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미사의 영성 (41)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전에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또한 사제도 영성체 전에 성체를 신자들에게 들어 보이면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미사 때 우리는 왜 성경의 여러 다양한 상징과 표상들 중에서 특별히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할까요?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가 고난받는 ‘야훼의 종’과 연결하여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를 염두에 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라고 언급한 것과 연관되기도 하며(이사 53,7),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이야기한 것과 연관되기도 합니다(요한 1,29). 또한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것처럼 죽임을 당하여 자신의 피로 값을 치러 만백성을 구원한 어린양과 연결되기도 합니다(묵시 5,8-12). 이처럼 어린양은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희생 제물의 상징적 의미와 주로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린양이 가진 이러한 희생의 측면과 연관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참된 파스카의 어린양이자 구세주이심을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희생의 모습이 희생 제사인 미사 안에서 재현되고 현재화되기에, 우리 삶의 참된 어린양이신 주님께 자비를 구하면서 우리는 구원의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게 됩니다. 사제는 성반이나 성작 위로 성체를 받쳐 들어 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들은 복되도다.”라고 말합니다. 쪼개진 성체를 들어 신자들에게 보이는 이유는 그렇게 쪼개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사랑을 다시 주님께서 거둬 가지 않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런 성체를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 자신의 노예를 고쳐 주길 청하였던 백인대장의 믿음과 연관된 것으로(루카 7,1-10) 우리 또한 지존하신 주님을 모실 자격은 없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에 이르는 영광을 얻을 수 있기를 청하는 모습이 됩니다. 이 고백 안에 세 가지 중요한 신앙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분께 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의탁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합당치 않다’라고 스스로 낮추어 고백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하느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게 되는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내가 인간적으로 바라고 원하는 그런 은총이 아니라 ‘한 말씀’이라고 하는 ‘은총의 본질을 청함’입니다. 이런 신앙을 통해 참된 영혼의 치유가, 즉 우리의 구원이 이뤄지길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사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참된 어린양이심을 고백하고 감사드리며, 정성스레 영성체를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29일(가해)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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