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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레시안 묵상] 추억 한 잔, 기쁨 한 입 - 토토로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02 조회수1,045 추천수1 반대(0) 신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 중에 하나가 집앞 포장마차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간간히 소주 한 잔이 생각나시면 저를 데리고 포장마차에 가셔서 다양한 안주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저를 위한 사이다 한 병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소주잔과 사이다잔을 부딪히며 음료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아이였던 제 눈에는 포장마차가 참 아늑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우동국물이 끓고 있고, 백열등 아래 있는 여러 물고기들, 닭똥집, 닭발 등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제 눈 앞의 먹을거리들은 고급스럽지 않았지만 저에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안주이자 음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런 음식을 좋아해서인지, 제 입맛은 참 저렴합니다. 길거리 음식을 좋아하고, 포장마차에서 팔던 것들을 좋아합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포장마차에 들어오는 어린이를 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안 좋은 시선이 아니라 호기심이었습니다. 포장마차에 앉아있는 어린 시절의 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나름 귀여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저에겐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중요했고, 또 제가 좋아하는 포장마차에 앉아서 닭똥집과 사이다 한 잔, 우동 면발을 후루룩 먹는 즐거움이 중요했습니다.

가끔씩 길을 가다보면 포장마차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칩니다. 가끔씩 혼자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소주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술을 마신다는 의미 보다는 추억을 마시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고 싶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에 체험했던 포장마차의 느낌은 안 날 듯합니다. 그리고 같은 음식이지만 그 당시에 먹었던 음식의 맛도 안 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때의 그 시절을 그리며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소주 한 잔 나눌 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제 마음 속에 늘 함께 하시는 아버지와 아젠 당당히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 아들이 함께 추억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함께 기뻐할 수 있겠지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기쁠 때도 있고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신앙 안에서 실망을 했을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뻤을 때가 있었던가?', '세례 때의 떨림과 설렘은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었나?', '그 땐 성당생활이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러지?'

어쩌면 신앙 안에서 정말 행복했던 그 순간이 똑같이 재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느낀다 하더라도 내가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 만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 안에 머물며 정말 기뻤던 그 순간을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내 기억과 마음은 언제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이킬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는 기쁨과 행복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을 꺼내 쓰느냐, 머리 속에 꽁꽁 감추어 두느냐는 본인의 몫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추억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언제나 하느님께로 온 몸과 마음을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만찬의 식탁으로 돌아가 성체의 기적을 체험하고, 신앙의 선조들이 삶으로 들어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합니다. 교회가 지난 시간의 귀한 순간들을 지금 재현하는 이유는 그 순간만큼 우리에게 큰 기쁨과 영광을 안겨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만큼 큰 기쁨이 어디있고, 성체를 받아모시는 것만큼 큰 영광이 어디있으며, 신앙의 선조들을 회상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을 다시금 일깨우는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지난 시절의 기쁨을 추억하고 그것을 오늘 반영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 지난 과거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만큼은 아닐 지라도 그 힘으로 오늘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저와 포장마차 함께 가실 분 안 계신가요? 제가 아버지와 함께 체험했던 기쁨을 공유하실 분 안 계신가요? 하하~ 물론 신앙 안에서 함께 기쁨을 공유하실 분도 찾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친교의 식탁에서 일치를 이루실 분도 찾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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