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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9.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4 조회수2,86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일

제1독서 이사 55,6-9

6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7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제2독서 필리 1,20ㄷ-24.27ㄱ

형제 여러분, 나는

20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7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복음 마태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

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동조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집단의 압력에 따라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명확한 답을

알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리 사람들에게

 틀린 답이 답인 것처럼

 대답하겠습니다.

처음에 몇몇 사람들은

오답을 말하는 사람들을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 역시

 틀린 답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해서 틀린 답이 정답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 역시 그러한

체험을 하나 했습니다.

식당에 갔는데 소위 미식가라는

소리를 듣는 한 사람이 반찬 중의

하나를 가리키면서 약간 상한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역시

살짝 맛을 보더니

 “상한 것 맞네.”라고 동조합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호기심 많은 또 다른 사람

역시 상했다고 말했고,

 몇몇 사람은 아예 그 반찬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인에게 살짝

물어본 결과 반찬인 나물이

원래 쌉쌀한 맛이 날 뿐

전혀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조현상의 핵심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같은

답을 할 때, 그 상황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대학에서

이를 실험했는데,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 집단이

있는 경우 점점 감소해서

 동조율이 75%까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무조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옳다면

사회적 압박을 뚫고서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선택을 통해

이제까지 불합리한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압박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못하면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판단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을

 대하는 밭 임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침부터 일한 사람,

그리고 계속해서 아홉시,

열두 시, 세 시, 다섯 시부터

일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 일당을

계산하는데 이 밭 임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나눠줍니다.

이 모습을 그 누구도

정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한 양이 다른데

똑같은 임금을 준다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밭 임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밭 임자는 당시 사람들이

하루를 먹고 살기에 필요한

한 데나리온을 줘야

배고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에

기초로 생각하시고

 행동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동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는

소수 집단이라도

 형성되어진다면,

점점 세상 사람들이 바뀌고

 세상 전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살아갈 때,

그대의 삶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된다.

(혜광)

갑곶성지에서의 순교자성월 기념 음악회.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어떤 책에서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질문을

똑같이 던져 보겠습니다.
“이번 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수영하러

 가기로 한 당신,

 당신이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다.

물론 여러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수영복을 산다.’,

또는 ‘수영복을 찾아둔다.’

가 대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이어트를 한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왜 이러한 대답이 많았을까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에게 보일 나’에 대한

생각 때문에 가장 중요한

수영복을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사실 사람들은 남에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대학에서 이러한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잠시

머물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 지를

보는 것이었지요.

이 옷을 입은 사람의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알아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옷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지

 23%에 불과 했습니다.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보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더 많은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결혼식도 있었지요.

바쁜 하루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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