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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0 조회수1,76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제1독서 지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제2독서 로마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마 제주도에 갈 일이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빌리실 것입니다.

섬인 제주도에 자동차를

가지고 갈 수가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우리나라 최대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에는 렌터카가

아주 많기 때문에 쉽게

빌릴 수 있고 또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주도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일이 아니라면

자동차를 빌려서

운전을 합니다.

그래서 올 초,

제주도에 갔을 때에도

자동차를 빌려서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나더군요.

분명히 제가 적당한 가격을

지불해서 자동차를 빌렸지만

이 자동차가 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안전

 운전을 해야 합니다.

또한 깨끗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빌린 자동차는 분명히

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반납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빌린 자동차를

마치 자기 것인 양 함부로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중에 반납할 때에 이에 따른

배상을 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 역시

언젠가는 주님께 반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살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것인 양 아무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으로부터 잠시 빌린

우리의 몸을 언젠가는

주님께 잘 반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주인이신 주님께서

보시기에 엉망진창으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함부로 다룬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주인처럼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지만,

 진짜 주인은 아니지요.

언젠가는 주님 앞으로 가서

이 세상에서 살도록 맡겨놓은

이 몸을 주님께 반납해야 합니다.

반납 조건은 주인이신 주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했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삶,

주님의 뜻에 맞게 철저하게

 살았는지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조건에 맞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인 것입니다.

이분들은 주님을 이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생명까지 봉헌하신 분들이지요.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의 무서운 칼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내어

던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순교자들은 주님께 자신의

몸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되돌려

드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현재 과거의 박해시대처럼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주님께서

장 강조하신 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삶을 통해 순교를

할 수 있다고 하지요.

바로 백색 순교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백색 순교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주님 앞에

자신의 몸을 반납할 때에

잘 사용했다면서

칭찬 받지 않을까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

순교자들처럼 우리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반납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열매"

농사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한 청년이

 밭에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고구마를

너무나도 좋아했기 때문이지요.

좋아하는 고구마를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더 열심히

고구마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이 고구마는 줄기만 옆으로

계속 뻗어가기 때문이지요.
고구마니까 당연히 줄기가

옆으로 계속

뻗어나가야 하겠지요.

그러나 농사가 처음인

청년은 고구마가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싹이 나고 잎이 나면 얼

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나무가 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자라는

고구마를 보면서 결국 잘못

심었다면서

그 밭을 떠나 버렸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생각과 달리

땅속에서는 고구마가

가득 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청년처럼

보이지 않는다면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뜻은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늘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미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께서는 주시는 커다란

선물이 나타날 것입니다.

어제 강의를 갔던

수원교구 평촌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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