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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가 / 연중 제25주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4 조회수923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늘 나라는 포도밭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에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가보니 다른 이들이 일 없이 장터에 있었다. 그래서 당신들도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시, 다섯 시쯤에도 가보니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왜 온종일 일 없이 있소?’라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밭으로 가시오.’하고 일렀다. 저녁때가 되자 주인은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부터 맨 먼저 온 이에게까지 품삯을 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했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들은 투덜거리며, ‘나중에 온 자들은 한 시간만 했는데도, 뙤약볕에서 고생한 우리처럼 대하시는군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친구여, 내가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오? 당신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으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에게도 당신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단 말이오?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16 참조)

 

예수님 계산법에 때때로 우리는 당황한다.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 둔 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것처럼, 세상 이치와는 다르다. 포도밭에 아침부터 종일 일한이나, 일이 거의 끝날 무렵에 온 이나 똑같다. 마치 평생 착하게 산이나, 평생 강도 짓하다 죽기 전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 만나 회개하고 죽은 강도가, 똑같은 대접받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경제 정의이지만, 나중에 와 적게 일한이나 먼저 와 종일 일한 이가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은 이는 우리 경제정의와 맞지 않다. 비록 계약으로 보면 같은 품삯을 주는 것이 정당하지만, 먼저 온 일꾼이 더 많은 품삯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타당하다 여겨진다.

 

예수님 계산법이 이렇다면, 평생 즐길 것 즐기고 제멋대로 놀다가 죽기 얼마 전에 회개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면 어떨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되고 시간 여유 있을 때, 그때부터 열심히 성당 나가고 봉사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마음 가진 이일수록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기에 주님 일은 일찍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억울할 것도, 늦게 부름 받았다고 기뻐할 게 아니다. 오래 했다고 자랑할 것도 짧았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그분 일은 많이 했느냐의 양() 개념도, 잘했느냐의 질() 개념도 아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포도밭,일꾼,데나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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