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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신부님복음묵상(회개의 시작은 지갑으로부터)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08 조회수1,083 추천수2 반대(0) 신고

 

"회개의 시작은 지갑으로부터"

2017년 가해 연중 제27주일
<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21,33-43

영화 겟 아웃’(2017)

과학의 발달로 뇌를 이식시켜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영생을

꾀하려는 어떤 가족과 그들에게

잡혔다가 탈출한 한 흑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뇌를 이식하며

영생하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이

흑인의 몸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백인이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다 흑인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 안에는 자신이 주인이라는

자의식이 있는데 뇌를 이식하기 전

 먼저 그 자의식을 가라앉히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뇌를 이식해도

큰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라앉은 자의식은

 그저 자신 안에 들어와 사는

 타인을 우주 공간에서

 바라보듯 어떤 저항도

개입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최면을 겁니다.

찻잔을 저으며 그 집에 온

흑인 주인공에게

과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며 자꾸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상처

(죄책감)를 건듭니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안 들어오시는데도

TV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길에서 사고 난 어머니를

찾으러 가지 못해

돌아가신 것에 대한 죄책감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젓고 있던 찻잔을 스푼으로

 두 대 치며 가라앉아!’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그 죄책감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마치 물에 빠져

가라앉는 듯,

 아니면 우주 공간에

혼자 떠 있는 듯

자신을 제 3 자로 보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주인이라는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주인으로 가지고 있었어도

게으름 때문에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둔

그 죄책감이 너는 나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어!”라고

끊임없이 말하게

함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믿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누군가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자아란 놈이 어떻게

우리 자신을 자신들 것으로

빼앗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태초에 뱀은 첫 조상들을 유혹해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의 것인 선악과를 자신의

것인 양 따먹게 만든 것입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실 때 이들은 하느님의

목소리가 두려워 숨습니다.

사진들이 하느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죄책감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뱀이 시키는 대로

그가 좋아하는 권력과 쾌락과 재물을

챙겨주는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 몸이 하느님의 성전이 아니라

 뱀의 소굴이 되는 것입니다.

뱀이 인간을 완전히 지배한 때는

바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죄책감에 부끄러워 한 이후입니다.

뱀이 죄를 짓게 만들어놓고 그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죄책감이 생기게 만들어

 결국 그 사람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깨어있음이란 바로 나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뱀이

되어버렸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다시 설명해보겠습니다.

 일단 죄책감은 부끄러운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열등감을 갖게 만든

장본인인 자기 자신은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자아에게 넘기며 대신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증명해 달라고 합니다.

자아는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가치가

부끄러워해야 할 수준은 아님을

증명해주려 합니다. 그래서

 강해보이기 위해 타인을 구타하거나

거만한 언행을 일삼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며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게 만들고 돈을 추구하며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내려 합니다. 이런 성향이

커지면 나중에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범죄행위까지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신창원 씨가 어렸을 때

너 참 괜찮은 놈이다!”라는

한 마디만 들었어도 그런 인간이

 안 됐을 것이라고 말한 것 안에는

그래서 내 스스로 괜찮은 놈임을

증명하려 이렇게 살고 있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자아가 죄를 짓게 만들고 죄책감이

 열등감이 되어 자아가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한

그 자신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삼구를 채워주게

만들며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아의

 지배를 받습니다. 사실 인간은

부끄럽게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 주도권을 빼앗아 자신이

인이 되려고 한다면

자아는 크게 분노합니다.

이 상태가 오늘 복음의 포도밭

소작인들의 상태입니다.

그들이 포도밭의 주인이 되어

잘 이끌어가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그 포도밭은 당신의 소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는 발끈하여

그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그러나 사실 참 자신은

소작인들이 아닙니다.

바로 포도밭이 참 자신입니다.

그 자신은 주인을 선택할 권리가

있음에도 소작인들이 자기 자신인줄

착각하며 그의 행동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참 자신은 -아니오!’

선택의 권리를 지니고 있으니

스스로 소작인들을 몰아내고

참 주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삼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선악과를 놓아두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 중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주님의 것으로 봉헌해야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소작인들은 자신들의

소출의 일부를 주인에게

바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악인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를 증명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재물을 누군가를 위해

바칠 용의가 전혀 없습니다.

 이 자아의 욕망을

못 박지 않으면

주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본래 자아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의 주인이었는데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기 있지

 않은 행위 자체가 나에게

죄책감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나의 주인이면

나를 누구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래서 자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돌을 들고 있었던

바리사이들을 돌려보내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행위는 심판의

주도권을 당신이 가져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 손가락이 흙 속에 파묻히듯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더 이상

죄책감을 지니고 살지 않아도 됨을

알려주시기 위해 당신은

바리사이들에게 죽임을 당하여

땅에 묻히셔야 했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옵니다.

비록 최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그들에게 자신의

몸을 바쳐야 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는 솜으로 귀를 막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최면이 걸리지 않습니다.

찻잔을 스푼으로 때릴 때 나는

소리는 곧 죄책감과 직결되는데

그 죄책감에 더 이상

빠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세례 때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모든

죄가 사해졌고 앞으로도

사해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자아로부터

해방되게 됩니다.

그가 우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을 명분을 잃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존심이나

쾌락의 중독, 온갖 지긋지긋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못된

소작인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이 하느님의 것에 손을 대면서

시작되었다면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하느님의 것은

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며 당신 선악과를

내어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기 싫으면 예수님은

리 안에서도 돌아가십니다.

이것이 십일조를

먼저 내야하는 이유입니다.

회개는 지갑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나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희는 조상 때부터 나의 규정에서

벗어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하면

저희가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고 말한다.

 사람이 하느님을 약탈할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약탈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당신을 약탈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십일조와 예물이 아니냐!

 너희 온 백성이 나를 약탈하고

있으니 저주를 받으리라.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말라 3,6-1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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