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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이 참된 행복을 / 연중 제30주일 가해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9 조회수1,603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 물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답하셨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게 가장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같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거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있다.”(마태22,35-40 참조)‘

 

사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실현되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으로 완성된단다. 이 둘은 따로 구분할 수 없는 한 몸과 같은 것이라나. 그래도 이것을 따로 떼어 하느님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웃 사랑을 떼어 놓고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생각이나 말로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한다고 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하느님이 보여야 한다. 깨끗한 마음일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 교회가 가르치는 윤리적 질서를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거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 삶의 표현 방법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초세기에 지향한 길은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끔 세상에서 이탈하는 것일 게다. 도를 터득하려고 속세를 떠난다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가 가진 공통적인 방법이고, 가톨릭교회의 초기 수도자들이 택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을 거쳐, 진정한 완덕의 길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일 수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세상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에 대한 기도와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허울뿐이리라. 신앙생활로 이루려는 도 하느님 만남과 그분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 우리 이웃들과 만남으로 이루어질 게다. 그래서 삶은 바로 외적인 인간관계들의 원천이요, 힘이 되는 것이리라.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려고 하느님만을 생각하려고 잠시 이웃들과 떨어져 지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일상에도 리듬이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기도와 활동의 리듬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만나는 삶이다. 기도는 활동을 지향하고, 활동은 기도로 우리를 이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두 가지 계명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조화일 게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생활의 삶에서 이러한 윤리적 기초가 무너져 있으면 아무리 교회에 봉사하고 이웃을 사랑해도 내적으로 평화와 기쁨을 잃게 될 게다. 반대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아도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이 없으면 삶의 의미와 보람이 일상에서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짐을 지우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누리는 삶에 참된 행복에 가져주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가장 큰 계명,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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