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0.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06 조회수1,25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7년 10월 6일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제1독서 바룩 1,15ㄴ-22

15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16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17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18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9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날부터 이날까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20 주님께서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던 날,

당신 종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신 재앙과 저주가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21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말씀을

거슬러,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22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복음 루카 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며칠 전에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스마트폰

 벨소리가 신나가 울리는 것입니다.

읽던 책을 덮고 전화를 받아서

통화를 했습니다. 한참을 통화한

뒤에 다시 읽고 있었던 책을 펼쳐

들었는데 어디까지 읽었는지가

헷갈리는 것입니다.

즉,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

억이 나지 않더군요.

다시 앞으로 페이지를 넘겨서

내용을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제 머리가 나빠서일까요?

그런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은 글씨를 따라가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지요.
하긴 인간의 뇌는

계속 움직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피험자들에게 아무런

과제도 주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컴퓨터

단층촬영을 했습니다.

그 결과 두뇌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피험자들은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두뇌는 몰두할 것이

없으면 쓸데없는 생각이라도

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분심이

너무 든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도 별 것 아닌 생각이

계속 떠올려진다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우리 두뇌가

몰두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생각이라도 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주님께 몰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이라 할 수 있는 분심들이

 떠올려지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입으로만 주님을

외칠 뿐이라면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다른 것들이

 떠올려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이 도시는 당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번창했던 도시였지요.

그래서 자주 방문하셨고 이 도시에서

기적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를 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도록 집중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적을 단순히

신기한 일 정도로만

가볍게 취급하면서 여전히

세상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주님께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현재 이 도시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 집중하기 위해서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일에만 집중하면서

‘나는 절대로 안 돼.’라는

생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주님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 안에서 주님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그때 주님으로부터 질책의

말이 아닌 칭찬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커다란

위로와 힘을 얻게 되어

이 세상을 더욱 더 힘차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먼 사람이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래요.
(장문수)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벳사이다.
"대신 지킨 약속"
(‘좋은생각’ 중에서)
1979년 3월 16일,
강원도 홍천읍 삼마치고개 일
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이 산불로 1만 600여 평에
들어찼던 잣나무 9천여 그루가
 잿더미로 변했다.
한약재를 캐러 간 이두봉 씨가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그는 약 백삼십만 원을
변상금으로 내야 했다.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하며 돈을 갚던
그는 얼마 후 중풍에 걸렸다.
그리고 5년 후 세상을 떴다.
그는 아내에게 “산불 낸 게
늘 죄스러웠소.
당신이 대신 변상금을
꼭 갚아 주시오.”
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재산이라곤
집 한 칸이 전부,
사 남매를 키우기도 힘든데
빚까지 물려받았다.
하지만 아내 용간난 씨는
 간신히 생계를 꾸리면서도
매년 한두 차례씩 3~10만원의
변상금을 갚아 나갔다.
그리고 2001년 9월 20년 만에
변상금을 전부 갚았다.
이 사연 안에는
다른 주인공이 한 명 더 있다.
산림청 공무원 이순옥 씨다.
그가 초임으로 홍천에 부임했을 때
용간난 할머니가 찾아와 변상금을
나누어 갚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못 갚는 게 아니라 나누어서
꼭 갚겠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이후 부임지를 옮겨 다니며
 다시 이곳에 왔을 때 대장을
검토해 보니 할머니가 그동안
틈틈이 갚고 딱 십만 원이 남았다.
그는 남은 돈을 대신 내고
할머니를 찾아가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하며 변상금을 다 갚았음을 알렸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가슴 한구석이 늘 빚 때문에
답답했는데 이제 후련해요.
영감도 저승에서 편히 쉴 거예요.”
이 사연을 안 산림청 직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할머니에게
백삼십만 원을 건넸다.
돈 갚느라 평생 고생한
할머니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당연히 내야 할 세금도
어떻게 하면 내지 않을까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만 한 것이 아니라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런데 끝까지 책임을 지면서
정직한 삶을 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큰 울림을 듣습니다.
불이 났었던 삼마치 고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