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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21 -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1 조회수96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21 () 가해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Feast of Saint Matthew, Apostle and evangelist

에페소서 4,1-7.11-13
마태오복음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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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Reading 1


Eph 4:1-7, 11-13

Brothers and sisters:
I, a prisoner for the Lord, urge you to live in a manner worthy of the call you have received, with all humility and gentleness, with patience, bearing with one another through love, striving to preserve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 one Body and one Spirit, as you were also called to the one hope of your call;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But grace was given to each of u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Christ's gift. 

And he gave some as Apostles, others as prophets, others as evangelists, others as pastors and teachers, to equip the holy ones for the work of ministry, for building up the Body of Christ, until we all attain to the unity of faith and knowledge of the Son of God, to mature manhood, to the extent of the full stature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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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Gospel


Mt 9:9-13

As Jesus passed by,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customs post.
He said to him, "Follow me."
And he got up and followed him.
While he was at table in his house, many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and sat with Jesus and his disciples.
The Pharisees saw this and said to hi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He heard this and said, "Those who are well do not need a physician, but the sick do.
Go and learn the meaning of the word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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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21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우리와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의 출신 배경과 경력, 인맥과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시고, 그가 하느님 나라에 헌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십니다. 자기 민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 제국에 바치는 세리의 직업은 유다인들에게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필연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오가 세리가 된 것은 숙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먹고 살 길을 찾는 방식들 가운데 우연한 순간 내 평생직장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신념에 따른 일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충실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의 잘못된 조직과 이념 때문에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세리인 마태오의 직업은 이방 민족의 지배 속에서 하느님 백성의 지위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와 모순을 알려 주는 상징적인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삶의 모순으로 닥친 죄의 현실을 치유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각자의 능력이 비교되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임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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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21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마태 9,9 참조). ‘그곳’은 마태오 복음 9 1절에 따라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가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마을’이며 ‘예수님께서 사시는 마을’ 카파르나움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 사도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전합니다(마르 2,14).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하느님의 선물’인 마태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인 세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고, 부정한 사람인 죄인들과 어울려서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왜 예수님께서 품위 없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지 제자들에게 따졌습니다. 그들의 비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영적 의사’이며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한 로마의 돈을 만진 마태오의 손은 정화 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뚜렷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산상 설교, 선교사들에 대한 가르침, 하늘 나라의 비유들,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위한 권고들이 메시아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그 가르침들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고, 후일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마태오 사도의 열정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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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21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마태오 사도에 대하여 복음이 전하는 내용은, 그가 세리였다는 사실과 세관에 앉아 있던 그를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세리직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마태오는 ‘주님의 은덕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리고 마태오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든, 그 당시 세리는 공공연하게 독사와 같은 매국노로 지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일하던 그런 부류의 세리 마태오를 사도로 부르신 것은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부르심을 먼저 받은 다른 사도들에게도 이 일은 언짢았을 것입니다. ‘저런 인간을 우리와 한 무리가 되게 하시다니.’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마도 어부는 세리와, 세리는 어부와 어울리고 싶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이신 아버지 하느님,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어부도 세리도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이들 가운데에는 죄인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자비를, 병든 이들을 고쳐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해야 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사도로 부르셨나 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이런저런 조건으로 골라 뽑는 우리의 모습이 주님 앞에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인간적 조건과 자격이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을 체험하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마태오는 본인이 저술한 마태오 복음에서 자신이 ‘세리’였음을 고백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다고 확신하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책을 느끼면서 절실하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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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21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마태오 사도에 대하여 복음이 전하는 내용은, 그가 세리였다는 사실과 세관에 앉아 있던 그를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세리직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마태오는 ‘주님의 은덕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리고 마태오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든, 그 당시 세리는 공공연하게 독사와 같은 매국노로 지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일하던 그런 부류의 세리 마태오를 사도로 부르신 것은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부르심을 먼저 받은 다른 사도들에게도 이 일은 언짢았을 것입니다. ‘저런 인간을 우리와 한 무리가 되게 하시다니.’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마도 어부는 세리와, 세리는 어부와 어울리고 싶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이신 아버지 하느님,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어부도 세리도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이들 가운데에는 죄인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자비를, 병든 이들을 고쳐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해야 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사도로 부르셨나 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이런저런 조건으로 골라 뽑는 우리의 모습이 주님 앞에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인간적 조건과 자격이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을 체험하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마태오는 본인이 저술한 마태오 복음에서 자신이 ‘세리’였음을 고백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다고 확신하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책을 느끼면서 절실하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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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2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죄인이란 ‘치유’의 대상이지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곧 죄를 지었다고 해서 공동체에서 무조건 격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일반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떠올리며,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료의 첫 단계는 진단입니다. 의사는 먼저 병이나 증세의 정도를 살펴본 뒤 그 원인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어떤 고통의 결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그 죄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성찰하도록 이끄십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진단이 끝나면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립니다. 약물 복용이나 수술 등의 방법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는 통원 치료나 입원 치료까지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말씀의 영약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정화시키십니다. 때로는 그 죄를 단호하게 끊도록 수술과도 같은 일로 이끄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단번에 하지 않으시고, 시간을 두고 고쳐 나가기도 하십니다.
의사는 처방이나 수술 뒤에 환자에게 적절한 조언을 덧붙입니다. 음식에서 조심해야 할 점, 생활 습관에서 개선해 나가야 할 점 등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그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삼가야 할 점들을 일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중증 환자를 건강한 군인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바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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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21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어부들은 비린내 나는 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악수하기조차 꺼리는 사람들입니다. 또 세리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하여 유다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세리인 마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따랐습니다.
유다인들이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자들, 이방인들과 사귀는 자들, 그리고 매춘부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은 바리사이들의 분노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다인 사회에서 공적으로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세리들은 동료 세리들 이외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종교적으로 파문 당한 사람들처럼 취급 당했습니다. 기도를 바치고 싶어도 사람들 속에 끼지 못하고 멀찌감치 겉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를 하려고 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도와주시려고 몸소 나서십니다. 그들이 새로운 생활을 하여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많이 아파 본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잘 압니다. 용서받고 사랑 받아 본 사람이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놓았을 것입니다. 이제 마태오는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사도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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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21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오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들어가기는 하였지만 치욕적인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때 세리는 자기 민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 제국에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남의 나라에 세금을 거두어 바치는 앞잡이 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려고 과다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돈을 위해 영혼과 민족을 파는 세리를 몸을 파는 창녀보다 더 멸시하고 죄인 다루듯 했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런 자신의 과거가 못마땅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은 그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예수님 마저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아랑곳하시지 않고 그를 제자로 삼아 공생활 내내 함께하십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보듯, 마태오는 자신이 과거에 세리였음을 떳떳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 삶에서 불만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과거의 상처나 죄가 치유되지 않은 채 열등감으로 작용할 경우, 자신을 혐오하거나 무기력한 생활을 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집니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행동을 나쁜 쪽으로 자극하여 ‘파괴적’으로 나아가게 하며, 반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자신감을 얻고자 노력하게 하여 ‘창조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는 자신의 모든 과거의 상처를 품어 주시는 주님을 통해 치유되었습니다. 그에게 수치스러운 과거는 죄인을 받아들이고 치유하시는 주님 사랑을 드러내는 ‘창조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마태오를 사랑하시듯,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비록 못나고 상처투성이인 우리이지만, 우리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인생의 과거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당신의 창조적 도구로 쓰십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역사, 어느 것 하나 주님 안에서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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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21)


주님께서는 세관장인 마태오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고 하십니다. 당시 세관장(세리)은 돈이 많고 권력까지 지녔지만, 죄인 취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 제국에 바쳤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로마에 바침으로써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마태오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시어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기까지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이의를 제기해 보지만, 주님의 말씀은 단호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사람을 보시고 대하시는 시각이 세상의 잣대와 확연히 다른 주님이십니다.
마태오는 행운아입니다. 난생 처음 그를 인간으로 대해 주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행운아입니다. 문제는 마태오처럼 우리도 철저하게 주님을 따라나서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마태오처럼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따라나서는 삶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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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21)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파격입니다. 당시 세리는 죄인과 동일시되던 신분이었습니다. 그들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시어 ‘당신 사업’을 맡기려 하십니다. 사람들이 따라 줄까 하는 것은 염두에 없으십니다. 사람을 보시는 눈이 세상 시각과는 확연히 다르십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고기 잡는 어부이거나,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들을 변화시켜, 초대 교회의 뛰어난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세상 기준으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축복입니다. 어부와 세리를 ‘영적 지도자’로 만드신 분께서는 지금도 ‘그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롭게 따르기만을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만큼 ‘빛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요? 빛의 생활이 그분을 따르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둠의 자식’이라 일컫던 마태오를 선택하셨습니다. 그의 직업을 보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셨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셨습니다. 마태오를 닮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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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21)


연중 제2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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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21)


마태오는 세리였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곤란하다는 것이 당시 많은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세리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반대 세력을 세금으로 묶었습니다. 그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탈세를 유도하고, 반항의 기미가 보이면 세무 사찰로 협박하였던 것입니다. 그 하수인이 바로 세리였습니다.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마태오는 다른 세리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곧바로 응답한 것이 이를 말해 줍니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이 부르심에 마태오는 즉각 따릅니다. 그가 세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직업을 열망하고 있었을까요? 아무튼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러나 마태오에게 어찌 고뇌가 없었겠습니까? 두렵고 불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과감히 털고 일어납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부르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마태오가 그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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