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일을 맡아 충실히 책임을 완수하는 건 영광이다. 그러면 주님도 흐뭇하게 여길게고 본인도 행복해 할 게다. 교회 안의 다양한 직책은 모두 주님께 받은 거다. 그런데 가끔은 그분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만 내세워 직분을 남용한다. 심지어 잘못된 판단으로 교회를 곤경에 빠뜨리기 일쑤다. 높은 직책 맡았다고 주님 가까이 있는 건 결코 아닌데도. 그분 뜻 헤아리는 이가, 정녕 그분 가까이 있는 자이리라.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알면, 집 뚫고 들어오도록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준비하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루카 12,39-40 참조) 깨어 있으라는 것, 이는 곧 ‘내가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하느님마냥 행세하려 든다. 마치 뭐니 뭐니 인 것처럼 주어진 인생을 ‘내 마음대로’, 가족들을 ‘내 뜻대로’, 재산을 ‘내 방식대로’ 하려 덤빈다. 그러나 그건 오만의 극치이다. 각자가 내키는 대로 살면 ‘나약한 나’로 인해 언젠가 전체가 무너지리라.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소한의 ‘깨어 있는 삶’의 자세일 게다.

모르긴 몰라도 “깨어 있어라.”라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단다. 잠든 사이에 도둑이 내 소중한 것을 앗아 가지 못하게 깨어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 내 생각과 의식을 열어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내적인 성찰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영적인 의미도 있을 게다. 모든 종교는 이 영적인 ‘깨어 있음’을 늘 상 강조한다. 영적 태만과 위선, 기회주의적인 자기 욕심이 여기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분께서 언제 올지 모르니 적당히 꾀를 내어 내 편안함과 욕심을 채우려는 이의 모습은, 마치 남이 나를 잘 알지 못한다면서 적당히 타협으로 게으르고 위선적인 모습과는 다르지 않다. 반면에 내 육신의 안락함이나 욕심보다는 그분 생각과 뜻을 기리면서 성실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이의 모습은, 칭찬받을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자기를 덜어 내고 비워 내는 비움의 영성, 곧 청정한 빈 마음의 삶은 신앙인이 추구하는 삶이다. 이런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세상 덧없음을 깨닫고, 또 욕망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면 삶의 참된 가치가 어디 있는지를 깨닫기 일쑤다. 그래서 종교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가 보다. 그리고 그 지혜는 내 힘이나 노력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 계시된 것’이리라.

오늘을 사는 우리도 살면서 계획을 수정할 때가 여러 번 있다. 분명 계획대로 가는데도 어느 순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때가 꼭 일어난다. 신앙생활 역시 계획대로 될 때보다 수정할 때가 훨씬 더 많다. 때로는 그분의 이끄심인데도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운 결과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만을 보면서 준비한다면, 한참을 지나 지난 뒤를 돌아보면, 그분께서 얼마나 ‘많은 은총’을 주셨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