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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0.29 주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수레바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8 조회수1,946 추천수2 반대(0) 신고




가해 연중 30주일, 마태 22,34-40(17.10.29)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수레바퀴

 

바리사이인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22,36)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인데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22,37-39)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문자에 갇혀있는 계명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 구원,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두 수레바퀴에 관하여 새롭게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순례마차의 두 수레바퀴인 셈입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은 613개의 율법조항을 만들어내면서 본래의 정신을 문자에 가둬버렸지요. 그 결과 율법은 사람을 구속하는 굴레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바로잡으시려고 이웃 사랑 또한 하느님 사랑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선언하시 것입니다. 이로써 형제자매들 안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보고 모두가 존엄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이끄십니다. 왜 나약하고 허물이 많으며 때론 증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 이웃을 하느님처럼 사랑해야 할까요? 그것은 오직 '하느님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은 내 밖에서 하느님 사랑을 발견하는 일종의 성사입니다. 내 밖의 사람들 안에 계신 주님과의 만남이 이웃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수평적 사랑’이요 ‘사회적 사랑’입니다. 목숨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사랑으로 창조되고 하느님의 얼을 품고 있는 동료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까닭은 하느님께서 동료 인간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이지요. 하느님 사랑을 ‘치사랑’이라고 한다면, 이웃 사랑은 ‘동료 인간에게 눈길 돌리기, 공감하기, 공유하기, 연대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웃의 가난과 소외, 인권 침해, 부당해고, 착취, 그 밖의 온갖 고통에 함께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

나아가 예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둘은 이렇게 영원한 행복을 향해 가는 ‘영혼의 두 수레바퀴’입니다. 둘 중 하나가 멈춰버리면 내 영혼의 수레는 제자리에서 맴돌다 썩고 말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1요한 4,19) 우리도 그분을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하며 그 사랑을 되돌려드리도록 힘씁시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도록 서로 사랑합시다(1요한 4,12). 이렇게 온전한 하느님 사랑과 열정적인 이웃 사랑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행복을 부르는 수레를 타고 하느님을 향해 순례하는 나그네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미지근한 믿음과 열정 없는 사랑, 동료 인간에 대한 무관심은 수레에서 바퀴를 빼버려 멈추게 해버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온 마음을 다하여 미치도록 하느님을 사랑하고,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동료 인간을 품어주고, 기르고, 기다려주고, 참아줌으로써 행복한 순례를 계속합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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