사제와 성정하상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 대축일 복음묵상-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6 조회수1,26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17 () 가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Saints Andrew Kim Tae-gon, Priest, and Paul Chong Ha-sang, and Companions, Martyrs

지혜서 3,1-9
로마서 8,31-39
루카복음 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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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지혜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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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8,31-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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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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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09 17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불사의 희망’, 죽음도 꺾지 못하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그 희망에 목숨을 걸 수 있을까요? 그런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생각이나 기대일 수는 없습니다. 확고한 신념이 생기려면 바오로 사도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뵙고,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께서 지켜 주고 계신다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뒤를 따라 불사의 희망,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누구나 저마다 짊어져야 할 삶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책임져야 할 가족, 살기 위해 다녀야 하는 직장, 보기 싫지만 만나야 하는 사람들, 힘겨운 학업, 떨쳐 버리지 못하는 지병, 경제적인 빈곤, 희망 없는 인생, 맞이해야 할 두려운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가장 크게 다가옵니다.
배교를 강요하는 이들의 칼 앞에 당당하게 신앙을 증언한 103위 한국 순교 성인들이라고 이런 인생의 십자가가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순교자들이 배교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자신들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행 속에서도 ‘불사의 희망’,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피를 흘리는 순교는 없지만,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할 땀과 희생의 순교는 요청됩니다. 한두 번 순교하는 마음으로 참고 살 수는 있지만, ‘날마다’ 십자가를 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삶은 수행의 연속이고, 그 수행의 끝 날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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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20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주님께서는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루카 16,1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느님과 재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입으로 하느님을 선택한다고 말하겠지만, 마음속에서는 많은 유혹과 핑계가 생겨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경축하는 103위 순교 성인들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징표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신 분들입니다. 그 중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만 25세의 나이로 사목 생활의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자신의 목숨을천주님께 바치셨습니다. 성인은 죽기 전에 이렇게 설파하셨습니다. “내가 외국 사람들과 통한 것은 오직 천주님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지금 그 천주님을 위해 죽어 갑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인 성 정하상 바오로는 한국 천주교회의 재건을 위해 투신한 평신도입니다. 성인은 북경 왕래를 아홉 차례, 의주 변문까지는 열한 차례를 왕복하며 유방제 신부,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성 앵베르 주교를 영입하였습니다.
103
위 순교 성인들은 임금보다 더 큰 임금을 선택하여 충성을 바치고, 부모보다 더 큰 부모를 섬겨 효도를 다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은대군 대부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여 영원한 생명의 표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죽음도 그들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103위 순교 성인들이 보여 준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지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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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20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모든 생물에는 한계가 있듯이 우리 인간도 한계를 지니고 사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며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이 하나의 현실이므로, 이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하여 마지막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삶을 더욱 보람 있고 알차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한계를 잘 알고 있던 우리 순교자들은 누구보다도 삶을 아끼고 사랑하던 분들이었지만, 죽음을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한 제2의 세례로 받아들여 기꺼이 순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야말로 가장 본능적인 것인데, 하느님을 위하여 이것마저도 기꺼이 포기하고 순교하신 우리 선조들은 참으로 장하신 분들입니다. 103위 성인 가운데는 열네 살짜리 어린이에서 여든 살 고령에 이르는 분도 계시고, 하인에서 종3품 고관도 있었습니다. 교회 직위도 주교에서 평신도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습니다.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촌부도 있었습니다.
열네 살밖에 되지 않는 꼬마가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 고령의 노인이 어떻게 순교의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 하느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성인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으며, 순교자들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성령은 순교자들의 영이시다.”라는 토마스 머튼의 고백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현대는 피를 흘리는 순교보다는 땀과 노력, 봉사와 희생이라는 새로운 의미의백색 순교를 요구합니다. 결혼과 가정생활에도 피를 흘리지 않는 순교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진실과 정의를 위하여 평신도 신분으로 마치 수도자처럼 살아가는 분들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분들의 삶이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백색 순교, 순교자의 여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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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20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우리가 기리는 한국의 순교 성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통하여 이 땅에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 준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죽음만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깨닫고 실천했던 복음적 삶 또한 당시의 사회적 한계와 모순을 뛰어넘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지난봄 순교 성인에 대한 매혹적인 연구서 한 권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어 국문학과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유중철 요한과 함께 동정 부부로 살다가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 편지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그것을 박해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상황과 함께 연구하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저자는 당시 사회가 몰랐던 새롭고 위대한 인간상이 순교자들과 함께 등장했음을 이순이의 글에서 발견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순이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적고, 슬퍼할 친정 식구들을 위로하는 편지를 썼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순교자의 자기를 넘어선 숭고한 정신세계에 마음이 크게 울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선 시대 문학 전공자로서 조선 사회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형을 보았다. 현세를 넘어서서 천상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에서도 누구보다 성실했던 사람,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던 사람. 이 새로운 인간형에 대해 교회는 주목하지 않았고 교회 밖은 무관심했다”(정병설, 『죽음을 넘어서: 순교자 이순이의 옥중 편지』).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은 복음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의 완성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이 땅의 참된 인간화를 위한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은 봉헌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후예로서 우리 또한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복음의 가치를 증언하는 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순교 정신의 계승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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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20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은 한국 순교 성인의 대축일입니다. 이 땅의 103위 순교 성인은 오늘 복음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신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런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의 우리에게는 선조들의 영웅적인 순교 이야기가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목숨이라는 말은 영어로라이프’(life)입니다. 라이프생명또는목숨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인생이나생활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되새겨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정녕 나 때문에 자기 인생을 바친 사람은 그 인생을 살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새겨봅니다. 이는 수도자의 삶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주님을 증언하는 이가 바로 수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정녕 나 때문에 자기 생활을 바친 사람은 그 생활을 살리게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경우에는 우리 교우들, 곧 평신도들의 삶을 새겨볼 수 있습니다. 여가 활동이나 취미 생활 등 삶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주님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공인된 말은 아니지만, 이 땅의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것을적색 순교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일생을 바쳐 신앙을 증언한 삶을백색 순교’, 일상생활을 주님께 봉헌하며 희생하는 삶을녹색 순교라고도 합니다.
종교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순교의 또 다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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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20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충남 홍성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에 붙잡혀 순교한 황일광 시몬은 평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러한 신분에도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백정 출신으로 멸시만 당하며 살다가 세례를 받게 됩니다. 황일광 시몬은 사회적 신분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같은 형제자매로 부르는 신앙 공동체에서새 하늘과 새 땅을 체험합니다.
순교자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유다교 지도자들을 거슬러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다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뒤를 따른 것입니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로마 8,39 참조)는 사실을 믿으며 숱한 고통을 겪고 목숨까지도 잃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분하게도 이렇게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이기심과 욕심,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고 남들의 처지를 헤아리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삶에 주신 모든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자세, 이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순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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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 20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세 아이와 함께 전국 성지 순례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우리와 아이들의 일생을 하느님 뜻에 봉헌하였고 그 뜻에 맞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성지 순례를 한 다음, 성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햇살 속으로』라는 책 서문에 실린 저자의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 성지 순례를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있으면 좋은 휴양지를 찾아다니는 시대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나라 곳곳의 성지를 찾아서 다니는 모습이 생각만 해도 기특하고 아름답습니다.
기억에서도 아스라한 옛날이지만 저도 한 달 동안 국내 성지 순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신앙의 혼란으로 방황할 때 그 돌파구로 성지 순례를 택하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성지 구석구석을 돌며 성인들의 행적을 읽고 삶을 묵상하며, 주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성지를 순례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화가 된 것은 없었지만 홀로 고행을 하듯, 한겨울 추위 속에 걸어 다녔던 순례의 길은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과 함께 신앙의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온 땅이 성지라고 할 만큼 곳곳에서 일만 명에 이르는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를 비롯하여 자랑스러운 순교 성인들이 우리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요. 순교자 성월이 다 가기 전, 성지 한번 다녀오면 어떨지요. 많은 사람과 함께 성지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 또는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이 땅의 신앙인으로 살면서 적어도 우리 교회 순교 성인 가운데 단 한 분이라도 자신은 물론 우리 자녀들 기억 속에 새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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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20)


한국 천주교회는 하느님의 섭리가 순교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다시 신앙 선조들의 순교자적인 영성을 기억해 봅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박해 시대 때 순교한 분들을 발굴하여 시복 시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하루빨리 시복 시성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시고, 또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십니다.
이 땅에는 주님 때문에 치명한 순교자들이 참으로 산을 이루고도 남습니다. 그 많은 순교자들은 생명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증언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아낌없이 내놓으신 분들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순교자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숭고한 신앙 정신을 기억하고, 그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노력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그분들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낍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 각자는 순교자들의 신앙적 용기와 결단을 본받아, 이 시대에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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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20)


일본에서 선교하던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제자였던 ‘로드리고’ 신부는 사실 확인을 위해 일본 선교를 지원합니다. 잠입에 성공하지만, 그 역시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성화’를 밟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드리고 신부는 조용히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가 거절할수록, 그의 신자들은 더욱더 참혹한 고문을 받습니다. 자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교우들을 보면서 신부는 고뇌에 빠집니다. 배교해서 죽어 가는 그들을 살려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신앙을 위해 그들의 처절한 죽음을 묵인해야 하는가? 어느 것이 참된 사랑인가? 고뇌의 늪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그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한다. 밟는 네 발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다.’ 로드리고의 말이 이어집니다. ‘주님, 당신의 침묵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다.’ 마침내 로드리고는 성화를 밟습니다(후미에).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선택한 것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계획’보다 주님의 ‘이끄심’을 먼저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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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20)


순교란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굳건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죽음 다음에는 분명 내세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순교자들은 그러한 믿음을 지녔기에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고문과 협박에도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힘을 줍니다. 확실한 믿음일수록 주님의 은총도 확실하게 함께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순교자가 처음부터 그러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배교했다가 다시 순교한 분들도 많습니다. 믿음과 용기는 기도와 희생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순교자들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기도했고, 동료들을 위하여 빌었습니다. 그들의 청원을 어찌 주님께서 외면할 수 있으셨겠습니까?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순교는 아닙니다. 오늘날의 순교는 본능의 유혹 앞에서 참는 것을 뜻합니다. 가족을 위하여 희생으로 견디어 내는 것을 뜻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참아 낸다면 아무리 작은 노력이라도 훌륭한 순교가 됩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은 순교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분들은 그러한 일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순교자들의 삶도 깊이 묵상해야겠습니다. 우리 역시 그분들처럼 초연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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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20)


하느님의 신비는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 앞에서, 복잡한 일상사에서 그분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그냥 지나치면 평범한 일로 여겨지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그분 힘이 닿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을 인간적 계산만으로 파악하려 들면 힘이 듭니다. 은총이 들어올 틈새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은 하느님의 뜻으로 인정하기 쉬우나, 궂은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라고 하신 십자가는 무엇이겠습니까? 하기 싫은 그 무엇입니다. 또한, 하고 싶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십자가는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과연 망설임 없이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십자가 앞에 선뜻 나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순교자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들을 기리며 그분들의 삶을 본받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가르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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