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9.30 토/ 수난과 죽음을 겪어내며 생명을 찾아가는 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29 조회수1,247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25주 토, 루카 9,43ㄴ-45(17.9.30)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루카 9,44)





The second prediction of the passion





 

수난과 죽음을 겪어내며 생명을 찾아가는 길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거품을 물고 거꾸러지는 어린이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랍니다(9,43). 제자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들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하십니다(9,44). 제자들이 당신의 길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오해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서야 풀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수난예고는 제자들의 길이 다른 사람들과 뚜렷이 다름을 알려줍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현세적 희망과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줄 더 큰 표징을 기대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9,44)이라는 수동형의 표현에는 인류의 구원 계획을 주관하는 분은 곧 하느님이시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죽음의 길을 걸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을 직시하셨으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45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도록 자신을 기꺼이 넘겨주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그에 대해 “묻는 것도 두려워합니다.”(9,45) 아직은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 수난과 죽음 저 너머의 영원한 생명을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죽어야 산다고 말은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순간 어려움과 고통을 회피하려고 합니까? 죽기보다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간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의 부패와 불의 앞에서조차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슬쩍 뒤로 물러나 외면하거나, 그것을 묵인하는 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길을 항구히 걸어야 하겠지요. 진리이신 그분께서 거짓을 품고 조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넘겨주심으로써 그들의 거짓을 폭로하셨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겪어냄으로써 기쁨으로 변합니다. 죽음의 문화는 자발적인 ‘죽음의 헌신’이 아니고서는 생명의 문화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를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하며 부담을 주는 삶의 현실들을 회피하는데 길들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현실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려 하면 할수록 하느님과의 거리는 멀어질 것입니다. 나ㅣ와 하느님과의 사이에 생기는 틈은 다름 아닌 내 영혼의 어두운 감옥이요 심판대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내가 겪는 고통과 슬픔, 실패와 절망, 핍박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인생사 안에 생명과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어야겠습니다. 그 믿음으로 기꺼이 수난의 여정을 계속하며 그 안에서 부활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