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0922 -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2 조회수74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22 () 가해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Friday of the Twenty-fourth Week in Ordinary Time

티모테오 1 6,2-12 / 코린토 115,12-20
루카복음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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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 6,2-12

사랑하는 그대여, 2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3 누구든지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4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5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 갑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6 물론 자족할 줄 알면 신심은 큰 이득입니다.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9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Reading 1


1 Tm 6:2c-12


Beloved:
Teach and urge these things.
Whoever teaches something different and does not agree with the sound words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he religious teaching
is conceited, understanding nothing, and has a morbid disposition for arguments and verbal disputes.
From these come envy, rivalry, insults, evil suspicions, and mutual friction among people with corrupted minds, who are deprived of the truth, supposing religion to be a means of gain.
Indeed, religion with contentment is a great gain.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just as we shall not be able to take anything out of i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shall be content with that.
Those who want to be rich are falling into temptation and into a trap and into many foolish and harmful desires, which plunge them into ruin and destruction.
For the love of money is the root of all evils, and some people in their desire for it have strayed from the faith and have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pains.

But you, man of God, avoid all this.
Instead, pursue righteousness, devotion, faith, love, patience, and gentleness.
Compete well for the faith.
Lay hold of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when you made the noble confession 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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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15,12-20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5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거슬러 증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Reading 1


1 COR 15:12-20

Brothers and sisters:
If Christ is preached as raised from the dead, how can some among you say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neither has Christ been raised.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then empty too is our preaching; empty, too, your faith.
Then we are also false witnesses to God, because we testified against God that he raised Christ, whom he did not raise if in fact the dead are not raised.
For if the dead are not raised, neither has Christ been raised,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your faith is vain; you are still in your sins.
Then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in Christ have perished.
If for this life only we have hoped in Christ, we are the most pitiable people of all.

But now Chr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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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Gospel


Lk 8:1-3

Jesus journeyed from one town and village to another, preaching and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Accompanying him were the Twelve and some women who had been cured of evil spirits and infirmities, Mary, called Magdalene, from whom seven demons had gone out, Joanna, the wife of Herod's steward Chuza, Susanna, and many others who provided for them out of their re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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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22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의 여정에서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일행을 돌보는 여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인 약자이자 소외 계층이었던 당시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여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시중을 들었다고 전합니다.
여인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와 용서를 체험한 이들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화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지닌 영적 감각과 헌신은 세상의 재화가 결코 행복의 조건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앙인이 빠질 수 있는 유혹들을 실감 나게 나열합니다. 영적 교만은 논쟁과 설전, 시기와 분쟁, 중상과 못된 의심을 일으키고, 알력 다툼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까지 삼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인생의 성공을 재화와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닥칠 수 있는 파멸과 멸망의 유혹의 경고는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이고, 돈 때문에 믿음을 잃고 방황하며 아픔을 겪는 사람은 바오로 사도의 시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듯싶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욕망이 삶을 충동하는 에너지로 잘 활용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공이 적자생존과 승자 독식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에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은 없습니다.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 하는 길이야말로 함께 행복해지는 예수님의 길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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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16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공염불에 불과하며 복음 선포의 원동력이 없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이들의 부활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비슷하게 되며 천상 인간으로 변모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하느님의 생명이 인류 안에 부어져 새롭게 창조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실 때 여인들이 뒷바라지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듣고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악령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구원받은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자신들의 재산과 재능을 구원 사업을 위해 봉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의 헌신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교회 공동체 안에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님은 가톨릭 교회의 초기 박해 시대에 신앙을 저버린 신자들을 다시 교회에 받아들이고 화해시킨 분입니다. 초기 교회의 이단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고 그리스도 안에 일치된 공동체를 이루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는 라틴 문학에 정통하였으며 성체성사 안에 하나로 일치한 교회의 모습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도 두 분을 본받아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뒷바라지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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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1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티모테오 1서는 사목 서간으로 분류됩니다. 이 서간의 권고 내용은 모든 신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사목자들에게 해당됩니다. 이 서간은 그릇된 가르침, 교만, 병적인 논쟁과 설전, 시기, 분쟁, 중상, 못된 의심, 끊임없는 알력, 이 모든 것이 돈을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릇된 가르침이라고 하면 고대와 중세의 각종 이단을 생각하기가 쉽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성경과 교리를 따르는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들을 현혹시켜 맹종할 만한 내용들만을 나열하는 경우도 있고, 가톨릭 교리에 다른 종교의 것을 혼합하여 어느새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떠나는 주장도 있으며, 교회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릇된 신심을 전파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 이득은 사람들의 인기나 세속적인 명성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익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신심을 전파하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거기에는 반드시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람이 하는 일들이 현세적 이득을 위한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늘 복음의 한 단면이기는 합니다만,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가난하여 머리 둘 곳도 없었기에 여러 여인이 그분들을 적극 도와드렸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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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19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한 모습을 간략하게 보여 줍니다. 복음을 들으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시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새겨 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촉구합니다.
인간이란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 지탱해 주는 존재라는 의식이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론, 유감스럽게도 교회 공동체에서도 무척 희미해졌습니다. 이는 사회와 교회의 위기의 징후이면서도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을 하면서 문득 퇴락의 심각한 위기에 놓인 자신들의 사회를 걱정하며공동체타력(他力)의 의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웃 나라 일본의 한 작가와 철학자의 날카로운 지적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의 진단이 우리 사회와 교회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전후 일본 사회는 예외적으로 풍요롭고 안전했습니다. 배우자가 없어도, 동료가 없어도, 돈만 있으면 혼자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었지요. 아니, 도리어 혼자가 훨씬 자유롭고 쾌적했습니다. 그러면서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할까?’라는 지혜의 소중함을 잊어버렸습니다. 공동체가 없어도 돈만 있으면 필요한 것을 모두 시장에서 상품의 형태로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속에 깊이 침투해 버렸습니다.”(우치다 타츠루,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더 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으로, 그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 있습니다.”(이츠키 히로유키, 『타력』)
오늘날의시대의 표징들은 개인이 고립된 원자화의 삶에서 공동체적 삶의 모습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희망을 세상에 줄 수 있도록, 먼저 교회 안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선택하는 모습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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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20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복음은 아주 짧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구원 사업을 펼치실 때 당신 혼자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수행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효율성으로만 따진다면 당신 홀로 일하시는 것이 더욱 나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의 구성원은 대부분 복음 선포의 능력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홀로하시는 것보다함께하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이 공동체 안에 여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 여자는 증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적인 일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귀족 집안의 여인들은 밖에 나갈 때 머리 장식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고, 서민층 여인들은 일터를 제외하고는 혼자 들판에 있어서도 안 되었고, 낯선 남자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여건 속에서 여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여기셨습니다.
또 하나의 파격적인 부분은 공동체의 구성입니다. 구성원의 면모를 유심히 살펴보면 참으로 한데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창녀 막달레나도 있었고, 고위 관리의 부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능력 있는 사람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여자가 상품화되거나 같은 부류와 계층끼리만 어울리는 모습이 피할 수 없는 사회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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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21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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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16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을 보니, 예수님과 제자 일행을 도와주며 따르는 여인들이 있었네요.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의 관습으로 볼 때 여자들이 남자들을 따르고 돌보아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성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몸으로 오로지 하늘 나라만을 선포하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기들 재산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나라 박해 시대에도 이 비슷한 일을 한 여성이 있었지요. ‘하느님의 종강완숙 골룸바입니다. 강완숙 골롬바는 조선 교회 첫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의 입국을 돕고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였습니다. 또한 1795년 을묘 박해가 일어나 주 신부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주 신부를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하여 당시의 유교 관습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을 함으로써 주 신부의 선교 활동을 도와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셨지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7-28). 당시 신분의 차별이 매우 심했던 유다 사회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이고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좋은 일도 궂은일도, 남자도 여자도 따질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당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참으로 아름답고 놀랍습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봉사하는 여성들이 있어서 교회는 더욱 생명력을 가집니다.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복음을 선포하는 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하늘 나라를 일구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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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17)
(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 곧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뽑아 세우신 열두 제자와 함께 당신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인들도 주님 일행에 동참하여 전 재산으로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당시 여성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는 위치가 떨어지는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소외되고 죄인 취급 받던 여성이 주님 일행에게 시중을 듭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재산을 다 팔아서 말입니다. 이 여인들이 결국엔 주님께서 만드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됩니다. 주님께서 일구어 나가시는 공동체의 중요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오히려 남성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우리나라 박해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최초 여성 회장이었던 순교자 강완숙 골룸바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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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18)


복음에서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 보셨고, 부활하신 그분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분이십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예수님을 추종하며 사셨을까요
한때 포기했던 삶이었는데, 그분께서 들어와 ‘빛과 향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때 좌절했던 인생이었는데, 그분을 만나 ‘삶의 기쁨’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간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평생의 은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는 것을 ‘삶의 이유’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지켜 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런 사랑을 예수님께 쏟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점점 승화시켜 주셨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사도’로 변신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함을 용서하소서.
그 영혼만을 사랑하려 하나 가끔은 그를 안고 싶어 함을 용서하소서.
부질없이 깊숙이 묻어 버린 기억을 밤새워 도로 캐어 냄을 또한 용서하소서.
허다한 날 혼자 앓는 지병이 힘겨워 가끔은 그를 잊은 척함을 용서하소서.
아니 정말로 잊기 위해 가망 없는 노력을 더러는 함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나를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그의 곁에 갈 수 없고
그를 위해서는 백 리라도 뒤로 물러설 수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나이다

‘이화은’의 시 ‘사람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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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19)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래아 호반의 휴양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일생일대의 변화를 체험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가운데 언제나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했던 여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러기에 ‘일곱’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이유는 없습니다. ‘강렬한 악의 세력’에 빠졌던 여인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무튼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전혀 새로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 뒤로는 일편단심 예수님만 섬기며 삽니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을 되갚는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끝까지 지켜본 여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자 엄청난 변화를 체험합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 만큼 은혜로운 변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악한 기운’이 없는지요?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악의 세력’을 느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내리신 주님의 은총을 우리도 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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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21)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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