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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0.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7 조회수1,63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7년 10월 27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제1독서 로마 7,18-25ㄱ

형제 여러분,

18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복음 루카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까요?

혹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요.

따라서 분명히 ‘나’ 중심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를 모두 사랑하시는

주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으며,

또한 그 사랑의 대상인 ‘우리 모두’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이면서도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 속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반대하거나 또는 제지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올려집니다. 며칠 전에 후배

신부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지요.

그런데 약속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요.

그러면서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내가 선배인데 나를 기다리게 해?

나를 무시하는 것 아냐?

바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렵게 시간 내서 왔는데....’
제가 이러한 생각을 왜 했을까요?

바로 제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후배 신부는 급한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마침 나오면서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아서 연락도

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그 후배를 쉽게 판단하고

단죄까지 해버렸던 것입니다.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모든 것들은 ‘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교만과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땅과 하늘의 징조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는 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지를 꾸짖으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는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고 하면서

 재판관 앞으로 가기 전까지

어떻게든 합의를 하고

 화해해야 하다고 하시지요.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까지 결코 나올 수 없다고

하십니다. 

내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마음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고

 쉽게 말합니다.

내 중심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해서 말하면서,

주님의 길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내 중심의 마음이

 바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사막의 교부인

압바 아가톤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판단하는 것은 네 일이 아니다.”
제대로 판단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삶의 준말이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온다.

(신영복)

갑곶성지의 모과. 가을입니다.

"듣는다는 것."

만약 듣지 못하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듣지 못하는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보지 못하는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많은 분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선택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듣지 못하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덜 불편할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행복도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헬렌 켈러가 이런 말씀을

남기셨지요.
“보지 못하는 것은

사물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지만,

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킨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보지 말지. 뭐’

라면서 안 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지

않는다고 행복하셨습니까?
듣는다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과의

고립이 아닌 일치를 가져올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을 침묵 속에,

그리고 기도 안에서 들어보십시오.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해 줄 것입니다.

강화 나들길이 있습니다. 정말로 좋아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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