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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25 -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5 조회수84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 25 () 가해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Monday of the Twenty-fifth Week in Ordinary Time

에즈라기 1,1-6 / 잠언 3,27-34
루카복음 8,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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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에즈라기 1,1-6

1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3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이제 그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게 하여라.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4 이 백성의 남은 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모든 지방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의 집을 위한 자원 예물과 함께, 은과 금과 물품과 짐승으로 그들 모두를 후원하여라.

5 그리하여 유다와 벤야민의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과 사제들과 레위인들, 곧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곳에 계신 주님의 집을 짓도록 하느님께서 마음을 움직여 주신 이들이 모두 떠날 채비를 하였다.

6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저마다 온갖 자원 예물 외에도, 은 기물과 금과 물품과 짐승, 그리고 값진 선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Reading 1


EzR 1:1-6

In the first year of Cyrus, king of Persia, in order to fulfill the word of the LORD spoken by Jeremiah, the LORD inspired King Cyrus of Persia
to issue this proclamation throughout his kingdom, both by word of mouth and in writing:
"Thus says Cyrus, king of Persia: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the LORD, the God of heaven, has given to me, and he has also charged me to build him a house in Jerusalem, which is in Judah. Therefore, whoever among you belongs to any part of his people, let him go up, and may his God be with him! Let everyone who has survived, in whatever place he may have dwelt, be assisted by the people of that place with silver, gold, goods, and cattle, together with free-will offerings
for the house of God in Jerusalem.'"

Then the family heads of Judah and Benjamin and the priests and Levites ? everyone, that is, whom God had inspired to do so ? prepared to go up to build the house of the LORD in Jerusalem.
All their neighbors gave them help in every way, with silver, gold, goods, and cattle, and with many precious gifts
besides all their free-will offe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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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잠언 3,27-34

내 아들아, 27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28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29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30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31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32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33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34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Reading 1


PRV 3:27-34

Refuse no one the good on which he has a claim when it is in your power to do it for him.

Say not to your neighbor, Go, and come again,
tomorrow I will give, when you can give at once.


Plot no evil against your neighbor, against one who lives at peace with you.

Quarrel not with a man without cause, with one who has done you no harm.

Envy not the lawless man and choose none of his ways:
To the LORD the perverse one is an abomination, but with the upright is his friendship.

The curse of the LORD is on the house of the wicked, but the dwelling of the just he blesses;
When dealing with the arrogant, he is stern, but to the humble he shows kin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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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Gospel


Lk 8:16-18

Jesus said to the crowd:
"No one who lights a lamp conceals it with a vessel or sets it under a bed; rather, he places it on a lampstand
so that those who enter may see the light. For there is nothing hidden that will not become visible, and nothing secret that will not be known and come to light. Take care, then, how you hear. To any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seems to have will be taken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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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23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놓는 것이 상식입니다. 등불은 더 멀리 빛을 보내 어두움을 없애는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통해 우리 영혼을 비추시는 하느님의 영을 내 안의 어두움으로 가두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솔직히 우리가 품은 욕망의 어두움은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내 영은 욕망의 죄를 감출수록 더 공허해지고, 버릴수록 맑아집니다. 하느님의 영은 헛된 욕심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집착에서 비우면서 빛나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는 예수님의 경고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저버린 죄악으로 바빌론 유배의 참담한 시기를 살았지만, 이방 민족인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배타적이고 민족주의로 옹색해진 유다인들의 마음을 창조주 하느님의 보편적인 자비의 마음으로 변화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꿈꾸는 듯’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큰일을 하셨다.’고 탄복하고,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고 찬미의 기도를 바칩니다.

이기심과 욕망을 벗어버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믿음도 나를 비우면 더 채워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고자, 날마다 조금씩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비움의 수행’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무엇을 비울까 고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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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19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등불을 켜는 이유는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등경 위에 얹어 둡니다. 될 수 있는 한 빛이 더 멀리 비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등불과 같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실천하면 빛이 사람들을 비추게 되고,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십니다(요한 1,9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등불을 자신과 이웃에게 비추게 됩니다(요한 8,12 참조).
어부는 먼 바다에서 그물질을 끝내고 항구로 돌아오다가 등대의 빛을 보면 평화로워진다고 합니다. 어부에게 빛은 편안한 안식입니다. 우리에게도 빛은 희망의 상징입니다. 새해에 많은 사람들은 해맞이를 하러 갑니다. 순례자들은 시나이 산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보고 모세 성인이 보았던 하느님의 빛을 연상합니다.
신앙의 빛은 우리의 영혼을 따뜻하게 비추고 기쁨을 발산시킵니다. 그 빛은 은총을 몰고 오고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 그 빛은 사라지고 불안과 괴로움이 따릅니다. 우리는 어두움이 신앙의 빛을 끄지 않도록, 그 빛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이 세상의 풍파와 고뇌 가운데에서도 은총의 빛을 계속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가고 어두움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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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21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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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22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등불의 빛에 비유하신 뒤 그 등불에 대한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서도 그 말씀이 부담스럽고 내 숨은 속내를 드러낼지 두려워 은근히 치워 두거나, 짐짓 듣지 못한 듯이 처신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말씀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 말씀이 다른 사람들을 비추도록 애쓸 수도 있습니다. 말씀의 등경을 들고 다른 사람을 비추러 나서는 일은 어렵고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첫 발자국을 내디딘 사람은 어둠에서 자유로워지며 빛으로 충만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가진 자가 더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말씀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는 모습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제1독서의 잠언 말씀이 잘 알려 줍니다. 하느님 말씀의 빛은 이웃 사랑의 결실인 선한 행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환히 드러나며, 이로써 종교적 체험은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봅니다. 하느님 말씀의 빛을 등경 위에 밝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에서 우리는 사랑의 윤리에 기초한 올바른 행위의 두 가지 차원을 봅니다. 소극적 차원의 애덕으로 우리는 이웃과의 필요 없는 다툼을 피하며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적극적 차원에서는 어려움에 빠진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잠언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란 단순히 인간적 차원의 처신을 넘어, 말씀의 빛을 간직한 사람이 자신의 선한 행위로 그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종교적 차원을 그 안에 담고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가 행하는 작은 선행과 호의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차원을 드러낼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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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23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이스라엘에는 갈릴래아 호수와 사해(死海)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요르단 강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생명의 호수입니다. 이곳에는 물고기가 많고, 그 물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젖줄입니다. 그래서 그 호수 주위로는 마을도 많습니다. 그 반면,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염분이 무척 높은 짠물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전혀 살 수 없을뿐더러 식수로도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해 주위에는 황폐한 땅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갈릴래아 호수는 생명의 호수가 되었고, 사해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을까요?
갈릴래아 호수는 물을 받은 만큼 그것을 요르단 강을 통하여 사해로 보내 줍니다. 받은 만큼 나누어 주는 호수이기 때문에 물이 썩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반면, 사해는 물을 받기만 하지 나가는 곳이 없습니다. , 그 어떤 곳에도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염분 농도가 높아 물고기를 포함한 생물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빛을 우리 마음속에 가두어 놓기만 한 채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아무 쓸모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참생명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등불은 밝혀 두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비추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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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24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께서는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려면 이 세상 것을 비워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 세상 것들에서 많은 기쁨을 누릴수록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기쁨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모든 것〔全〕이신 하느님을 얻으려면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온갖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모든 것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무()에 이르게 할 때 그 빈 공간에 하느님께서 모두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의 목표인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 대한 포기는 무()인 것 같지만, 하느님 편에서 보면 그것이 곧 전부입니다. 이것이 현세에서 우리 신앙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목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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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19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우리가 가끔 듣는 말에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는 구호일 뿐, 사회 환경은 철저하게 기득권자들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왠지 오늘 복음은 예수님 마저도 가진 자를 두둔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깨닫도록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요?
이 세상에서 가진 자와 하느님 나라에서 가진 자는 서로 반대의 뜻을 지닙니다. 세상에서는 채우면 채울수록 창고에 곡식이 쌓여 부자가 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세상 것을 버려야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하늘 나라에서 참으로 가진 자는 자신을 온전히 비운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께서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세상 것을 비운 자리만큼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것을 움켜잡고 그것을 자기가 가진 줄로 알고 사는 사람은, 사실은 가진 것이 전혀 없을 수 있습니다. 온통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진 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만큼 영적으로는 빈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 것에 초연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보여도 아무것도 부럽지 않는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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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20)


주님께서는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두는 이는 없습니다. 등불은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환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등불은 주님이십니다. 등불에서 퍼져 나오는 빛 또한 주님이십니다. 등불과 빛은 하나입니다. 등불이신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뚜렷이 비추어 주시고, 당신 스스로 그 길이 되십니다. 빛은 조금만 있어도 어둠을 이깁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등불이라도 어둠을 몰아내고, 올바른 길을 비추어 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빛이신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앞장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만일 신앙인들이 등불이신 주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어두운 길을 헤맬 수밖에 없으며, 자칫 타인의 등불마저도 꺼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등불이시라면, 우리는 그 빛을 가져다가 어두운 곳을 비추어 주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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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21)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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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22)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두는 이는 없습니다. 방을 밝히려 불을 켜는 것이지, 모양내려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밝은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결국은 알려집니다. 빛은 조금만 있어도 어둠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등불을 켜는 행동일는지요? 선행입니다. 착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입니다.
누구나 밝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그저 허허거리며 웃는 이가 밝은 사람은 아닙니다. 밝은 사람은 ‘몸에서 밝은 기운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며 착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3개월 이상 깁스를 풀지 않으면 근육은 급속히 둔화된다고 합니다. 몸을 움직여 주지 않기에, 뼛속의 무기물이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빠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약골이 되는 것이지요.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와 선행이 없으면 냉담하게 되어 있습니다. 점차 신앙생활의 필요성을 망각하게 됩니다. 성당 다니는 일이 귀찮아집니다. 영적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등불을 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등불마저도 꺼 버리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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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24)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야고보 씨는 택시 기사입니다. 어느 날 새벽에 한 아가씨를 태웠습니다. 첫 손님이 여자면 싫어하는 동료 기사들도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목적지에 닿자 그 아가씨가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미안해요. 너무 바빠 돈을 안 가지고 탔어요. 이를 어쩌지요?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꾹 참았습니다. “이런, 할 수 없지요. 그냥 가세요.” 총총걸음으로 뛰어가는 여자를 보면서 야고보 씨는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것도 남을 도와주라는 하느님의 배려가 아닌가? 하도 남을 돕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사랑을 실천하라는 게 아닌가?’ 그 이후로 야고보 씨는 마음이 더욱 밝아졌으며, 운전에 대한 지겨움도, 사고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인생은 어둠 속의 행진입니다. 끊임없는 빛의 생활이 없으면 삶은 어두워지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빛의 생활이겠습니까? 기도와 성사 생활, 그리고 희생과 선행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선행을 많이 베풀면 베풀수록 삶의 어둠은 엷어질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빛의 생활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은 그 자체로 주님 앞에서 드러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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