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의 기본 진리 (60-8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7 조회수1,585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의

"기본 진리"
60. 지금까지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필요성을 말해 왔으므로

 이제는 이 신심이 참으로 무엇이며

 어떤 것이지 그 본질과 특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 신심의 확고하고 중요한

근본적인 진리 몇 가지를 다

음과 같이 밝히려 한다.

이것은 실질적인

신심을 낳을 것이다.

"첫째 진리"

마리아의 신심의 궁극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61.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신심의 궁극 목적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신심은 거짓이며

사람들을 잘못 이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마침이시며 알파요 오메가이시다.

(묵시 1, 8)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같이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천주성의 모든 충만함과 은총과

성덕과 완전성의

충만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가르침

받아야 할 유일한 스승이시며,

의지해야 할 유일한 주님이시며,

일치해야 할 유일한 머리이시며,

우리가 따라야 할 유일한 모범이시며,

우리의 질병을 치료해 줄

유일한 의사이시다.

우리들을 먹여 길러 주실

유일한 목자이시며,

길 잃은 우리들을

인도해야 할 유일한 길이시며,

그릇되기 쉬운 우리들이

믿어야 할 유일한 진리이시고,

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유일한 생명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다.
하늘 아래에 예수님의 이름

이외에 다른 어떠한 이름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완덕과 영원한 영광의 토대로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초석 위에 세워지지 않은 건물은

마치 모래 위에 세워진 것처럼

조만간에 틀림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포도나무 줄기에 붙은

포도 가지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있지 않은 모든 신자들은

누구나 다 땅에 떨어져

말라 버리게 되어 마침내

 불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계신다면,

우리는 어떠한 저주나 영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늘의 천사들도,

지상의 사람들도,

 또한 지옥의 악마들과

그 외에 어떠한 것들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성령과 더불어

성부께 온갖 영광과

영예를 드릴 수 있고,

자신의 완성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영원한 생

명의 향기가 될 수 있다.

62. 그러므로 우리가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을

확립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심을

더욱 완전하게 확립하기 위해서이며,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확실한 방법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만일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오히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떼어놓게 된다면 그것은 곧 마귀의

술책으로 알고 물리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고 또 앞으로

자세히 말하겠지만 그러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내고,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그분을 충실하게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필요한 것이다.

63. 오 사랑하올 예수님,

지금 여기서 저는 당신을

우러러보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아니, 가장 유식하다는 자들까지도

당신과 당신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

맺어진 깊은 유대를 알지 못하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슬퍼합니다.

오, 주님, 당신은 항상 마리아와

 함께 계시고 마리아도 또한

 항상 당신과 같이 있으며

당신 없이는 마리아는 더 이상

마리아란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존재로는

살고 있지 않다고 할 정도로

은총에 의해 온전히

당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 어느 천사나

 성인 안에서보다도 마리아 안에서

 더욱 완전히

머무시고 다스리시나이다.

아, 만일 사람들이 이 신묘한

마리아 안에서 당신이 받으시는

큰 사랑과 영광을 안다면,

사람들은 당신과 마리아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아주 달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태양이 없는 빛을 생각하고,

불이 없는 열을 느끼는 것이

 쉬울 정도로 당신이 없는 마리아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당신으로부터 떼어놓기보다는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을

당신으로부터

떼어놓기가 더 쉽습니다.

그것은 다른

 피조물들이 당신께 드리는

 사랑과 영광을 합한 것보다도

 마리아께서는

당신을 더욱 열렬히 사랑하고,

 당신께 더욱 완전한

영광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64. 지극히 사랑하올 주님,

세상 사람들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

당신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니 이 어찌 놀라울

 정도로 딱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금

당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알려고

하지 않는 우상 숭배자들과

이교인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며

당신과 당신의 교회에서

갈라져 나가 멀리 떠났기 때문에

당신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단자와

 이교도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가톨릭 신자들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자기 본분으로 삼고 있는

 가톨릭 지도자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잘 알지 못하는

그들은 마리아에 대해서 차갑고

이론적이며, 무미 건조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분의 거룩한 삶을 본받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신심의 남용이며, 당신을

멀리 떠나 버리는 소행이라고들

염려하여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또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대해서 별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마리아께 대해 깊은

신심을 가진 사람이 진심으로

 용기 있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서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그 신심이 당신을 알고,

당신을 더욱 완전히

사랑하기 위한 확실하고

틀림없는 방법이며

위험이 없는 가까운 길이고,

결함 없는 깨끗한 길이며,

또한 당신을

완전히 사랑하기 위한

오묘한 신비라고 말하는 것을

 그들이 보고 듣게 되면

그들은 곧 소리 높여 반대합니다.

또한 그들은 그 신심가에게

수많은 거짓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 신심은 마땅히 없애 버려야 할

커다란 잘못이 있으며

마리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믿는 사람들이

이미 마리아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열중하기 보다는 차라리

 당신께 대한 신심만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대해서 열중하기보다는

차라리 당신께 대한 신심만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대해서 말하기는 하지만

그 신심을 널리 보급하고 깊이

확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친 신심이라하여

물리쳐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신께 대한 신심과 경건함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묵주기도나

스차풀라(성의) 같은 것들도

 무식한 사람들이나 여자들의

신심이므로 구원을 위해서는

그것들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묵주기도나 그 밖에

마리아께 대한 어떤 신심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그들은 이내

그의 마음과 정신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들은 그에게 묵주기도 대신에

통회의 시편 일곱 편을 읽어 기도하고,

 마리아께 대한 신심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심을

가져 보라고 권고할 것입니다.
오! 사랑하올 나의 예수님,

그들이 정녕 당신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해드릴까 봐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에

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오히려

당신께 대한 신심을

방해하는 것이 됩니까?

마리아께서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명예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까?

마리아께서 독자적으로

어떤 집단이라도 만드십니까?

 마리아는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이십니까?

마리아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것이 당신께 불쾌감을

드리는 것입니까? 마

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이 당신께 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고

갈라지게 하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됩니까?

65. 사랑하올 저의 주님,

 저를 지켜 주소서!

그들의 정신과 행동에서부터

저를 지켜주시고, 당신이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품었던

감사와 존경과 경의와 사랑을

저에게도 나누어 주시어,

제가 좀더 열심히 당신처럼

당신을 따라 충실히 어머니

마리아를 따르려 할수록,

더욱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더 큰 영광을

드릴 수 있게 하소서.

66.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명예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원수들은 역시

당신의 원수들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합당하게

존경하고 찬미할 은총을 내려

주시고 '거룩하신 마리아를

거스르는 자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고 성인들과

더불어 대담하게

 외치도록 허락해 주소서.

67. 그리하여 제가

당신의 자비로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을 얻고,

그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하시며,

당신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이를 위하여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당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드리는

열렬한 이 기도를 들어 주소서.
"당신은 그리스도, 저의 거룩한 아버지,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의 위대한 왕,

착한 목자, 저의 유일한 스승,

가장 좋은 협조자, 지극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우신 분, 살아 있는 빵,

영원하신 사제,

저를 고향으로 인도하는 인도자,

참된 빛, 거룩한 온유, 곧은 길,

뛰어난 지혜, 티없는 순수함,

평화로운 조화,

 저의 완전한 보호자이시며

저의 좋은 몫이고

저의 영원한 구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올 주님,

왜 저는 제 일생 동안에 주님이신

당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사랑하고

흠모했던 것입니까? 주

님 아닌 다른 것을 마음에 담고 있던

 그때 저는 어디에 있었나요?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나의 모든 열망들은

주 예수님께만 향하고 뜨거워져라.

지금까지 너무 지체하였으니

이제는 달려라.

네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빨리 가고,

네가 찾는 분을 찾아라.

 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받아 마땅하며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쓴 맛을

보아야 마땅하나이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을 찬미하기에 알맞은

 모든 착한 마음들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안에서 기쁨을 맛보며,

신을 흠숭하게 하소서.

제 마음의 하느님이시며

저의 몫이 되신 예수님,

제 마음이 주님으로 인해

넋을 잃게 하시고 주님께서

제 안에서

의 생명이 되어 주소서.

 제 마음에 당신 사랑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시고,

그리하여 완전한 불의

 시초가 되게 하소서 그 불이

제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시며,

저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리고 제 영혼 한가운데서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저의 마지막 날에

제가 당신과 함께 완전히

타 버린 채 발견되게 해주소서. 아멘."

68. 우리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고린 6,19- 20)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의 성혈을 대가로 치르고

 무한히 비싸게 사들여진

그분의 종으로서

전적으로 그분의 것이다.
세례 받기 전에 우리는

마귀의 종으로서 마귀에게

속해 있었으나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종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매 맺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그분을 찬미하고

우리 영혼 안에서 그분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게 하기 위하여

일하고 죽을 모든 권리를

예수님께서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께서 싸워서 얻은 백성,

즉 그분의 전리품이며 그분의

유산이기 때문에, 우리 육신으로는

그분께 영광을 드리고,

영신 생활에 있어서는

우리를 다스리는 주인으로

 모셔야 마땅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신다.
1) 우리는 '교회'라는 밭에

은총의 강을 따라 심어져 제때에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이다.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 줄기에 달려,

좋은 포도송이를 맺어야 하는

가지이다 (요한 15,2 참조).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자에 의해서 번식되고

 젖을 내어야 하는 양 떼들이다.

 (요한 10,11 참조)
4)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 농부이신 땅에 경작되어

 30배, 60배, 혹은 100 배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좋은 땅이다 (마태 13, 8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고 (마태 21,19 참조)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불리지 않은

 게으른 종을 벌하셨다 (마태 21,19 참조)

이러한 비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잘것 없는

우리 인간들로부터 어떠한 결실,

 즉 우리의 선행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들은

 "선한 생활을 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된 작품" (에페 2, 10)

으로서 오직 그분께만

속해 있음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성령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모든

 선행의 시작이며 마침이시고,

또한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데 있어

삯을 받는 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그럼 내가 뜻하는 바를 설명하겠다.

69. 이 세상에는 어떤 사람에게

속하는 데 잇어서 그 사람의 권위에

의존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

즉 노예 상태와 단순한 종속 관계의

종이라는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종속으로는 어떤 사람이 일정한

급료나 이러저러한

 보수를 받기로 하고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다고 약속한다.

노예는 일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예속되는 사람으로서, 그

는 자신을 살리고 죽일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기 주인에게

일종의 가축처럼 아무런 보수나

보상도 요구할 권리 없이

그의 주인을

섬겨야만 하는 사람이다.

70. 노예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다

. 태어날 때부터 노예,

강요에 의한 노예,

스스로가 원해서 된 노예이다.

모든 피조물은 첫 번째 의미로 볼 때

하느님의 종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원래 만물을 소유하시고,

그것을 처리하는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야훼의 것" (시편 24, 1)

하고 노래한다.

두 번째, 강요에 의한 노예는

마귀들과 영벌에 처해진 사람들이며,

세 번째, 스스로 원해서 된 노예는

성인들과 의인들로서 그들은

사랑으로 기꺼이 순종한다.

스스로 원해서 된 노예는

비록 본래 그렇게 할 의무가

없을 때에도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들의 봉사는

 하느님 대전에 가장 완전하고

가장 큰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로

기득 찬 그들은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시고(1사무 16, 7 참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마음만을 원하시고 사랑의 의지로

 가득 찬 의지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분께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시편 73, 26 참조)

 그래서 본래 완전한 봉헌에 대한

의무가 없을 때에도 그들은 하느님께

더욱 완전한 봉헌을 함으로써

모든 것 위에 하느님과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

71. 하인과 노예 사이에는

 전혀 다른 차이점이 있다.
1) 하인은 자기의 온 존재와

모든 소유물,

또는 자기 힘으로든지

남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주인에게

전부 바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봉헌된 사람,

즉 노예는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과

앞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자기 주인에게 바친다.
2) 하인은 자기 주인에게

 봉사한 것에 대한

보수를 요구하지만

노예는 어떻게 일했든,

 얼마나 솜씨 있게 했든,

얼마나 그 일에 정성을

바쳤든지 간에 주인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가 없다.
3) 하인의 주인은 자신의

하인에 대해 살리고

죽일 권한이 없다.

만일 주인이 하인을 짐을 나르는

가축 중의 한 마리처럼 죽인다면

불의한 살인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노예의 주인은 그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며

팔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노예를 사들이거나

자신이 부리는 말처럼

 죽일 수도 잇다.
5) 마지막으로,

하인은 자신의 고용인에게

어느 시간에만 봉사하지만

노예는 항상 봉사해야 한다.

72.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하는 데 있어

 노예 신분보다 더한 것이 없듯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우리를

완전히 봉헌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속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에 대한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살아하신 나머지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셨으며

(필립 2, 7 참조)

 동정 마리아도 자신을 "

주님의 종" (루가 1, 38 참조)

또는 "주님의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로마 1, 1; 갈라 1, 10; 필립 1, 1 참조)

또 성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린다.

 "servus(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라는

 이 단어는 어떤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원래 오느날과 같은 뜻의 고용인

또는 하인이란 개념이 없고 다만

 노예라는 뜻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 주인들은 노예가 아니면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에 의해서

섬김을 받았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을 전제하여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mancipia Christi)" 라고 칭했다.

74.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말해 온 것을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하늘과 땅에서의 당신의 영광과 능력의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로서 마리아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성인들이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속하는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서

마리아께도 속한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께서 본성적으로 가지고 계시는

권리와 특권은 은총에 의해 마리아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들의 말에 따르면

 예수님과 마리아는 똑같은 의지와

능력에 참여하시게 되며 또한 같은

 신하들과 노예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 분 중 어느 한 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은 바로

다른 분께도 바치는 것이 된다.

75. 성인들과 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보다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가득한

노예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될 수가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수단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통하셨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에 애착을 가지면,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마리아는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리아의 가장 강렬한 원의는

우리를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또 성자의 가장 강한 원의는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가

 당신께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여왕의 종이 됨으로써

보다 더 훌륭한 왕의 종이 되어

왕께 기쁨과

영예를 드리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교부들과 그들을

이은 성 보나벤투라는,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은

성모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76. 더 나아가서 성 안셀모,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와

성 보나 벤투라는 "동정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권하에 있도다"

라고 말한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는 하늘과 땅의

모후이며 주인이시므로 지상의

피조물들만큼 많은 수의 신하와

노예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많은 노예들 가운데에는

 사랑과 자유 의지로 마리아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이나 악마에게도 자발적인

 노예가 있다면 어찌 마리아에게는

 그 같은 노예들이 없겠는가?

세상의 왕들은 왕후가 생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기 소유의 노예를

가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인 왕후의 권한이

바로 왕들 자신의 영예와

권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모든 아들들 중에

가장 착한 아들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께 온갖 권한을

나누어 주셨는데 어찌 우리들이

그 어머니에게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주 예수님께서 마리아에 대해 가졌던

존경과 사랑이, 아하스에로스가

 에스텔에 대해서, 솔로몬이 바쎄바에

대해서 가졌던 것보다도 오히려

 덜 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있겠는가?

77. 아, 내가 왜 이다지도

 필요없는 말을 하고 있을까?

왜 내가 이다지도 명백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증명하려고 하는가?

만일 누가 자기 자신을 성모님의

노예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좋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오로지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마리아의 영광이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마리아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게 될 완전한

신심인 봉헌을 통해서

완전히 이렇게 되는 것이다.

78.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선행도

마음속 깊이 뿌리박고 있는

나쁜 바탕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지고 썩는다.

만일 깨끗하고 맑은 물을

썩는 물에 붓거나 좋은 술을

나쁜 술이 담긴 그릇에 넣는다면

 그 깨끗한 물과 술은 쉽게 상하여

 악취를 풍기게 된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원죄와

본죄로 더럽혀진 우리 영혼의 그릇에

하느님의 은총과 하늘의 이슬이나

하느님 사랑의 맛있는 포도주를

 부어 주신다 해도 우리의 죄가

남겨 놓은 나쁜 찌꺼기와

나쁜 바탕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선물은 쉽게 상하고

 더럽혀지고 만다.

비록 어떤 고상한 덕행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행실은 그러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완덕에 도달하려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히 깨끗하시고,

우리 영혼 안에 있는 아주 작은

더러움도 싫어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눈앞에서 내치시고

우리와 결코 일치하지 않으실 것이다.

79. 우리 자신에게서 이탈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성이 얼마나 나쁜지,

 선행을 함에 있어서 얼마나 무능한지,

모든 일에 있어서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참을성이 없는지,

은총을 받을 자격이 얼마나 없는지,

또 모든 것에 있어서 얼마나 악한지를

 성령의 비추심으로 깨달아야 한다.
누룩이 반죽으로 신맛을 띠게 하고,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속을 변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원조 아담에 의해서

완전히 죄에 물들게 되었고

러한 원죄는

우리를 변질시키고 말았다.

대죄이건 소죄이건 간에

우리 자신이 범한 죄는

용서 받았다 하더라도

아담에게서 비롯된 죄는

우리의 욕망과 연약함과

변덕성과 또 우리의 타락을

 더욱 증가시켰으며

우리 영혼 안에 죄의

나쁜 흔적을 남겨 놓았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죄에 물든 육체" (로마 6, 6 참조)

라고 불렀고, 죄중에 태어났으며

(시편 51, 5 참조) 죄로 양육되었고,

온갖 죄를 서슴지 않을 수천 가지

악에 예속되어 날마다 타락해 가고

 질병과 병균과 부패 외에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육체라고 하셨다.

이러한 우리의 육체와 결합된

영혼 역시 육체만큼이나 세속적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 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창세 6, 11-12)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정신에 있어서는 교만과 무지,

마음에 있어서는 완고한 고집,

영혼에 있어서는 연약함과 변덕성, 또

한 정욕과 반항적인 열정과 질병뿐이다

. 우리는 본성적으로 공작새보다 더

 교만하고 두꺼비보다 더 야비하고

아첨을 부리며, 염소보다 더 비열하고

수치스러우며, 뱀보다 시기심이 강하고,

 돼지보다 더 게걸스럽게 탐욕이 많으며,

호랑이보다 더 화를 잘 내고,

거북이보다 더 게으르며 갈대보다

더 약하고,

 바람개비보다 더 변덕스럽다.

 우리는 허무와 죄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하느님의 분노와 영원한 지옥밖에는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다.

80. 그러므로 무한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요한 12, 15)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어

우리 자신을 미워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다만 그렇게

해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느님보다 더 사랑받아

마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 자신보다 더 미움받아

마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81. 우리가 자신에게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어떻든

날마다 자기 자신에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자신의 능력과 육체적

관능의 활동을

단념해야 할 것이며,

무엇을 보아도 보지 않는 것처럼.

 들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또 세상 것을 사용하여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

(1고린 7, 29-31 참조)

 이것을 두고 사도 바오로는

"날마다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고린 15, 31 참조)

 만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 24)

그래서 만일 자기 자신에 죽지 않고

거룩한 신심이 결실 맺는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다 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고,

우리의 신심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며,

 우리의 모든 옳은 일들이 우리의 자존심과

우리 자신의 의지로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어떠한 큰 희생이나

공로도 하느님의 마음에는 들지 않게 되므로

우리는 죽을 때에 아무런 공로도 없이

 빈손으로 하느님 대전에 나서게 될 것이며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의

 불을 지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순수한 사랑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

 (골로3, 3) 감추어져 있는

 영혼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82.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께 대한

 모든 신심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고

으뜸으로

성화시키는 것으로서 위에서 말한

 "내적인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신심을 선택해야 한다. 그 이유는

"반짝이는 것이라고 해서

전부 금이 아니며,

달콤한 것이라고 해서

전부 꿀이 아닌" 것처럼

쉽게 행할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성화의 방법이라고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있어서 빠르고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비결이

있는 것처럼 초자연계

(은총의 세계)

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비워

하느님으로 가득 채우고

완덕에 나아가기 위한 보다

 더 쉬운 은총의 비결이 있다.
내가 차후에 말하려는 그 신심은

 많은 신자들이 아직 모르고 있고

 극소수의 신심 있는 신자들만이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이처럼 은총의 한 비결이다.

이 신심의 실천을 시작하기 위해서

 셋째 진리의 결론인

 넷째 진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