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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2 조회수1,87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9월 22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제1독서 1티모 6,2ㄹ-12

사랑하는 그대여,

2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3 누구든지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4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5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 갑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6 물론 자족할 줄 알면

신심은 큰 이득입니다.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9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 루카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직업, 수입, 외모, 성격, 출세, 소

유하고 있는 것들, 영성 등등....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어떤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어쩌면

남들에 대해 곁눈질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네요.
곁눈질하는 모습은 떳떳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당당히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

모습이 좋아 보일까요?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활 자체도

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은

비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런 모습도 있구나.’,

 ‘이런 것도 가지고 있네.’,

‘나 역시도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어.’라면서 남들은 물론이고

 내 자신까지도

쿨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자신 없는 소극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부러워하는 대상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특별한 능력에 부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는 생각에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많이 받으면

 좋을 것 같지만,

이는 특별대우를

주님으로부터 받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해야 할 의무가

더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가진 것을 모두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많이 가진 것을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알았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그러한 분들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성의 지위가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당시 여인의 위치는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가 낫게 된

여인도 있었지요.

병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었던 것을 기억하면

불행만이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보면서

불평불만 안에 머물지

 않은 것입니다.

대신 가지고 있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를 수가 있었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보면서 남과 비교하고

또한 지금 가지지 있지

 못함에 불평불만을

간직하고 있다면,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소유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

어제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사냥꾼이 우연히

수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들이 다들

빈둥빈둥

놀기만 할 뿐인 것입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냥꾼은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왜 수사들이

놀기만 하느냐면서 따졌습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사냥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화살을

시위에 물리고

 뒤로 힘껏 당겨 보세요.”
말대로 하자

수도원장은 계속해서

 “더 세게 당겨 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시위를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수도원장은

그만이라는 말 대신 “더 세게,

 더 더”만 말할 뿐이었지요.

 결국 사냥꾼은

멈춰서 이렇게 말합니다.
“더 세게 당겼다간

 활이 부러질 거예요.”
그러자 수도원장이 말합니다.
“하느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사들도 계속

수도생활만 할 수 없지요.

그렇게 혹사하면

금방 병들고 말 거예요.

때로는 그들도 쉬어야 합니다.”
삶 안에서 계속 시위만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의 일도 쉼이 필요한데,

세상일은 어떠할까요?

그런데 쉼 없이 무조건

 전진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꽃을 보면서

마음의 쉼을 가지면 어떨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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