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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29.강론."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올리베따노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29 조회수1,276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 22,34-40(연중 30 주일)

 

가을이 익어가는 10월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말씀의 주제는 우리 삶을 익어가게 하는 사랑' 입니다이 세상에서 사랑보다우리 인간을 익어가게 하고 변화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1독서>는 약한 자에 대한 사랑입니다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 사랑의 대상이지만특히 약한 자들곧 병든 자헐벗은 자과부고아 등이 하느님 사랑의 초점이 됩니다.

그것은 마치가정에서 건강하고 튼튼한 자녀보다 병들거나 불구된 자녀에게 부모의 관심이 더 먼저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혹 누가 불구된 자녀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면부모의 가슴이 더 아프고 더 쓰린 것과 같습니다.

사실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타난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의 뜻에는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분곧 울부짖는 백성들과 꼭 함께 하시는 분이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자유와 해방(1986)이란 관점에서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사랑을 신학의 기본입장,기본정신으로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밀접하게 연결시키십니다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요자매들인 까닭입니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나 딸을 미워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또한 우리는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니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형제에게 대한 참사랑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제 눈으로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으로 보지도 못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4,20)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데 묶으셨습니다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자신을 주신 하느님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또한 진정 하느님을 사랑한다면하느님께서 주신 자신과 타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진정한 자기 사랑은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과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신에 대한 존귀함에서 오며,자신에 대한 존귀함은 하느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사랑의 계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새로운 변혁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그것은 근본적으로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아니애시 당초 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회문헌<새 천년기>에서는 친교의 영성에 대해서 다루면서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친교의 영성을 삼위일체의 심오한 신비체 안에서타인을 나의 일부인 사람들로 생각하고 형제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을 나를 위한 선물로 여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형제들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형제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지니게 되고형제들의 바람과 요구를 깊이 공유하며,깊고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한 생명이 되고한 아버지 안에 한 형제자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의 아픔은 바로 내 자신의 아픔이 되고이웃이 곧 나 자신이 됩니다마찬가지로 이웃이 곧 하느님이요하느님이 곧 이웃이 됩니다본당신부에게는 본당신자들이 하느님이요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이 됩니다남편에게는 아내가 하느님이요저에게는 저희 공동체 식구들이 하느님이요지금 이 자리에서는 있는 여러분이 저의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야비로소 이웃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이 되어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그래서 이웃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바로 한 몸으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사랑이 됩니다그리하여 형제 사랑이 진정한 하느님 사랑이 되고하느님 사랑이 진정한 자기 사랑이 됩니다사랑은 한 생명이 되고하느님은 사랑이 됩니다.

이처럼 사랑의 계명은 새로운 관점새로운 사고와 인식의 틀을 요구합니다그것은 새로운 사랑에로의 전환입니다. ‘가 중심인 이웃 사랑이 아니라바로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을 사랑하는 이웃 사랑이 아니라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혁명입니다복음은 분명 하나의 혁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복음서는 한 권의 혁명서인 것입니다사랑의 혁명선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한 강론(2014,11,1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혁명가가 아니라면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혁명가가 되어야 합니다참으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은 우리를 혁명가가 되게 만듭니다.”

 

그러니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뒤집어진 사랑의 혁명가들인 것입니다그리고 이 사랑의 혁명은 변화와 실천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어 집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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