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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23 -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3 조회수1,09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10 23 () 가해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Mon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기념일)

로마서 4,20-25 / 에페소서 2,1-10
루카복음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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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4,20-25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은 20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23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기록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24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도 그렇게 인정받을 것입니다.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Reading 1


Rom 4:20-25


Brothers and sisters:
Abraham did not doubt God's promise in unbelief; rather, he was empowered by faith and gave glory to God and was fully convinced that what God had promised he was also able to do.
That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But it was not for him alone that it was written that it was credited to him; it was also for us, to whom it will be credited, who believe in the one who raised Jesus our Lord from the dead, who was handed over for our transgressions and was raised for our ju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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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2,1-10

형제 여러분,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Reading 1


EPH 2:1-10

Brothers and sisters: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in which you once lived following the age of this world, following the ruler of the power of the air, the spirit that is now at work in the disobedient.
All of us once lived among them in the desires of our flesh, following the wishes of the flesh and the impulses, and we were by nature children of wrath, like the rest.
But God, who is rich in mercy, because of the great love he had for us, even when we were dead in our transgressions, brought us to life with Christ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raised us up with him, and seated us with him in the heavens in Christ Jesus, that in the ages to come he might show the immeasurable riches of his grace in his kindness to us in Christ Jesus.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and this is not from you; it is the gift of God; it is not from works, so no one may boast.
For we are his handiwork, created in Christ Jesus for good works that God has prepared in advance, that we should live i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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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2,13-21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Gospel


Lk 12:13-21

Someone in the crowd said to Jesus, "Teacher, tell my brother to share the inheritance with me."
He replied to him, "Friend, who appointed me as your judge and arbitrator?"
Then he said to the crowd, "Take care to guard against all greed, for though one may be rich, one's life does not consist of possessions."

Then he told them a parable.
"There was a rich man whose land produced a bountiful harvest. He asked himself, 'What shall I do, for I do not have space to store my harvest?' And he said, 'This is what I shall do: I shall tear down my barns and build larger ones. There I shall store all my grain and other goods and I shall say to myself, "Now as for you, you have so many good things stored up for many years, rest, eat, drink, be merry!"'
But God said to him, 'You fool, this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of you; and the things you have prepared, to whom will they belong?' Thus will it be for the one who stores up treasure for himself but is not rich in what matters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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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23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기념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형과 유산을 가지고 다투는 사람에게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그 사람이 제기한 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하고도 위험한 부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재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신앙인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재물로부터 마음을 떨어뜨려 놓기는 결코 쉬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경험으로, 무엇을 하든지 돈이 필요하고, 또 재물을 충분히 쌓아 놓지 않고서는 삶 자체를 안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돈만 가지면 명예나 쾌락, 복지와 존경 등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물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재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묶이는 순간 그것은 우리를 쓸데없는 걱정과 잘못된 판단, 미움과 원한으로 이끄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삶이 예전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졌지만, 우리의 마음이 갈수록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나의 행복을 타인과 비교하는 데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타인과 비교하는 데에서 오는 쓸데없는 열등감이 아니라, 내 삶을 이웃과 나눌 때 찾아오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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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 17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공감 백배 울려 퍼집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통하여 인간의 존재 방식의 명확한 두 가지 형태를 규명한 바 있습니다. 무엇인가 내 것으로 소유하고, 내 뜻이 관철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사는 인간이, 소유적 본능에서 벗어나 ‘존재’, 곧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고, 애초부터 내 소유란 없음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 시대에 경종이 됩니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얻은 부자는 그것이 순전히 자신의 노력의 대가라고 여기고, 더 큰 곳간을 지어 재산을 쌓아 두고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려고 합니다. 분배의 정의보다 부가 부를 창출해 내고, 부의 대물림이 현실화된 우리의 천민자본주의의 현실이 예수님 시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랍기만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기적 소유의 본능을 이겨 낼 수 있는 나눔의 이타적 삶이 있다는 점입니다. 부자의 어리석음은, 자신이 쌓은 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는, 육의 욕망과 감각에 따라 사는 우리가 결국 하느님께 돌아갈 때 세상 것들을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것임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보다 나를 소유하고 계신 하느님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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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19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일)


소유한 재산을 마음껏 써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해서 아쉬운 사람보다는, 살아가야 할 날이 구만리 같이 멀게 느껴지지만 의식주가 걱정이 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곧 끝날 수도 있다는 사소한 깨달음이 있다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까이 지내는 분이 갑자기 큰 병에 걸려 병문안을 갔을 때, 지금부터 나의 생명이 꼭 1년만 주어진다면 그 기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삶이 단지 1년이라면,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다 접어 두고 별다른 애착이나 집착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절박하고 참담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나의 업적 하나 남기려고 몰입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해 보려고 투병 생활에 전념하느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중한 1년을 다 써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와 세상일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재산을 벌어 소유하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물론 자기가 애써 벌어 늘린 재산이겠지만,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땀과 희생, 심지어는 눈물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시어(시편 90,12 참조)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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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20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전교 주일’인 어제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삶을 새겨 보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되면 예전에 본 명화 ‘미션’이 기억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모든 것을 바치는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을 감동적으로 보여 주는 이 영화에서 느꼈던 전율과 감동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영화 속 선교사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 충격 속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움켜쥐려 하고 우선시하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감동적인 음악을 작곡한 엔니오 모리코네는 작곡 전에 영화를 보았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를 보고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죠. 그래서 제가 했던 말입니다. ‘제가 했다가는 다 망치겠는걸요. 그대로가 훨씬 나아요.’” 그의 심정은 아마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국에서 오직 복음과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은 종교와 민족의 경계선마저 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삶의 스승’이 천 명의 ‘글의 스승’보다 더 필요하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진정한 선교사들은 말만이 아니라 삶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종교와 민족이 다른 이들에게까지도 크나큰 감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훌륭한 외국 선교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 복음이 가르치듯,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복음과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 준 우리 ‘삶의 스승’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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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2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욕심 많고 쾌락적인 한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야말로 그가 살기에는 참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온갖 하인들이 그를 섬기고, 주위에는 무엇이든지 풍부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만족해하며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아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천국에 보내 주셨구나.
그런데 이러한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울 게 없다 보니 처음에는 좋았던 것들도 하나하나 싫어졌습니다. 더 이상 희망할 무언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 참! 이상하네. 천국에 왔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지루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네. 이 어찌 된 일인가?” 그러자 하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아셨단 말입니까?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이곳은 지옥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것이 풍족하거나 넘친다 해도 희망할 것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곳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들만 있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결국 한계를 드러내어 지루함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코헬렛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진정 어리석은 이유는 하느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나오는 행복이란 없습니다. 일시적인 만족이나 안정은 있을지언정 그것은 결국 허무함과 지루함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참된 행복을 보장하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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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22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재물을 자기 곳간에 쌓아 두고 자신만 먹고 마시며 즐거워합니다. 그는 자신이 쌓아 놓은 재물에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았습니다. 이 부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재물을 축적하는 데에만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남과 나눌 줄은 모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재물과 함께 영원히 살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야말로 하느님의 눈에 어리석고 가련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온갖 사치를 누리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죽어서 천국에 당도하자 한 천사가 천상의 그녀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아름다운 저택들을 지나며 그 여인은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에게 할당된 집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큰길을 지나자 집들이 훨씬 작은 변두리가 나왔습니다. 바로 그 언저리에 있는, 오두막보다 나을 것이 없는 한 집에 이르렀습니다. “저것이 네 집이다.” 안내하던 천사가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항의했습니다. “뭐라구요? 저 집이요? 저기서는 살 수 없어요.” “안됐구나. 하지만 네가 지상에서 올려 보낸 자재로는 저 집밖에 지을 수 없었단다.” 하고 천사가 말했습니다. 『마음에 뿌린 씨앗』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살 집은 우리가 지상에서 올려 보낸 자재로 지어집니다. 하늘의 곳간에는 우리가 지상의 곳간에서 비워 낸 재화만큼만 쌓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비운 만큼 하늘의 곳간에 쌓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들은 영적인 삶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하느님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 쓰면서 그것으로 만족해합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하느님 눈에 어리석은 부자입니까,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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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17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자가 그토록 많은 재산을 모아 놓고 죽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자신의 재산 절반을 바치겠으니 한 천 년만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부자에게 천 년을 더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자는 매우 기분이 좋아서 자신이 천 년을 더 살게 되었다며 사람들을 불러 놓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그는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아들들이 주님께 천 년은 더 살게 해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둘째 서간 3 8절을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하루 같습니다. 마흔이 된 사람도 여든이 된 사람도 지나간 시간의 길이는 하루처럼 느껴진다고 하지요. 그러니 지나간 세월이라면 천 년을 살았든 만 년을 살았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살아온 세월이 일장춘몽이라고 하였듯이 하루 저녁의 꿈과 같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날 또한 ‘하루’일 따름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시간은 천 년을 살아도 하룻밤 꿈인 ‘유한한 하루’이지만, 하느님의 시간을 살면 하루를 살아도 그 안에 ‘천 년’이 숨어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목숨’을 지키려 하면 우리 삶은 하루살이일 뿐이지만, 비움과 나눔으로 ‘생명’을 살려고 하면 오늘이 하느님의 ‘영원한 하루’가 됩니다. 오늘 하루는 하느님의 영원성에 가 닿아 있는 하느님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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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18)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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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19)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일


금붕어를 키우는 집에 갔었습니다. 갓 부화된 새끼 금붕어들이 깨알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항 속에서 물결처럼 떠밀려 다녔습니다. 주인은 금붕어들이 잘 자라는지 들여다보더니, 금방 ‘병든 금붕어 새끼’를 찾아냈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인 눈에는 보였습니다. 애정의 ‘차이’입니다.
주인은 병든 금붕어를 따로 떠내어 물약을 먹이고 치료를 했습니다. 약값이 만만찮아 보였습니다. 누군가 약값을 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금붕어 수백 마리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습니다. “차라리 새끼 금붕어를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주인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새끼 한 마리 살리려는 정성이 없으면 다른 금붕어도 살리지 못한답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탐욕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나친 욕심’입니다. 정성도 없이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풍성한 열매’만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정성과 노력이 함께해야 ‘주님의 이끄심’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탐욕은 ‘순한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은총이 순화시켜 주는 것이지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하찮은 것도 새롭게 보게 되면 ‘삶의 질’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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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20)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돈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고 친구를 배반하고 부모까지 모른 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제가 최고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자고 합니다. 자연도 서슴없이 파괴하고 사회 질서도 금방 바꾸려 듭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하면 진정 행복한 세상이 오는 것인지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돈이 최고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칭찬하고 돈에 목을 매고 살면 점점 돈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돈을 우습게 보고 멸시해야 곁에 와서 아양을 떱니다. 이것이 돈의 속성입니다. 넓은 의미의 경제입니다. ‘너 없으면 죽는다.’ 하면 돈은 비웃습니다. ‘너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왔다.’ 해야만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베풀고 도와주면 언젠가 되돌아옵니다. 자신만을 위해 숨겨 두면 어느새 틈이 생겨 빠져나가는 것이 물질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함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 어리석은 부모, 어리석은 지도자가 되어선 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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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22)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기념일)


의술은 뛰어났지만 인색하기로 소문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식중독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는 아이를 말끔히 낫게 해 주자 아이 어머니는 감사의 표시로 값비싼 비단을 선물하였습니다.
“나는 물건으로 사례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현금으로 주십시오. 치료비는 이십만 원입니다.” 의사에게서 비단을 다시 돌려받은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그 속에서 열 장의 수표를 끄집어내어 두 장만 의사에게 준 뒤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탐욕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욕심이 전혀 없다면 오히려 무미건조한 삶이 됩니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욕심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는 욕심이겠습니까?

그 기준은 ‘감사할 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것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안다면 탐욕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불만보다는 감사를 먼저 생각한다면 탐욕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누가 보아도 감사할 일인데 불평부터 먼저 늘어놓는다면 그는 이미 탐욕의 덫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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