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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자리에)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06 조회수1,476 추천수0 반대(0) 신고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자리에"

+찬미예수님!

 한 주일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저를 볼 때 한 주일 동안

행복하게 산 것처럼 보입니까?

 여담이지만, 우리 성당 복도에

나가면 역대 신부님 사진 있지요?

역대 신부님들 가운데서

제게 세례 준 신부님이 계시고

또 견진을 준 주교님이 계십니다.

설신부님이라고 여기서

57~58년도에 근무하시고

인천으로 오셨어요.

견진주신 나주교님은

인천교구 주교님하시다가

은퇴하시어 지금은

94살이신데 미국에 계세요.

이렇게 서운동 성당과 나를 보며

보통 인연이 아님을 생각하니

한 주일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행복할 거리가 없으면

뭐라도 만들어서

그냥 행복하다는 것을

찾아내셔야 해요.

그렇게 사셔야 되는 것에요!

찾아보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사할 것뿐 이죠, 그렇죠?

 꽃동네 입구에 가면 큰 돌멩이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건 주님의 은총입니다.’

고 적혀있어요.

하지만 그 표현만

가지고는 부족해요

내가 두 다리로 성당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고,

저 자매처럼 선풍기를

만질 수 있는 손가락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죠.

내 손가락으로 묵주신공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고,

아침에 눈뜰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고,

내 손가락으로 밥숟가락

입에 넣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죠.

 2주 전에 팔목 수술을 하고

난 후부터는 아주 불편해요.

옷도 못 치켜 올리겠고,

삐끗하다 보면 아프고,

수술을 했지만 후유증이

남아 있는 것에요.

이 인간이라는 것은

건강할 때 감사할 줄 모르죠.

항상 얻을 때보다는

 잃어버릴 때, 다른 말로 비울 때

우리는 항상 깨우침을 얻죠.

 오늘 복음의 주제는

넓게 얘기하면 비움입니다.

비움이라고 하는 것은

철학적인 비움도 있고,

종교적인 비움도 있고,

종교에서도 가톨릭적인

비움도 있고,

불교에서 말하는

비움도 있습니다.

다 비움의 과정은 다르지만,

종착점 그 목적은 어느 종교든

분명히 같습니다.

 여러분들, 예수님께서

공생활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이죠?

몇 명을 뽑았습니까? 열두 명.

이스라엘 지파가12 지파이기

때문에 열두 명을 뽑았습니다.

이 열두 명의

직업은 다양했는데,

어부가 제일 많았어요.

베드로 형제, 안드레아와

야고보 형제도 있고,

사도 토마도 원래는

 직업이 어부였어요.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어부들을 그렇게

왜 많이 뽑았을까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부분 직업이 어부라서

어부를 뽑은 것은 아닐 겁니다.

제자를 뽑을 때는

 잠재력이 있어 보이거나,

이미 인정된 사람을

선택하고 싶을 것입니다.

어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는 ‘돼지 치는 것’과

‘목수’ 다음으로 유대인들이

천히 여기는 직업이었습니다.

또 12명을 보면 물과

기름처럼 합쳐져야

합쳐질 수 없다 이겁니다.

매국노를 죽이러 다니는

유다스와 동족의 돈을 걷는

세리였던 마태오가

열두 명 안에 있었어요.

평상 시 같으면 유다스는

마태오 같은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사람이예요.

이런 열두 사도가 깨지지 않고

교회의 초석이 된 것은 예수님이

중심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만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성질도 다르고,

살아왔던 모습이 다르고,

상처의 깊이가 다르고,

배운 것도 다릅니까?

만일 이 교회, 구역, 반모임,

레지오, 서운동 성당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고

잘난 인간이 서있다고 한다면

서로 물어뜯고 할퀴고 하면서

파는 수백 개로

갈라져 있을 겁니다.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열두 명이

예수님이 중심에 서 계시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단단해졌고.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도

내가 모시는 분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벌벌 떨었지만,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난

다음에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미사까지 할 수 있는 것에요.

 천주교가 사람이 만든

 집단이었다면 몇 놈만

잡아 죽이면 벌써

옛날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들은 교주가

살아있을 때는 뭉치지만

교주가 죽고 나면 재산가지고

싸움박질 하다가

다 깨지고 맙니다.

하느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천주교죠.

여러분들이 천주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천주교 신자로

선택해서 불러주신 거죠.

열두 사도들이 자기들이

선택해서

예수님한테 온 겁니까?

예수님께서 무조건

 ‘따라 오너라.’ 그랬죠?

방을 붙여 놓고 ‘제자구합니다.

자격요건, 전화번호.’

그것 보고 찾아온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중 혹시라도

 ‘나는 내가 천주교 선택했지,

아무도 나를 천주교로

데려다 준 사람 없어.’

이렇게 말하는 교만한 인간이

있다면 지금부터 생각 지워요.

그런 마음이 들게 한 것은

누구신데요?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나를 교회로 이끈 거죠.

 열두 사도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깨지지 않았어요.

성가정이 되려면 예수님이

중심에 계셔야만 그 가정에

냉담자가 안 나타나요.

방마다 이태리제, 프랑스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차에는 대롱대롱 십자가를

매달고는 다닐지언정

눈에 보이는 제일 높은데

모셨을 뿐이지 실제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사는 것이 쉽냐 이거죠?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여러분 주변의 대녀들이

 ‘믿음이 뭡니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겁니까?

예비자 때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수천 번 들은 말이

믿음이라는 말이지만,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교리가 중요한 것에요.

 나는 지금도 교리공부를 하고,

제 책상머리에는

 교리책이 있어요.

교리를 잘 씹어서 이유식으로

 만들어서 신자들한테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잘못 전달하면

큰일 나기 때문에.

 앞으로 누가 믿음이 뭐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세요.

따라 하세요. 길지도 않으니까.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

 뭐 하기까지라고 그랬어요?

죽기까지 그랬어요.

손가락 하나, 발목 하나

 끊어주기까지도 아니고

5대 독자 외아들 신학교

보내는 것도 아니에요.

죽기까지,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냐는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죽기까지 몇째

자리에 모시래요?

첫째 자리에요.

여러분 눈뜨면 하루 24시간

하느님이 늘

첫째자리에 계십니까?

가끔은 있을지 몰라요.

급할 때, 병들었을 때,

벼랑 끝에 몰렸을 때.

하지만 그 고비 지나고 나면

하느님이

첫째 자리에 안 계세요.

우리 자매들 같은 경우에

첫째 자리에 누가 있을까?

당연히

남편이 있을 줄 알았더니

‘아이고, 신부님

순진하시기도 하셔라.

저 인간한테서

단물 빠진지가 언제인데.’

대부분은 자매들의

첫째 자리에 자식이 있습디다.

자식 위해 성당 나오고,

자식 위해 묵주기도 하고,

그저 자식이 잘 되면,

자식이 첫째 자리에요.

부모가 자식 위해서

첫째 자리에 두는 게

신부님 잘못된 겁니까?

잘못된 것에요.

그 첫째 자리는

자식 몫이 아닙니다.

왜 하느님을 밀어내고

자식을 올려놓고 기도합니까?

비는 위에서 땅으로 뿌리지,

땅에서 위로 올라가는

비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첫째 자리에

 딱 중심잡고 앉아 계실 때

자식들은 은총의 비를 맞는 것이죠.

하느님 위에 자식을 올려놓고,

하느님 자리에 몸뚱이를 올려놓고,

하느님 자리에 돈을 올려놓고,

하느님 자리에 취미생활을 올려놓고

무슨 축복을 받으려고 하겠는가?

 ‘믿음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라는 말은

쉽지만 열매 맺는 것은

쉽지 않아요.

배티성지 가보셨죠?

차에서 내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쭉하게 생긴

 ‘순교현양’이라 적힌

길쭉한 돌이 있어요.

보셨어요? 그 길쭉한 돌은

채석장에서 잘라다가

세워놓은 돌이 아니에요.

옛날 15개 교우촌이 배티골에

 숨어살 때 1866년 병인박해 때

포졸들한테 몰살을 당했습니다.

그 길쭉한 돌은 교우들 죽이기

전날 밤새 조기새끼 엮듯이

 붙들어 매어놓았던 돌이에요.

교우들은 해가

뜨지 않기를 기도했대요.

왜? 해가 뜨면 죽으니까.

신자들 묶어놓고

 포졸들은 술판을 벌렸지요.

술에 취하면 가만있었겠습니까?

얼굴에다 오줌싸대고 여자들은

옷을 홀랑 베끼고 수치를 줬대요.

‘부끄러우면 배교해.

십자가에 침 뱉어.’ 그래도

우리 교우들 침 안 뱉었대요.

‘내가 오늘 이 수모를 당해도

내일이면 목이 잘려 너보다 천

국에 먼저 가 있을 것이다.’

교우들의 수많은 사연을

간직했던 그 돌은 1942년에

백곡저수지가

생기면서 같이 묻혀요.

그러다가 1983년도에 가뭄이

들어 저수지의 물이 빠졌을 때

큰 기중기를 동원해서

뻘 속에 묻혀 있던 그 돌을

끄집어 올려서 깨끗이

뻘을 닦고 거기에다

네 글자를 새겼죠. “순교현양”

지금은 성지를 찾아 온

교우들을 맞이하고 있지요.

 ‘선배님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배교 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살 수 있을 터인데,

그 말 안하시고 그 수모를

당하시고 목이 잘려

돌아가신 겁니까?’ 

 배티에 최양업 신부님

박물관 있는 것 아시죠?

박물관 가려면

다리를 지나가야 되고,

다리 건너기 직전에 잔디밭에

형구 돌 두 개가 있어요.

네모난 형구 돌, 동그란 형구 돌.

하나같이 앞이 구멍이 크게

뚫어져 있고 뒤에가 구멍이 작아.

뭐할 때 썼던 돌인 줄 압니까?

교우들 죽일 때 목에다 줄을 걸어서

그 구멍으로 빼가지고 뒤쪽에서

포조들 둘 셋이 잡아당기면 얼굴이

끌려가면서 얼굴뼈가 부서지고

 목뼈가 똑 부러져 죽었어요.

조그만 동그란 돌은 아이들의

목을 부러뜨려 죽였던 돌이에요.

지금도 비만 오면

그 형구 돌 밑이 불그스름하게

핏빛으로 물들어요.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앞에 교우가 비명을 지르며

 목이 부러져 죽고,

다음이 내 차례야.

포졸들은 와서, ‘무섭지.

십자가에 침 뱉어라.

묵주인지 염주인지 뭔지 밟아.’

여러분들 안 밟을

자신 있냐는 것에요.

십자가에 침 안 뱉을

자신 있냐는 것에요.

지금은 사제인 나도 그 광경만

생각해도 ‘과연 견뎌낼까?‘

생각이 들지만,

믿는 구석은 있지요.

그때가 되면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이기에 나도 순교할 수

있다는 자신과

희망이 있는 것에요.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신다는 것 쉽지 않아요.

예수님이 뽑았던 열두 사도들도

자기가 믿던 예수님이 왕이 되면

한 자리씩 하는 줄 알았었죠?

그런데 맥없이 돌아가시고 나니

다락방에 문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리시고

난 다음에는 다락방 문을

박차고 나가서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외쳤어요.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죽기까지 하느님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

잊지 마세요. 순교성월은

그것을 묵상하는 달이에요.

여러분들,

안 죽으려고 할 때마다

오늘 가르침을 떠올리세요.

자꾸 내 몸뚱이는

살아나려고 하고,

내 교만도 살려고 하고,

욕심도 자꾸 꿈틀꿈틀

살려고 하고 분노도 살려고

할 때마다 죽어야 됩니다.

‘죽어야 산다.’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것을

영적순교라고 그래요.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잠잘 때까지 수십 번

영적순교의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뭐가 있겠습니까?

화날 때 참는 게 가장

첫 번째 영적순교에요.

가장 힘든 게 자기 분노에요.

혈기부리는 것을 참는 것.

입으로만 혈기를 안 부려도

눈만 가지고도

혈기를 부릴 수 있죠?

화난 사람의 눈 보면

무서워요.

걸음걸이만 봐도 뒤에서

뒤태만 봐요 알아요.

분노할 때, 화날 때 참는 게

영적순교의 첫 번째 단추에요.

또 뭐가 있습니까?

혓바닥을 다스리는 것.

순교자성월 때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평상시 말이 많다.’고 하면

혓바닥 잘 다스리세요.

가능한 침묵하세요.

‘혀를 다스리는 자가 영혼을

다스린다.’고 했어요.

또 영적순교 뭐 있습니까?

기쁘게 순명하는 것,

기쁘게 봉헌하는 것,

기쁘게 봉사하는 것.

 순교성월 한 달 동안

 ‘죽기까지

 하느님 첫째 자리 모신다.’는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하루하루 소소하게 찾아오는

것이라도 순교하십시오.

내가 영적순교를 잘하여

순교성월이 끝날 때,

‘주님, 한 달 동안 정말

순교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이런 날이 순교성월로

끝날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그리고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순교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기도로 순교성월을

마칠 수 있도록 합시다. 아멘.

서운동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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