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의 희망 한 스푼(왜 이리 떠남이 힘겨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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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10-05 | 조회수1,62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왜 이리 떠남이 힘겨운지..." 주님 은총과 자비에 힘입어 이 세상에 온 존재라면, 그 누구든 예외없이 지배받게되는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 누구든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주님 자비의 품에서 시작된 우리의 생명은 결코 이 세상에서 영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이 세상 소풍을 만끽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겪었다면, 이제 다시 한번 그분 품으로 돌아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거스를수 없는 준엄한 대자연의 이치지만, 막상 떠나야할 그 순간이 오면 그 누구든 망설여지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기에 그리도 두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다 가도 나만은 절대로 못가겠다!’고 버틸 수 없습니다. 무조건 가야만 합니다. 병자성사를 드리다보면 유달리 이승과의 작별이 힘겨운 분들을 만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대체로 지니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재물이면 재물, 권세면 권세, 학벌이면 학벌로 한때 잘 나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좀 떵떵거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럴만도 한것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재물의 탑, 수백억, 수천억, 두고 떠나려니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남들 다 잘때 수면시간 줄여가며 공부벌레처럼 산 결과 획득한 전문성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으니, 얼마나 속쓰리겠습니까? 가만히 살펴보니 저희 같은 수도자, 사제들 사이에서도 그 ‘떠남’이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성이면 영성, 상담심리면 상담심리, 사회복지면 사회복지 쪽, 자기만의 특화된 분야에 오랜 세월 쌓아올린 전문성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크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런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회는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데, 그에 따라 수도자들도 한 분야에 전문가, 대가(大家)로 자리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도움이 필요한 양떼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사목적 봉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30년 쌓아올린 그 전문성과 노하우를 다 내려놓고 한 평범한 수도자로 돌아가라고 하니, 얼마나 아쉽고 안타깝겠습니까? 오랜 세월 맺어온 소중한 인맥도,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대상자들도, 후원자들과 봉사자들도 다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임지로 떠나라니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그 모든 것들, 사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문가라고 외쳐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현직에서 물러나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곳에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봉헌생활자들이,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본질적인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 그리고 부차적인 것은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는 기도를 계속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루카복음 10장 3~4절)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일상 안에서의 지속적인 자기 비움, 지속적인 자기 낮춤, 언제든 떠날 준비를 갖추는 노력,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여기는 마음...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의 희망 한 스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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