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7년 10월 21일(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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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10-21 | 조회수92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7년 10월 21일 [(녹)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진다며,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약속이 보장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었다.> 말씀입니다. 4,13.16-18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 6-7.8-9.42-43(◎ 8ㄴ) 영원히 기억하셨네.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그 거룩한 말씀 기억하셨네.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복음환호송◎ 요한 15,26.27 참조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복음입니다. 12,8-12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우리가 하는 말이나 몸짓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그 내면이라는 것이 때로는 단순히 생각이나 느낌에 관계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자신의 전 존재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고백, 충성하겠다는 맹세, 신앙의 고백은 어찌 보면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 삶의 방향을 정해 주고, 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주기 때문입니다. 안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와 삶이 예수님께 속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울타리 안에 속하게 되는데, 그분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갖고, 그분과의 인연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그분과의 만남의 역사가 됩니다. 예수님으로 가득 찬 사람은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그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 향기는 세상의 풍파와 박해 속에서 더욱 진하게 뿜어져 나올 것이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순교의 빛나는 영광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내 삶의 결단이 따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삶의 방향과 정체성이 온전히 정립되어 있을 때는, “내가 어떻게 답변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대신 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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