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5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4 조회수1,480 추천수11 반대(0)

저는 아주 어릴 때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4살 정도였을 때가 기억납니다. 고양이가 있었고, 할머니가 계셨고, 세상은 엄청 크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더 어릴 때의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제로 살고 있고, 아기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아기들이 자라는 과정을 잘 몰랐습니다. 며칠 전에 아기들이 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스스로 뒤집기 위해서는 4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누워만 있던 아기가 앉아 있으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무언가라도 잡고 서 있으려면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드디어 아이가 똑바로 서려면 11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엄마라는 말을 하기까지는 1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하루도 넘기기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내가 그렇게 도움을 받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초심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 군사력으로 세계 최강인 미국도 불과 200년 전에는 유럽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신생국가였습니다. 유럽에서 건너간 이민자들이 원주민들과 경쟁하면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힘을 키웠던 유럽의 국가들도 2,000년 전에는 로마 제국과는 맞설 수 없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문명을 자랑하는 인류도 20,000년 전에는 크게 내세울 것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기에 힘을 자랑하기 보다는, 약한 국가를 억누르기보다는 가진 것을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다르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존재를 이야기 하시고, 인간은 소유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경계가 없지만 소유는 경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존재는 욕망이 없지만, 소유는 끊임없는 욕망 때문에 채우고 또 채워도 늘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존재는 굳이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소유는 자꾸만 비교하려고 합니다. 더 많이 가진 것을 가지고 자랑하기도 하고,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더 적게 가진 것을 가지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열등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소유의 영역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지면 세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살 때의 일입니다. 제가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는 동네 앞에서 그냥 버스를 탔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버스를 타고 나니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해서 내렸습니다. 버스 번호도 모르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냥 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강인데 그때는 한강을 보고 바다인줄 알았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경찰 아저씨를 만났고 경찰 아저씨는 저를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제가 주소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고(그때는 집에 전화도 없었지만) 어떻게 아버지 이름은 알았습니다. 저는 그날 파출소에서 하루를 지냈습니다. 5살 나이에 파출소를 갔으니 저도 상당히 일찍부터 그 쪽하고 친하게 지낸 셈입니다. 다음 날 아버지께서 파출소에 오셨고 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파출소의 위치도 저를 도와주신 경찰 아저씨도 생각이 나질 않지만 그날 저녁에 먹었던 밥은 기억이 납니다. 저 나름대로는 어릴 때 경험했던 아픈 추억입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의 일이었고 자라면서 그때의 일은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입었던 옷, 신발 색깔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려 방황하는 저도 고생을 했지만 그런 아들을 찾기 위해서 온 동네를 다니신 어머니의 고통은 훨씬 크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사랑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넘치게 주십니다. 초대교회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드러나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교회의 모습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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