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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03 -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03 조회수1,34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10 03 () 가해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Tuesday of the Twenty-sixth Week in Ordinary Time

즈카르야서 8,20-23 / 욥기 3,1-3.11-17.20-23
루카복음 9,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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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즈카르야서 8,20-23

20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21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으로 가서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 하고 말하리라.
22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Reading 1


Zec 8:20-23

Thus says the LORD of hosts:
There shall yet come peoples, the inhabitants of many cities; and the inhabitants of one city shall approach those of another, and say, "Come! let us go to implore the favor of the LORD"; and, "I too will go to seek the LORD."
Many peoples and strong nations shall come to seek the LORD of hosts in Jerusalem and to implore the favor of the LORD.
Thus says the LORD of hosts:
In those days ten men of every nationality, speaking different tongues, shall take hold, yes, take hold of every Jew by the edge of his garment and say, "Let us go with you, for we have heard that God is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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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 욥기 3,1-3.11-17.20-23

1
욥이 입을 열어 제 생일을 저주하였다. 2 욥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3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 하고 말하던 밤!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12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13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14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5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6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17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20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21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22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23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Reading 1


JB 3:1-3, 11-17, 20-23

Job opened his mouth and cursed his day.
Job spoke out and said:

Perish the day on which I was born, the night when they said,
The child is a boy!

Why did I not perish at birth, come forth from the womb and expire?
Or why was I not buried away like an untimely birth, like babes that have never seen the light?
Wherefore did the knees receive me? or why did I suck at the breasts?

For then I should have lain down and been tranquil; had I slept, I should then have been at rest.
With kings and counselors of the earth who built where now there are ruins Or with princes who had gold and filled their houses with silver.

There the wicked cease from troubling, there the weary are at rest.

Why is light given to the toilers, and life to the bitter in spirit?
They wait for death and it comes not; they search for it rather than for hidden treasures, Rejoice in it exultingly, and are glad when they reach the grave:
Those whose path is hidden from them, and whom God has hemmed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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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Gospel


Lk 9:51-56

When the days for Jesus to be taken up were fulfilled, he resolutely determined to journey to Jerusalem, and he sent messengers ahead of him.
On the way they entered a Samaritan village to prepare for his reception there, but they would not welcome him because the destination of his journey was Jerusalem.
When the disciples James and John saw this they asked, "Lord, do you want us to call down fire from heaven to consume them?"
Jesus turned and rebuked them, and they journeyed to another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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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03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의 제2부가 시작되는 구절입니다. 당신의 지상 여정이 무르익어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천상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십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도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복음서에서는, 첫머리에 주님의 성소에서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 부분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제자들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마지막 구절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하느님의 나라를 향한 예수님의 발길도 모두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하시지만, 그 중심에는 파스카의 신비, 곧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도시로 넘어가야 하는 우리 여정의 신비가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거룩한 도시로 모인 교회는, 다시 자신의 구원 사명을 수행하려고 세상을 향하여 역동적으로 복음을 선포해 나갈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시 수많은 역경을 만나고,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불살라 버리기를” 원할 만큼 어렵고 힘든 상황도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인내와 끈기입니다.
우리의 모든 발걸음에는 목적지가 있듯이, 하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여정도 뚜렷한 목적지를 늘 염두에 두고,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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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27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 중에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의 왕림을 거부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한 번 지나가신 하느님께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실 것을 두려워하라!” 하고 권고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 중에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오는지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야고보와 요한 사도는 사마리아인들의 태도에 격분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부딪치는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구원의 진리는 때가 차면 스스로 올바름을 증명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인간의 잔꾀나 수단으로 전파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복음을 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 정도로, 앞길이 보이지 않아 죽음을 원할 정도로 괴로운 인간에게도 천상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습니다. 이슬람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렸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빈첸시오 성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삶 속에 주어지는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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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29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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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30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자신의 고통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더해 가고 죽음은 다가오지 않아, 생명은 마치 하느님께서 내리신 끝없는 저주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심정이 처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욥처럼 극단적인 불행이 휘몰아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삶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짐으로 다가오는 시기를 겪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합니다. 현대의 뛰어난 가톨릭 신학자 과르디니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해설 『기도와 진리』의 한 대목에서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진리를 실행해 보자. ‘주님, 제가 존재해도 됨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에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존재해도 된다는 것, 숨 쉬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선물이고, 이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이것이 삶을 진실하게 하고 해방시켜 준다. 좀 더 순수하고 깊이 있게 감사할수록, 그리고 힘든 일, 쓰디쓴 일,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삶의 근본 감정은 더욱 깊이 자유를 느끼게 된다.
욥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삶은 때때로 차라리 피하고 싶은 두렵고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욥이 탄식과 투쟁 속에서 마침내 하느님 섭리의 투명한 진리를 깨달았듯이, 우리 또한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감사하며 기도 속에서 진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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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0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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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02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수호천사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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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27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의기양양해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임금이 되시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마저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서 길이 막힙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사흘 정도 걸리는데 사마리아 지방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지방은 과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렸을 때 북왕국에 속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일찍이 아시리아 침공 이후 혼혈 지역이 되었고 혼합 종교를 신봉하던 터라 유다인들은 그들과 상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사마리아 지방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는 장소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리짐 산이었기 때문에,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차별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사마리아인들이 거부하자 제자들이 격분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 옛날 주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느님께서 내리신 말씀을 거부한 아하즈야 임금의 군대들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삼켜 버렸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2열왕 1,10-12 참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힘과 세력을 느낀 제자들은 이번 기회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불살라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이 예언자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막으니, 그들을 혼내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정의를 내세워 폭력으로 누르고 뚫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사랑의 길이 아니면 돌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다리고 참으며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 안에 잠재된 분노와 폭력성이 정의라는 탈을 쓰고 종종 그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런 예수님의 큰마음을 우리는 언제나 배울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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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28)
(
성 벤체슬라오 순교자 기념일)
(
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당신의 때가 차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당신의 길을 걸어가시려고 마음을 단단히 정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려고 나선 사람들은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떳떳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그 길은 잘못되어 돌아가는 역사의 진로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주님을 맞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누구이신지 알았더라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즉시 달려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어쩌면 사마리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우리를 찾아 주시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번번이 주님을 외면해 버리기 일쑤였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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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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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30)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들입니다.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수도 사마리아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처형되었고, 주민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아시리아는 사마리아에 다른 민족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남은 유다인들은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예루살렘 중심의 남쪽 지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족의 순수성을 더럽힌 집단으로 여겼고, 유다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사마리아인들도 증오심으로 대했고, 독자적인 종교 예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푸대접에 분개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제자들 자신들에게 그럴 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이러한 말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다른 곳으로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을 이해하신 겁니다. 그분의 깊은 배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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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02)


수호천사 기념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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