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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22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1 조회수99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10 22 () 가해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복음 묵상

Twenty-ninth Sunday in Ordinary Time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기념일)


이사야서 2,1-5
로마서 10,9-18
마태오복음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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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이사야서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Reading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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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Reading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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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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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22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기념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내려진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소명은 그분께서 남기신 가장 큰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기 전에 당신께서 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권한은 악마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예수님께 보여 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주겠다고 했던 세속적 권한이 아니라,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하느님께 직접 받으신 권한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십자가와 죽음을 실천함으로써, 파스카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얻게 될 하늘 나라의 권한입니다.
오늘날의 선교는 내가 가진 진리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개념을 넘어 이웃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이웃에게 전하고,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함께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인간이 되시어 우리 안에 들어오셨던 하느님의 모습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도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희생과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신앙의 진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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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10 23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기념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함께, 곁에”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버림받고, 위험에 빠지고, 불신의 늪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내가 곁에 있어 줄게., “내가 너를 지켜 줄게.,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신뢰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면서 말없이 곁에서 손을 잡아 주며 함께 아픔을 견뎌 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님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명하십니다. 사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은 누렸지만, 예수님 없이 자신들만의 믿음으로 복음을 전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자리에서조차 더러 의심하고, 불신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두려움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이 약속은 협조자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선포하게 하시며, 교회를 성장시켜 주심으로써 성취됩니다. 성령의 현존은 바로 예수님 약속의 보증이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바오로 사도는 고백합니다. 누군가 기쁜 소식을 전해 주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법입니다. 내 믿음도 부모님이나 친구, 지인들의 안내와 전교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내 믿음의 멘토(스승)나 후견인이 필요했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믿음의 멘토이자 후견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외침처럼 우리 안에서 먼저 복음의 기쁨이 움터 나올 때 가능함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내 주변에 믿음을 잃고 있는 교우는 없는지 먼저 찾아보고 그들을 향해 달려갑시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1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언젠가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아름답다는 구절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통상적으로 복음은 ‘말과 입’으로 전한다고 생각하는데,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려고 발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때는 이미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경험한 다음이었지요.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는 사람들을 만나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고는 아름다웠는데, 더욱이 복음을 위한 수고였기 때문이지요.
초창기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분들은 대부분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었는데, 이 회에서는, 이 구절을 생각하며 선교지로 떠나는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고 합니다. 박해가 한창인 선교지를 향하여,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선교사들의 발에 입을 맞추던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발들이 복음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발들에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시다.
아울러 인류 구원 역사는 파견의 역사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파견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께서는 성령을 이 세상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하여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제자들과 우리를 오늘 파견하십니다. 전해 받은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발’도 아름답게 수고하기를 빕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 19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마지막 말씀을 듣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제와 형태로 명확히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셨다는 점을 장엄하게 선언하십니다(과거형). 이어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며 당신의 계명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분명하게 맡기십니다(명령형). 그리고 당신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미래로 이어지는 현재형).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이루는 모든 차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속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행적과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선사하신 구원의 업적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리라는 주님 현존의 약속을 신뢰하며 희망하는 이들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주님 안에서 긍정하는 믿음과 희망하는 자세는 그분께서 부여하시는 사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을 통하여 비로소 그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사랑의 계명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는 보편적 선교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수행하는 선교 사명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단지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 가슴속 깊이 자리 잡은 실존의 방식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삶에서 솟아나 이웃에 전해지는 복음 말씀이 그들에게는 기쁨의 샘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는 존재의 실현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 10 20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전교’라 하면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협박성 외침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교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피부가 좋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 약국들 가운데 피부약이 좋기로 소문난 약국에서 지은 약을 발랐더니 며칠 만에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그 약국을 자주 추천하였습니다. 전교도 바로 이러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 살아가는 데 뿌리가 되어 주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어느 본당 신부님이 예비 신자 환영식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신부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떻게 성당에 오게 되었는지 들어 보는데, 한 예비 신자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성당 앞에서 1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해 온 사람입니다. 그만큼 이 성당에 다니는 분들이 우리 가게를 많이 찾아왔지요.” 여기까지 이야기할 때만 해도 신부님은 ‘아, 우리 교우들의 모범적인 모습에 감동받았거나 누구의 권면으로 오게 된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신자가 10년 동안 우리 가게를 찾아 주었는데, 단 한 사람도 저에게 성당 가자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기가 생겨 직접 제 발로 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본당 신부님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전하고 있습니까?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 10 21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주십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당신의 사랑 안에 모으기를 바라십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러한 사명을 부여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선교란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보고 배워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변화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들의 체험을 나누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제자들의 사명은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법으로 수렴됩니다.
근래에 신자 증가율이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냉담 교우들도 늘어 가고 있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은 점점 개인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살아감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을 잘 모릅니다. 선교란 이념이나 세력의 확장이 아닙니다. 선교는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그 구성원들이 사랑으로 일치된 삶을 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다시금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 23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우리나라 사람들의 70%가량이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가 도시로 몰려와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삶은 더욱 촘촘해졌습니다. 이제는 이웃이 30cm 두께도 되지 않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밀착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문화로 공간적으로는 이웃과 더 가까워졌지만 마음은 콘크리트 벽만큼이나 차갑게 단절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지켜 주는 것은 더 이상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단한 잠금 장치, 자신만이 아는 비밀번호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자신의 생활을 지켜 주고 있습니다. 남들도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전화 한 통화로 필요한 도움은 거의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관계를 맺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관계에 얽히기보다 모르는 채 사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애완견 한 마리가 짖어 대며 반가워합니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켜고 짜 맞춰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따라 웃고 울고 합니다. 아니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가상 공간을 떠돌며 어떻게든 외로움을 달래려 합니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접촉’이 아니라 ‘접속’을 통해 합니다. 결국 사람들의 내면은 기계처럼 무감각해지고 인간성은 점차 사라져 갑니다. 이렇게 이웃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신앙인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일구어 내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웃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이웃 사랑으로 우리 삶 속에서 체험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선교에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오늘날의 선교는 세속의 문명 앞에서 소외되어 가는 인간 사회에 생명과 사랑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신앙인의 사명임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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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24)
(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기념일)


주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면서도 우리와 똑같이 되시려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또 주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또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처럼 거짓이 난무하고, 진리와 진실이 왜곡되며, 불신이 팽배하고,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 때도 일찍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의 잘못된 삶의 태도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이긴다는 진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사명을 맡기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혹여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용기를 잃을까 봐 당신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되새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세상에 선포할 것을 다짐합시다. 그리고 선교사로 세상 끝까지 나아가 선교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형제자매를 위하여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억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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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18)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충격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옴츠려 있던 그들 앞에 부활하신 스승님께서 나타나시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전교란 예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주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삶은 불안합니다. 공평하지 않게 보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물질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재물이 불안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셔야 불안은 물러갑니다. 전교는 이러한 ‘예수님의 힘’을 전하는 일입니다.
‘힘 있는’ 선교를 위해서는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서 남에게 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내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자신은 관리자일 뿐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하는 일이 잘될 때는 고백이 쉽습니다. 하지만 역경을 만나면 흐지부지됩니다. 세상은 실천하는 신앙인을 원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믿음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신앙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말로만 전교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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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19)
(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넋을 잃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걸고 따랐는데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망 때문에 제자들은 집 밖을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부활하신 스승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전 모습으로 다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전교란 예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계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전교의 핵심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괜찮다고 했던 이들도 이제는 불안을 느낍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알려야 합니다. 그분의 힘과 능력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믿음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확신에 찬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은 망설이고 있는데 어찌 남을 움직일 수 있을는지요? 믿음이 약했기에 선교도 약했던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운명과 소유의 진짜 주인은 당신이시고 나는 관리자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뜻합니다.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다시 한 번 고백하는 날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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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21)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스승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신 스승 예수님께서 어찌 당신 생명 하나 지키지 못하시고 힘없이 돌아가시다니…….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는데 이젠 무얼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제 제자들은 고개를 들고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전교 주일인 오늘 이 복음을 읽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전교란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해 주실 분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알려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내 운명과 소유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나는 관리자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고백이 입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고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힘을 주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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