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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29 - 가해 연중 제30주일 복음 묵상 -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9 조회수1,46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10 29 () 가해 연중 제30주일 복음 묵상


탈출기 22,20-26
테살로니카 1 1,5-10
마태오복음 22,34-40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님 (171029)


<
제일 큰 계명 >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6-39)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무엇이 다를까요하느님의 본질이 사랑이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어떠한 사랑을 의미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마태오 복음 25 31절에서 46절의 최후의 심판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잘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중요한 것과 급한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을 먼저 합니까? 하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요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급한 것과 중요한 것은 나의 주관적인 판단의 요소입니다이 주관적인 판단을 하느님의 입장으로 바꾼다면 그 답은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나의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제일 큰 계명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마찬가지 입니다. 나의 삶의 주인이신 분의 생각으로 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가장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안에서의 계명은 수동적인 수행의 것이 아닌 능동적인 실천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로 실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실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율법교사의 제일 큰 계명에 대한 질문에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이 두 계명은 서열의 개념으로 첫째로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중요함을 강조하십니다.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와 우리의 이웃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서 구체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각납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이야기 다음에 착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루카 10,29-37)가 나옵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에 대한 율법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의 골자는 바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바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참 이웃은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마태 25,31-46)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바로 세상에서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하고 병든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 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고려하면 바로 우리의 이웃인 가난하고 소외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 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 1 4,19-21절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19-21).” 는 말씀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습니다.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제 37,6).”는 말씀을 읽고 또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아야지 살 수 있습니다. 그냥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느님의 영을 받지 않고서는 산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생명의 영을 받아야 하고 그 영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나의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한 주간이기를 희망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님 (17102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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