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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15 - 가해 연중 제28주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15 조회수1,15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10 15 () 가해 연중 제28주일 복음 묵상

Twenty-eighth Sunday in Ordinary Time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사야서 25,6-10
필리피서 4,12-14.19-20
마태오복음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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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이사야서 25,6-10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Reading 1


Is 25:6-10a

On this mountain the LORD of hosts will provide for all peoples a feast of rich food and choice wines, juicy, rich food and pure, choice wines.
On this mountain he will destroy the veil that veils all peoples, the web that is woven over all nations; he will destroy death forever.
The Lord GOD will wipe away the tears from every face; the reproach of his people he will remove from the whole earth; for the LORD has spoken.
On that day it will be said:
"Behold our God, to whom we looked to save us! This is the LORD for whom we looked; let us rejoice and be glad that he has saved us!"
For the hand of the LORD will rest on this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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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4,12-14.19-20

형제 여러분,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20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Reading 2


Phil 4:12-14, 19-20

Brothers and sisters:
I know how to live in humble circumstances;
I know also how to live with abundance.
In every circumstance and in all things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well fed and of going hungry, of living in abundance and of being in need.
I can do all things in him who strengthens me.
Still, it was kind of you to share in my distress.

My God will fully supply whatever you need, in accord with his glorious riches in Christ Jesus.
To our God and Father, glory forever and ev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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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Gospel


Mt 22:1-14

Jesus again in reply spoke to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of the people in parables, saying, "The kingdom of heaven may be likened to a king who gave a wedding feast for his son. He dispatched his servants to summon the invited guests to the feast, but they refused to come. A second time he sent other servants, saying, 'Tell those invited: "Behold, I have prepared my banquet, my calves and fattened cattle are killed, and everything is ready; come to the feast."'
Some ignored the invitation and went away, one to his farm, another to his business.
The rest laid hold of his servants, mistreated them, and killed them.
The king was enraged and sent his troops, destroyed those murderers, and burned their city.
Then he said to his servants, 'The feast is ready, but those who were invited were not worthy to come. Go out, therefore, into the main roads and invite to the feast whomever you find.'
The servants went out into the streets and gathered all they found, bad and good alike, and the hall was filled with guests.
But when the king came in to meet the guests, he saw a man there not dressed in a wedding garment.
The king said to him, 'My friend, how is it that you came in here without a wedding garment?'
But he was reduced to silence.
Then the king said to his attendants, 'Bind his hands and feet, and cast him into the darkness outside, where there will be wailing and grinding of teeth.'
Many are invited, but few are ch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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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10 15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사야서 25,6-10
필리피서 4,12-14.19-20
마태오복음 22,1-14


성경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잔치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하늘 나라의 잔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온 교회와 온 세상이 함께 초대받아 어우러질 기쁨의 잔치이고, 구약에서부터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고대하시고 초대하시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나라에 먼저 초대받았으나, 그것이 그 자리에 대한 보증 수표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 내신 새로운 백성, 곧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기적을 통해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성령의 음성을 알아들음으로써 세계의 모든 백성이 하나 되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도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점점 발전되어 가는 세상 안에서 교회는,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정의와 자유와 해방의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아 큰 역할을 수행할 하느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복장 준비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모여들 많은 백성들을 안내할 책임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모으시지만, 하느님의 이 의지는 인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지, 마치 하늘에서 번쩍 비추는 번갯불처럼 내려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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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1009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열왕기 하 5,14-17
티모테오 2 2,8-13
루카복음 17,11-19


사는 것 자체가 은총이란 말이 있습니다. 숨 쉬는 순간부터 내 삶의 한순간도 거저 얻어진 것은 없습니다.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기적 같은 일들이 많았고, ‘살아 있음’ 그 자체가 감사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 기적 같은 인생에 감사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과 분노로 탄식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족보다는 불만에 더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었던 그들의 치유에 대한 간절한 청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위대한 예언자이시니 그분의 치유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한 사람, 그것도 ‘외국인’으로 표현된 이방인만이 돌아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젠가 다시 병들고 쓰러질 육체적 병의 치유가 아니라, 성실하신 하느님의 영과 함께 살아가는 마음의 회개와 치유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은, 당장 나병이 나은 것에 만족하고 돌아간 다른 아홉에게 주어지지 않은 진정한 치유와 자유였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도 요르단 강에서 물로 씻기만 했을 뿐, 나병이 나을 것이라 믿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에 기뻐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약속된 땅에서 흙을 실어 가져가며 오직 주님께만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칠 것을 약속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마음의 회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오로지 하느님을 향할 때 우리는 구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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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11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요한 23세 교황 기념일)

지혜서 7,7-11
히브리서 4,12-13
마르코복음 10,17-30


세례성사로 하느님께 축성된 모든 신자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부르심을 받았다는 현대의 교회 문헌들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성직자, 특히 수도자의 봉헌 생활의 고유한 특징은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 봅니다.
이에 관한 이론이나 학설을 논하기보다는 수도자로 살아가는 제가 그저 이해하는 바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삶 안에는 이런저런 많은 요소가 함께 있는데, 그 안에 하느님께 속해 있는 봉헌 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몸과 마음과 가진 것 전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 소유가 되어야 하는 삶, 곧 ‘하느님께 축성됨’이 저의 삶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어야 수도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혜에 비하면 재산도 건강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솔로몬이, 무엇보다 앞서 지혜를 추구하였듯이, 부르심에 응답하려고 다른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몸집이 커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낙타처럼 이것저것을 동시에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마음 안에 오로지 하느님께서 자리하시고 다스리시도록 그분의 섭리에 내어 맡겨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고백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화답송 시편처럼 우리의 날수를 헤아리면서 저마다 고유한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주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자세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께 어떤 자리를 내어드리고 있는지,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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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1012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이사야서 25,6-10
필리피서 4,12-14.19-20
마태오복음 22,1-14


오늘 복음의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는 잔치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끊임없는 ‘초대’에 반하는 두 가지 유형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됩니다. , 하늘 나라에 대한 초대를 외면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잔칫상으로 불러들인 이들 가운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초대받은 이들’이 ‘하늘 나라’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을 박해하는 모습은, 오늘 복음의 바로 앞에 나오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참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유형의 모습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신앙의 선물로 하늘 나라의 복음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거나 그 메시지에 대하여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그리고 하늘 나라의 ‘잔치’를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내적 품성과 외적인 생활의 변화를 게을리하는 것, 이 모두는 우리가 자주 빠지는 유혹이고 저지르는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영성 분야의 대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영혼의 노래』에서 채찍을 가하는 내용은 오늘 복음과 관련하여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선물을 얻으려는 영혼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에다 마음을 쓰고 있습니까? 그대들이 갈망하는 것은 너무 천박하고, 그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가련한 정도입니다. 그렇게도 큰 빛을 보지 못하는 그대들 영혼의 눈멀음은 너무나 비참하고, 그렇게도 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대들의 귀먹은 상태는 비참합니다. 그대들은 세상의 영광과 존귀를 찾으면서 실제로 큰 선물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자격하며 비참하고 미천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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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13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열왕기 하 5,14-17
티모테오 2 2,8-13
루카복음 17,11-19


오늘 복음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만이 구원의 은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상 안에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까?
‘감사’에 대한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만일 제가 이 본당에 오다가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동차가 완전히 부서져 폐차를 해야 하는데, 저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아마도 ‘정말 기적이네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정말 감사할 일이네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 올 때까지 다치지도 않았고, 제 자동차도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자동차 사고가 났지만 조금만 다친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아니면 자동차 사고도 나지 않고, 다치지도 않은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는 감사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공급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일분 일초도 거르지 않고 이 산소를 거저 받아먹으며 숨을 쉽니다. 이 역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럽 대륙을 정복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내가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고 한 반면, 극심한 신체장애자로 태어나 장애를 극복하며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던 미국의 헬렌 켈러는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에 더 가깝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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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14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 기념일)

지혜서 7,7-11
히브리서 4,12-13
마르코복음 10,17-30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인간이 한 평의 땅뙈기에 울타리를 치고서 “이것은 내 것이야!”라고 외치게 된 날부터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것이 불행의 시작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자기 것이라고 여긴 땅에 자신의 마음까지 울타리로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난 뒤 타인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땅에 울타리를 치면서 타인에 대한 시선도 변하게 됩니다. ‘혹시 누가 내 울타리를 넘어오지는 않을까?’ 그의 눈에는 이웃이 잠재적인 위험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재산을 축적하게 되면 순수하고 사심 없던 주변의 관계가 변하게 됩니다. 부의 축적은 또 다른 가난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그 가난이란, 벽을 쌓음으로써 이웃과 단절되는 것과 그로 말미암아 겪는 고독입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이 이를 잘 말해 줍니다. 많은 이들이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잘 모르는 채 지냅니다. 문을 꼭꼭 잠그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바라보지 않고 삶을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더 불행해집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보답을 바라지 않은 채 남을 돕고 가진 것을 나눌 때에 참된 기쁨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남을 돕는 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도 기쁘지만 도와주는 사람도 뿌듯한 마음을 선물로 받습니다. 결국 나누며 사는 것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손을 펴고 가진 것을 나눌 때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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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1009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이사야서 25,6-10
필리피서 4,12-14.19-20
마태오복음 22,1-14


하늘 나라 잔치에 부름을 받는 것은 죽음 이후에나 이루어질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으며 하나입니다. 우리 삶 깊은 곳에 이미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의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 기쁨의 잔치에 순간순간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면 하늘 나라 잔치에 참여하려면 갖추어야 할 예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예식에 참여할 때마다 예를 갖추어 그에 맞는 예복을 차려 입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혼례식에 초대받으면 밝고 화사한 옷을 입고 신랑 신부를 만나 축하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며, 반대로 장례식에 가면 슬픔을 표현하는 옷을 입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눕니다. 이처럼 하늘 나라에도 그에 맞갖은 예복이 있습니다. 그 예복은 사랑, 정의, 평화, 겸손, 온유, 친절, 인내 등 아름다운 내면의 옷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 잔치를 위해 이런 예복을 입어야 그 잔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의로워야 할 때는 정의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인내하여야 할 때는 인내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가 필요할 때는 친절과 온유의 옷을 입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는 사랑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1코린 9,22 참조). 하늘 나라의 기쁨은 이런 예복을 입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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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10)

열왕기 하 5,14-17
티모테오 2 2,8-13
루카복음 17,11-19


세상에 생겨난 말들 가운데 아름다운 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훈훈한 말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말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일이 자주 있는 사람은 세상을 바르게 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반대로, 감사드릴 일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감사드리는 일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걸어가십니다. 사마리아는 이방 지역이고, 갈릴래아는 믿음으로 충만한 유다인의 땅입니다. 이방 지대와 선민 의식으로 고양된 지역의 경계선상을 걸어가시는 주님이십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청원을 들어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감사드리는 사람은 고작 한 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제 갈 길을 가 버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돌아온 그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실 우리도 주님처럼 경계선상을 걸어갑니다. 경계선상에서 주님께 머리를 둘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머리를 둘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합니다. 주님께 머리를 두는 사람은 감사드릴 줄 아는 사람이며,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주님께 더 큰 은총을 입게 된다는 진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감사드릴 줄 아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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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11)
(
성 요한 23세 교황 기념일)

지혜서 7,7-11
히브리서 4,12-13
마르코복음 10,17-30


복음 말씀은 재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삶의 목적’이 되고 생명보다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재물입니다. 그런 재물을 많이 소유한 청년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시지만, 그는 머뭇거리다 포기합니다. 무엇이 그를 돌아서게 했겠습니까?
스승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오라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아까워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랬더라면 애초부터 제자가 될 생각을 안 했을 것입니다. 청년을 머뭇거리게 한 것은 재물에 대한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재물의 위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그런 재물’을 없앤 뒤에 오라고 하십니다. 그는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재물의 든든함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재물의 힘을 하느님의 힘보다 강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재물의 힘에 굴복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이들은 재산이 넘쳐나도 부족함을 떨치지 못합니다. 물질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만족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돈이 최고다., “재물이 최고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말하더라도, 우리는 그 위에 스승님의 힘이 있음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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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12)

이사야서 25,6-10
필리피서 4,12-14.19-20
마태오복음 22,1-14


임금은 혼인 잔치에 손님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절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가 난 임금은 그들을 벌주고 아무나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몇몇은 평상복 차림으로 갔다가 벌을 받습니다. 임금의 초대를 받았다면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은 필수적입니다.
임금의 초대를 거절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며, 뒤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웬만큼 성경을 읽은 사람이면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유다인들도 율법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 역시 편하고 욕망에 부합되는 사상을 원했습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야기는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임금의 초대를 거절했다는 내용입니다.
누구에게나 신앙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받은 자체가 그분의 초대입니다. 그러니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잔치의 예복은 ‘기쁨을 갖고 사는 생활’입니다.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으로 가고 있는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아무런 기쁨 없이 억지로 가고 있다면 그가 바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삶이 멍에로 느껴진다면 ‘기쁨의 예복’을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무겁기만 하다면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기쁨을 갖고 사는 인생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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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14)
(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 기념일)

열왕기 하 5,14-17
티모테오 2 2,8-13
루카복음 17,11-19


나병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참으로 무서운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그러한 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죽은 사람까지 살리시는 예수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들은 고쳐 주십사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홉 사람은 너무 들뜬 나머지 감사를 잊어버렸을까요? 아무튼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보통 인간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의 사람입니까? 돌아와 감사를 드린 그 한 사람에 속합니까? 아니면, 너무 좋아서 들뜬 나머지 그냥 가 버린 아홉 사람에 속합니까?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러 온 이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또 다른 은총을 받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나병이 나은 정도가 아니라 삶 전체가 바뀌는 은총을 받았을 것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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