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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1013 -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13 조회수1,21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10 13 () 가해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Friday of the Twenty-seventh Week in Ordinary Time

요엘서 1,13-15; 2,1-2 / 갈라티아서 3,7-14
루카복음 1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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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요엘서 1,13-15; 2,1-2

13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14
너희는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원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에 모아 주님께 부르짖어라. 15 , 그날! 정녕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파멸이 들이닥치듯 다가온다.
2,1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가까웠다.
2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 여명이 산등성이를 넘어 퍼지듯, 수가 많고 힘센 민족이 다가온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세세 대대에 이르도록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Reading 1


Jl 1:13-15; 2:1-2

Gird yourselves and weep, O priests! wail, O ministers of the altar!
Come, spend the night in sackcloth, O ministers of my God!
The house of your God is deprived of offering and libation.
Proclaim a fast, call an assembly;
Gather the elders, all who dwell in the land, Into the house of the LORD, your God, and cry to the LORD!

Alas, the day! for near is the day of the LORD, and it comes as ruin from the Almighty.

Blow the trumpet in Zion, sound the alarm on my holy mountain!
Let all who dwell in the land tremble, for the day of the LORD is coming;
Yes, it is near, a day of darkness and of gloom, a day of clouds and somberness!
Like dawn spreading over the mountains, a people numerous and mighty!
Their like has not been from of old, nor will it be after them, even to the years of distant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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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3,7-14

형제 여러분, 7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Reading 1


GAL 3:7-14

Brothers and sisters:
Realize that it is those who have faith who are children of Abraham.
Scripture, which saw in advance that God would justify the Gentiles by faith, foretold the good news to Abraham, saying, Through you shall all the nations be blessed.
Consequently, those who have faith are blessed along with Abraham who had faith.
For all who depend on works of the law are under a curse; for it is written, Cursed be everyone who does not persevere in doing all the thing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And that no one is justified before God by the law is clear, for the one who is righteous by faith will live.
But the law does not depend on faith; rather, the one who does these things will live by them.
Christ ranso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 by becoming a curse for us, for it is written, Cursed be everyone who hangs on a tree, that the blessing of Abraham might be extended to the Gentiles through Christ Jesus, so that we might receive the promise of the Spirit through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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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Gospel


Lk 11:15-26

When Jesus had driven out a demon, some of the crowd said:
"By the power of Beelzebul, the prince of demons, he drives out demons."
Others, to test him, asked him for a sign from heaven.
But he knew their thoughts and said to them, "Every kingdom divided against itself will be laid waste and house will fall against house.
And if Satan is divided against himself, how will his kingdom stand?
For you say that it is by Beelzebul that I drive out demons.
If I, then, drive out demons by Beelzebul, by whom do your own people drive them out?
Therefore they will be your judges.
But if it is by the finger of God that I drive out demons,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upon you.
When a strong man fully armed guards his palace, his possessions are safe.
But when one stronger than he attacks and overcomes him, he takes away the armor on which he relied and distributes the spoils.
Whoever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whoever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When an unclean spirit goes out of someone, it roams through arid regions searching for rest but, finding none, it says, 'I shall return to my home from which I came.' But upon returning, it finds it swept clean and put in order. Then it goes and brings back seven other spirits more wicked than itself who move in and dwell there, and the last condition of that man is worse than the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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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13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사탄의 존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늘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입니다. 사탄이 예전처럼 주변을 떠돌아다니며 우리를 조종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많은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사탄이 내 안에서 이기심과 갈등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국제적으로도 평화를 깨뜨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거대한 세력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 때에 그리스도께 사탄의 악령을 끊어 버리겠다고 서약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겠다고 말합니다. 세례는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경계를 표시합니다. 나 자신 안에 있는 갈등의 상황을 극복하고 봉사의 삶으로 축성되어, 죽기까지 그리스도의 세례를 증명하겠다는 선언으로, 자신만을 추구하던 삶에서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늘 수많은 갈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삶 안에서 가장 크고 어려운 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이기심과 탐욕은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다른 이의 행동을 판단하고 비난할 눈은 가지고 있지만, 나 자신의 죄와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면 더 큰 영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우리 자신이 경계선의 어디에 설 것인지를 물으시는 예수님의 준엄하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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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07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이 고백으로, 유다인 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확신에 찬 믿음으로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민의식의 굴레에 갇힌 유다인들이 율법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여긴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의로움을 얻는, 곧 의화(義化)의 영예를 얻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야말로 만민을 향한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체험하는 통로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1517
년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은 교회 분열이라는 상처를 역사에 남겼지만, 자칫 전통과 제도의 율법적 굴레에 빠질 위험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자극제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을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유다인들이 치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모든 병과 악의 근원인 마귀를 몰아낼 수 있는 힘을 한 인간인 예수님이 지니고 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귀를 몰아내는 권능을 지닌 예수님의 능력에 맞서려는 사탄의 세력에 믿음이 아닌, 인간의 나약한 의지로 맞서다 보면, 교만과 위선의 덫에 걸려 “더 악한 영 일곱”의 세력에 쉽게 무너지거나, 힘겨운 영적 투쟁을 해야 한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악의 세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우리 시대에 하느님의 능력과 자비를 청하는 우리의 믿음의 힘이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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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09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여기서 말하는 ‘힘센 자’는 마귀입니다. 그런데 ‘더 힘센 자’는 예수님이시죠.
논리는 이렇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이라면 사탄의 나라는 반드시 분열되어 무너졌어야 했을 것입니다. 사탄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사탄들도 그렇게는 하지 않겠지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사탄의 나라보다 더 힘이 세어서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를 쫓아낸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나간 그 빈 집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지배를 당하거나 보이지 않는 줄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그 속박에서 풀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갖가지 중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중독에 걸린 사람은 그것에 깊숙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놓으면 불안하여 곧바로 다른 것에 매달리고 스스로를 묶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힘센 자’ 마귀를 몰아내면 그 자리를 ‘더 힘센 자’ 예수님께서 채우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다시 스스로 어딘가를 찾아가 다른 집주인을 섬길 것입니다.
사탄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집’을 예수님께서 온전히 차지하시어 그 안에 다른 누구도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아울러 군중은 정당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반대할 수 없게 되자, 중상모략을 합니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덕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진실을 외면하고 험담하는 것은 커다란 악이라는 것을 오늘 복음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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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 10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신 뒤, 악령에서 해방되는 ‘영적 투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면 ‘우리의 삶에서 과연 진정한 ‘회심과 변화’가 가능한가?’ 하는 두렵고 고통스러운 질문에 진지하게 맞닥뜨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회심’과 ‘변화’를 추구하며 직면하는 준엄한 현실을 보게 하십니다. 영적이고 도덕적인 변화는 세상의 힘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인간적 지혜나 피상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또한 일시적인 감상적 위안이나 자기도취에 의지하는 것은 절망을 낳는 퇴행의 길이라는 점도 지적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길만이 진정한 회심과 변화로 이끈다는 점을 암시하십니다. 이는 가장 깊은 차원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큰마음’을 요구합니다. 깨어진 환상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어려운 첫걸음을 내딛도록 이끄십니다.
20
세기의 뛰어난 신학자 버나드 로너건 신부의 사상에 대한 한 탁월한 연구서에서 우리는 진정한 회심과 변화를 위한 출발점을 보게 됩니다. “도덕적 나약함이라는 이 문제에 대한 잠재적인 해법은, 사람 혹은 공동체가 인간 사랑의 모든 형태를 초월하여 더욱 확장된 종교적 사랑을 추구하는 것에 헌신하도록 할 새로운 유형의 종교적인 진정성에 기반을 둔 종교적 회심이다. 그 같은 종교적 회심은 ‘전적인 타자’(他者)에 대해 사람 혹은 공동체의 편에서 응답할 것을 포함한다”(조지프 플래너건, 『자기 앎의 탐구』에서).
진정한 회심과 변화를 위한 노력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위대한 길을 매일의 소박한 일상을 통하여 걸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그 길의 위대함과 가치를 강조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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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1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 요한 23세 교황 기념일)


고등학생 때 한 친구가 피정을 다녀온 뒤의 체험을 들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여느 피정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기분 좋게 다른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본당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답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그는 옆 친구와 이야기하던 가운데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격앙된 나머지 자칫 주먹다짐까지 벌어질 뻔했습니다. 앞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더욱 새롭게 살려고 다짐했던 피정이 끝나자 마자 친구와 다투게 되어 속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에 만난 피정 지도 신부님은 그 친구에게 오늘 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신부님은 피정도 중요하지만 그 뒤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친구에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이야말로 더욱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미사 때에 은총을 체험했으나 성당 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화낼 일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직후에 오히려 성당에 가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짜증 날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늘 염두에 두면서 성당 울타리 안뿐 아니라 그 너머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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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12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학 대사와 태조 이성계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둘이 만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태조가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군신(君臣)의 예를 떠나서 모처럼 농담이나 합시다.” “좋습니다, 전하!” “그럼 내가 먼저 하겠소. 대사께서는 그간 산중에서만 지낸 탓인지 얼굴이 흡사 산돼지 같구려.” 그러자 무학 대사가 말을 받았습니다. “하하하, 전하의 얼굴은 흡사 자비하신 부처님을 꼭 닮았습니다.” “내가 농담을 청했는데 농담이 아닌 아첨을 하다니요?” “전하,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담겨진 대로 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을 알아볼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장자(莊子)의 예리한 통찰 중의 하나는 “참사람〔眞人〕만이 참지식〔眞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장 깨끗한 것까지도 더럽게 보입니다.
우리 눈에 다른 사람의 단점이 자꾸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없고 마음이 메말랐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그만큼 교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은 내 안에도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존경스럽고 귀하게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에 비추어진 상대방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상대방은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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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07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피정이나, 깊이 통회한 고해성사를 하고 나면 세상에 다시 태어난 듯 참으로 마음이 맑아지고 가벼워집니다. 마치 오랫동안 어질러졌던 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정리 정돈한 것처럼 우리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깊은 통회를 해도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면 그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실망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환락가나 죄에 오염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귀가 더 이상 달려들지 않는다고 하지요.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학교나 수도원, 특히 영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마귀 떼가 득실거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음을 잡고 영적으로 살고자 할 때, 가끔 더 많은 유혹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피정이나 깊은 통회의 시간을 갖는 것 못지않게 그다음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치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난 뒤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관리를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내면에 다시 더러운 영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악마들이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돌아다닌다고 하지요(1베드 5,8 참조). 특별히 묵주 기도는 악한 영의 침범을 막는 가장 좋은 무기입니다. 성모님께서도 발현하실 때마다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도록 늘 묵주 기도를 권하셨지요. 가장 단순하고 반복되는 기도이기에 언제나 어디서나 바칠 수 있습니다. 묵주 기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성모님 품에 있는 어린 예수님이 되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아들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지켜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 신자들은 습관처럼 묵주 기도를 바치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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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08)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과 행위를 보고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마귀를 내쫓고 사람을 마귀의 간계에서 풀어 주시는 주님을 마귀라고 우겨 대는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이 헷갈린 군중이 주님과 마귀를 혼동하고, 주님을 오히려 마귀라고 단정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사탄의 짓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란 무엇입니까? 마귀는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방해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못하도록 훼방 놓고,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거나 이간질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를 갈라놓는 온갖 나쁜 무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을 비방하거나 이간질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거든, 혹시 마귀가 들려 있지 않은지 의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심이 든다면, 하던 말이나 행위를 얼른 멈추고 주님께 마음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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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09)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베엘제불’은 마귀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을 ‘무더기’로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아무리 편견을 갖고 있더라도 예수님께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감정을 드러내셨더라면 그들은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차분한 설명으로 그들을 설득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러므로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사탄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을 하면 내 몸에 ‘악한 기운’을 쌓는 것이 됩니다. ‘악한 말’을 자주 하면, 남아 있던 ‘선한 기운’까지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악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말도 예사로 쏟아 냅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군중 역시 모르기에 예수님을 마귀 두목에 비유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하지요? 무심코 하는 말 속에 ‘영적 폭력’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악령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늘 함께하십니다. 아무리 악령이 무장하고 ‘곱으로’ 온다 해도, 성령께서 계신다면 그들은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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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10)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마귀 때문에 말문이 닫힌 어떤 이를 고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벙어리 마귀를 물리치시자 그 사람은 말을 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의 말을 되풀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중 가운데 일부는 엉뚱한 생??합니다. ‘저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억장이 무너질 입니다. 주님의 기적을 ‘사탄의 행동’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좋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비뚤어진 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차분한 이론으로 잘못을 지적해 주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서면 망하는 법이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기적을 만난 사람은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당사자든 목격자든 모두가 같은 은총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니 겸손과 봉사로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데.’ 하는 유혹에 평생 휩싸이게 됩니다.
사탄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고 했습니다. 일곱은 그냥 숫자일 뿐입니다. ‘완전하고 강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겸손과 봉사와 감사’의 생활이 악한 영의 출입을 차단합니다. 하늘의 힘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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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12)


오늘 복음에서 들은 대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고, 군중은 놀라워합니다. 벙어리가 말을 하는 기적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베엘제불’은 구약의 우상인 ‘바알’을 가리킵니다. 왜 그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말을 내뱉은 것일까요?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 벙어리는 하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으니, 그것은 하늘을 역행한 잘못으로 더 큰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우쳐 주시고자 벙어리를 고쳐 말을 하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무심코 내뱉는 말 속에 비난의 폭력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약령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굳게 믿고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늘 함께하십니다. 악령이 아무리 강하게 무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해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어찌 그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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