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6 조회수1,830 추천수6 반대(0)

1년 전입니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작은 촛불이 모이니 커다란 폭풍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시켰습니다. 헌법 재판소는 국회의 탄핵 결의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지난 5월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국정농단,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국민은 물과 같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면 잔잔한 물이 되어서 권력이라는 배를 띄우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기만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한다면 거센 풍랑이 되어서 권력이라는 배를 침몰시키기도 합니다. 새로운 정부도 국민을 위한 정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국민을 무시한다면 국민은 또다시 촛불을 들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의 화답송은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 마다 모두 잘 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지금부터 38년 전에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때는 석간이었던 동아일보를 배달하려고 보급소엘 갔습니다. 신문 150부를 들고 배달을 하고 나면 배도 고프고 그래서 신당동 떡볶이 집엘 자주 갔습니다. 요즘은 신문도 다들 오토바이로 배달하지만 그때만 해도 오토바이 배달은 없었습니다. 신당동의 떡볶이 집에는 음악이 있었고, 맛있는 떡볶이가 있었고 우리들만의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은 레이프 가렛의 "다함께 춤을 춰여"라는 신나는 댄스 음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진, 나훈아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보여준 산울림의 음악이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산울림의 음악을 좋아했고, 저도 물론 좋아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신문을 배달하려는데 '호외'가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유고라고 했다가, 서거라고 했다가 결국은 대통령이 죽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였습니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분은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셨고,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서 산업현장을 뛰어다니셨고,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000불을 위해서 불철주야 땀을 흘리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분의 앞모습만 보았습니다. 신문과 방송도 그분의 앞모습만 저에게 보여주었으니까요.

 

그 뒤 저는 그분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무리하게 삼선개헌을 하였습니다. 긴급조치를 남용했습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저항을 잔인하게 진압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무리하게 유지하려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측근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분이 세상을 떠난 지 38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세운 업적이나 그의 앞모습만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평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국은 드러날 뒷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살아있는 사람은 결코 성인품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가 많은 기적을 행했어도, 그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어도 그렇습니다. 그가 아무리 높은 직책에 있었어도 그렇습니다. 죽은 다음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성인품에 올릴 수 있는지 조사를 합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말과 내가 하는 행동이 비록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어느덧 나는 나의 욕심과 나의 이기심을 뒤에 감추고 있을 때가 많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진실한 사람,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에 세상에 평화가 없고, 분열과 불신이 가득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따뜻함이, 우리들의 진실함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면, 참된 평화와 자유가 이 땅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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