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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18 -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17 조회수1,17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10 18 () 가해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Feast of Saint Luke, evangelist

티모테오 2 4,10-17
루카복음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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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 4,10-17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Reading 1


2 Tm 4:10-17b

Beloved:
Demas, enamored of the present world, deserted me and went to Thessalonica,
Crescens to Galatia, and Titus to Dalmatia.
Luke is the only one with me.
Get Mark and bring him with you, for he is helpful to me in the ministry.
I have sent Tychicus to Ephesus.
When you come, bring the cloak I left with Carpus in Troas, the papyrus rolls, and especially the parchments.

Alexander the coppersmith did me a great deal of harm; the Lord will repay him according to his deeds.
You too be on guard against him, for he has strongly resisted our preaching.

At my first defense no one appeared on my behalf, but everyone deserted me.
May it not be held against them!
But the Lord stood by me and gave me strength, so that through me the proclamation might be completed and all the Gentiles might hea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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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Gospel


Lk 10:1-9

The Lord Jesus appointed seventy-two disciples whom he sent ahead of him in pairs to every town and place he intended to visit.
He said to them,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Go on your way; behold, I am sending you like lambs among wolves.
Carry no money bag, no sack, no sandals; and greet no one along the way.
Into whatever house you enter, first say, 'Peace to this household.'
If a peaceful person lives there, your peace will rest on him; but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Stay in the same house and eat and drink what is offered to you, for the laborer deserves payment.
Do not move about from one house to another.
Whatever town you enter and they welcome you, eat what is set before you, cure the sick in it and say to them,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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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18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안티오키아 태생으로 직업이 의사였다고 알려진 루카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고,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에 초점을 맞춘 복음사가입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출신답게 모든 민족들의 구원에 관심을 갖고, 옛 율법이 배제하였던 가난한 이들, 죄인들, 여인들과 이방인들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았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의 협력자로서 그의 서간에 자주 기억되는 동료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은 안타까운 현실에서도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당신의 소명을 수행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제자들은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예수님께 파견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평화를 전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을 받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벗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 것입니다
물도 설고 말도 서툰 이국 땅에 가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많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나먼 오지에서 예수님의 이름만 가지고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살아갑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예수님의 참평화를 전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선물 받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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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 18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걱정과 격려, 희망이 뒤섞여 있습니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는 예수님의 표현에는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악한 세상에 아직 덜 익은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걱정 어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는 말씀은, 행여 선교의 여정에서 내가 지닌 여유로움이나, 내 인맥의 편안함으로 인해 복음 선포의 간절함이나 절박함을 잃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에게 평화를 약속해 주시고, 제자들이 일에 대한 품삯을 정당하게 받도록 격려하십니다. 그들에게 병자의 치유와 복음의 기쁨이 선포될 것이라는 희망의 격려도 잊지 않으십니다.
복음 선포의 열정을 끝까지 잃지 않은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도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인간적인 부탁과 더불어, 선교를 방해하고 음해한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속상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은, 그 모든 인간적인 실망과 좌절에도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주님께서 함께 계심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고통이 복음 선포를 완수하는 희생의 산 제물이 된다는 확신에 있음을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용감하게 전하고 있습니까? 내 작은 희생과 자선, 이웃을 향한 미소와 손길까지도 신앙인의 향기를 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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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1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연중 제2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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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18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은 루카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루카 복음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세상 모든 민족들에 대한 보편적 복음 선포의 신학이 잘 드러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주님의 ‘제자’로 파견된 존재이며, ‘선교사’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심정을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고 표현하십니다. 복음 선포를 위하여 파견되는 곳에는 큰 위험과 유혹과 난관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시키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복음 선포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의 복잡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 사회, 낭비 사회, 잉여 사회, 하류 사회, 허기 사회, 위험 사회, 분노 사회, 감시 사회, 과로 사회, 피로 사회, 승자 독식 사회, 격차 사회, 부품 사회, 제로섬 사회, 분열 사회, 루머 사회 …….’ 한국 사회를 진단한 한 사회학 신간의 목차에 등장하는 낱말들만 보아도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병리 현상에 시달리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사회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지만 그러한 분석을 하면서 종종 비관적 관점이 자라나는 가운데 확신에 찬 복음 선포의 용기가 사라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얽히고설킨 사회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은 언제나 ‘본질’에 집중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만남에 희망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8월에 우리나라를 다녀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제시하신 통찰은, 우리가 파견된 제자로서의 삶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은 온갖 극심한 소비주의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불행입니다”(2).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든 바로 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권고합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초대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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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18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파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사실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데 굳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시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셨고, 그들과 함께 구원 사업을 펼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다음의 예화를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백인 교사가 인디언 보호 구역의 한 학교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갑자기 책상을 가운데로 끌어당기더니 한데 모여 앉았습니다. 교사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부정행위는 안 된다고 훈계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선생님을 보고 도리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희는 지금껏 어려운 문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다른 이들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체가 이미 공동체성을 본질로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공동체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도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일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다른 이들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느님께는 우리가 필요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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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18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외에 일흔두 명을 따로 선발하여 둘씩 짝지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은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제자들이 겪게 될 운명을 잘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숱한 고난과 박해 그리고 순교까지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길 떠나는 아들을 염려하는 ‘길손의 노래’라는 맹교(孟郊)의 시가 있습니다.
어머님 손에 들린 실은/ 길 떠날 아들의 옷을 지으신다/ 나그네길에 해지지 않도록 꼼꼼히 기우시며/ 마음속으로 돌아옴이 늦어질까 걱정을 하신다/ 촌초(寸草) 같은 아들의 마음으로는/ 삼춘(三春)의 햇빛 같은 어머님 사랑을 보답하기 어렵도다.
이 시에는 길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한 치 풀처럼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춘삼월 햇빛처럼 따스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길을 떠나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인간적인 정으로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더욱이 파견되는 제자들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빈손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은 여행길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믿음 이외의 다른 것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인 복음을 전하는 데 우리는 무엇을 지니고 수행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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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18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 한가운데로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 마저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빈털터리로 길을 나섰으니 자신들은 물론이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을 도와줄 돈도 양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세상과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요?
불교의 가르침에도 일곱 가지 보시(布施)가 있습니다. 우리가 꼭 물질적인 베풂만으로 덕을 쌓는 것이 아니라, 눈빛, 환한 웃음, 부드러운 말씨 이런 것이 다 좋은 업()을 쌓는 것이라고 가르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이 가지고 간 것은 주님께 받은 사랑과 격려, 용기, 배려, 믿음과 같은 아름다운 미덕이었을 것입니다. 돈이나 식량으로 베풀면 한계가 있었을 터이지만, 그들이 가진 정신적 가치는 아무리 베풀고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 자신을 둘러보아도 홀몸으로 사는 사제이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 안 가득 쌓여 있는 책들, 부엌 가득 놓여 있는 그릇들, 텔레비전, 냉장고를 비롯한 각종 집기들 ……. 사목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고, 때로는 접대도 해야 하고, 세상 정보를 얻으려면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제 삶을 합리화합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사목자에게 바라는 것은 훌륭한 지식도, 물질적 나눔도 아니며, 온갖 세상 정보는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따뜻한 미소와 사랑, 격려, 용기, 배려와 같은 삶에 지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평화를 주는 신앙의 가치들일 것입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적인 베풂과 나눔도 중요하지만, 먼저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웃음부터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기꺼이 빈 몸으로 파견하실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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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18)


주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세상 속으로 파견하십니다. 파견하시면서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당신의 심정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모든 고을과 고장을 두루 다니면서, 어떤 집을 방문하였을 때 먼저 ‘평화’를 빌어 주라고 하십니다.
평화는 모두가 바라는 바입니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주님께서 주셔야만 참평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엔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자꾸만 군대와 무기를 증강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적대감을 고조시키며, 분위기를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그것은 참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가장한 ‘전쟁광’의 미친 짓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닙니다. 평화는 주님으로부터 와야 하고, 주님께서 곧 참평화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입니다. 주님께 속했다고 하면서도 평화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입니다. 평화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이 희망이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어 주며,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구원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니 일흔두 제자는 오늘날 우리이고,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일,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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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18)


연중 제2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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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18)


‘일흔두 제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고 있기에 열두 제자는 아니라도 예수님을 추종했던 분들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루카 역시 처음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선교를 명하고 계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렇듯 선교의 첫 작업은 평화를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를 알리는 일입니다. 그러니 평화를 비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선교에 앞서 그런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선교를 지향하는 사람이 평화는커녕 투쟁과 싸움에 휩싸여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지요?
선교를 방해하는 세력은 언제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비난하고 헐뜯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갈라져 나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어찌 주님을 믿으려 할는지요? 그들이 외치는 소리에 누가 귀를 기울일 것인지요?
신앙인은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이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녔다.’고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가기만 해도 훌륭한 선교가 됩니다. 악을 쓰며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외친다고 선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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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18)


오늘 복음에서 들은 대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지역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짝을 지어 파견하십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주님께서 편히 오실 수 있습니다. 곧 성령께서 당신의 능력을 쉽게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스승보다 앞서 파견되는 제자들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스승께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사람은 부족하면 할수록 더욱 애절해집니다. 선교사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고 그분의 은총에 기대게 됩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이러한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의 부족을 느낀다고 모두가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없다고 짜증을 내거나 가진 자를 원망한다면 선교하는 사람의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가난은 자유로움에 있습니다. 곧 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에 있습니다. 스승께서 원하신 것은 이런 마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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