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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19 -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이기양 요셉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19 조회수79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09 19 () 가해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티모테오 1 3,1-13
루카복음 7,11-17


이기양 요셉 신부님


<
기적을 부르는 믿음 >


‘죽은 자식 불알 잡기‘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고 그래 봐야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아쉬움을 접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일이 오늘 복음에 발생했지요.

한 과부가 외아들이 죽자 장례를 지내려 상여를 따라 갑니다. 마침 나인이라는 동네를 가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슬픔에 잠겨 떠나가는 상여와 마주치시지요. 측은한 마음이 드신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위로하시며 젊은이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옛 예언자들 중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고, 하느님의 사람이 찾아와 주셨다고도 하며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이지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기적은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서도 전해지는 사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과부와 고아는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가장 밑바닥 층에 속하는 약자들입니다.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은 재산과 권리조차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그 아들이었고 그가 생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마저 죽음에 빼앗겨 버리는 일이 일어났지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약자들의 보호자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성경 저자들은 구약과 신약에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내는 기적을 연이어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는 기적이 열왕기 상권 17장과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 7장에 언급되고 있지만은 배경과 주제는 전혀 다릅니다. 열왕기 상권 17장에는 엘리야 예언자에게 먹을 것을 준 사렙타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지는 일이 일어나지요. 이때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소리쳐 부르며 죽은 아이 위에 엎드려 몸과 몸을 맞추기를 세 번 합니다. 이는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생명의 힘이 산 사람에게서 죽은 사람에게로 옮겨간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엘리야가 세 번 몸을 맞추기를 했습니다만 여기에서의 핵심은 엘리야의 기도입니다.

“주 저의 하느님, 이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1열왕 17,21)

그러자 하느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은 아이에게 다시 생명의 호흡을 주셨고, 마침내 아이는 살아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셨지요.

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슬픔에 잠겨 떠나가는 상여를 멈추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루카 7,13)고 위로하시며 앞으로 다가서십니다. 그리고는 상여를 메고 가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시고 상여에 손을 대며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죽은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루카 7,15)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시지요.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는 전혀 다르게 직접 당신의 힘으로 죽었던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하고 말하기도“(루카 7,16)하지요. 예수님의 이 이야기는 곧 온 유다와 그 근방에 두루 퍼져나갔습니다.

구약에서는 엘리야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직접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과부의 외아들을 직접 살려 주시는 사건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의 출현과 함께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죽은 후에나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실천되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인도에서 살았던 현자 썬 다싱의 이야기입니다. 네팔을 여행하다가 썬 다싱은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한 곳에서 우연히 한 여행자를 만나게 됩니다. 눈보라를 헤치며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고 있던 그들은 눈밭에 쓰러진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썬 다싱이 갈등 끝에 그 사람을 데리고 가자 하자, “미쳤군요, 우리도 죽을 판인데… 우리는 인가를 찾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하며 동행자는 서둘러 떠나고 말았습니다. 썬 다싱은 죽을 각오를 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죽어가는 사람을 등에 업고 한 발자국씩 혼신의 힘을 다해 걸어갔습니다. 얼마를 가다 보니 몸이 훈훈해졌고 등에 업혀 있던 사람도 깨어났습니다. 둘은 몸을 밀착하여 서로의 온기를 받으며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동녘이 밝아오자 그들은 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발견하였습니다.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사람이 마을 어귀에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나고 새로운 희망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이도 일으켜 살리시는 하느님 나라는 구약이나 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지금 우리 안에서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오신 그 분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되찾아 주는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 방식을 고집하고 내 능력대로 살고 싶어하면서 기적을 바라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지요. 그런 삶의 자세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절망에서 희망을 부르는 기적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인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는 기적을 불러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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