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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1030 -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30 조회수1,05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10 30 () 가해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Monday of the Thirtieth Week in Ordinary Time

로마서
8,12-17 / 에페소서 4,32-5,8
루카복음 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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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8,12-17

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Reading 1


Rom 8:12-17 


Brothers and sisters, we are not debtors to the flesh, t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For if you live according to the flesh, you will die, but if by the spirit you put to death the deeds of the body, you will live.

For those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For you did not receive a spirit of slavery to fall back into fear, but you received a spirit of adoption, through which we cry, "Abba, Father!"
The Spirit himself bears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and if children, then heirs, heirs of God and joint heirs with Christ, if only we suffer with him so that we may also be glorified with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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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4,32-5,8

형제 여러분,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3
성도들에게 걸맞게, 여러분 사이에서는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 4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처럼 온당치 못한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감사의 말만 해야 합니다.
5
이것을 꼭 알아 두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받을 몫이 없습니다.
6
여러분은 어느 누구의 허황한 말에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그러므로 그런 자들과 상종하지 마십시오.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Reading 1


EPH 4:32
?5:8

Brothers and sisters:
Be kind to one another, compassionate, forgiving one another as God has forgiven you in Christ.

Be imitators of God, as beloved children, and live in love, as Christ loved us and handed himself over for us as a sacrificial offering to God for a fragrant aroma.
Immorality or any impurity or greed must not even be mentioned among you, as is fitting among holy ones, no obscenity or silly or suggestive talk, which is out of place, but instead, thanksgiving.
Be sure of this, that no immoral or impure or greedy person, that is, an idolater, has any inheritance in the Kingdom of Christ and of God.

Let no one deceive you with empty arguments, for because of these things the wrath of God is coming upon the disobedient.
So do not be associated with them.
For you were once darkness, but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Live as children of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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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Gospel


Lk 13:10-17

Jesus was teaching in a synagogue on the sabbath.
And a woman was there who for eighteen years had been crippled by a spirit; she was bent over, completely incapable of standing erect.
When Jesus saw her, he called to her and said, "Woman, you are set free of your infirmity."
He laid his hands on her, and she at once stood up straight and glorified God.
But the leader of the synagogue, indignant that Jesus had cured on the sabbath, said to the crowd in reply, "There are six days when work should be done. Come on those days to be cured, not on the sabbath day."
The Lord said to him in reply, "Hypocrites! Does not each one of you on the Sabbath untie his ox or his ass from the manger and lead it out for watering? This daughter of Abraham, whom Satan has bound for eighteen years now, ought she not to have been set free on the sabbath day from this bondage?"
When he said this, all his adversaries were humiliated; and the whole crowd rejoiced at all the splendid deeds done by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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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30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치료의 의미를 넘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허리가 굽어 병고에 시달리던 여인은, 예수님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장애는 단순한 육체적 어려움만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회당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데도 늘 소외를 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가까이 부르시고, 손을 얹어 치유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불러 그녀의 육체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온전히 되돌려 주십니다.
반면 회당장은 사회적 종교적 명성이 높았음에도 마음이 굽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의 굽은 마음은 여인의 굽은 허리보다 더 딱딱해서 예수님의 치유를 오히려 율법의 잣대로 판단합니다. 겉은 멀쩡한 그가 오히려 예수님께 “위선자”라는 질책을 받는 이유입니다.
인간의 고통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이가 고통을 겪을 때는 단순한 하나의 현상으로 보이지만, 내가 고통을 겪을 때는 그 고통이 내 인격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눈은 바로 우리 존재 자체를 괴롭히는 그 고통을 꿰뚫어 보시며, 우리가 온전히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연민과 공감의 마음입니다. 허리가 굽은 외적인 고통은 예수님의 치유의 대상이 되지만, 마음이 딱딱하게 굽은 것은 하느님의 자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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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24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기념일)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한 여인을 치유하십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열여덟 해란 긴 기간을 허리가 굽어 몸을 펼 수도 없이 살았다면, 그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갑니다.
치유와 기적은 하느님 자비의 결과이고, 그 자비는 ‘측은지심’, 곧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누려야 할 인간의 본디 모습을 회복시켜 주시는 ‘통애’(痛愛)에서 시작됩니다. ‘통애’(痛愛)란 말 그대로 ‘아프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공감하면서 상대방을 향해 먼저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의 행위[]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처받고 버림받은 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통애’를 말씀으로, 삶으로 세상에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병마에 시달리던 이 여인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할 힘조차 없이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치유를 청하기도 전에 먼저, 그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그녀의 보속의 삶에 맞갖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여인의 마음과 정반대로,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를 인간의 규범과 원칙에 가두려는 회당장의 위선을 질책하십니다. 안식일에 자기의 동물들에게는 먹이를 먹이면서도,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인이 사탄에 묶여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분명히 물으십니다.
자비의 희년을 지내면서 자비를 입은 우리는 자비를 베푸는 삶에 초대되었습니다. 자비의 실천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 안에서 살아가며, 감사의 말만 하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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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26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십계명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계명으로 나눌 때, 안식일 준수는 보통 하느님에 대한 계명으로 분류되지만, 안식일 계명에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당신께 축성된 날로 지내라고 하시면서, 아울러 이웃을 돌보라고 명하십니다.
탈출 20,8-10은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렛날에는 쉬셨다는 것을 근거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법을 지키는 주체는 자유민이고 가장인 ‘너’입니다. 가장이 가족과 일꾼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신명 5,12-15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음을 강조하시고 안식일 계명을 지시하시는데, 탈출기와 비슷하게 노동을 금하시면서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이와 같이 안식일 계명은 하느님의 창조와 이집트 탈출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주간의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라는 규정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인권도 존중할 것을 명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가장이나 고용주가 자기에게 딸린 이들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의 회당장은 짐승들의 처지는 안쓰럽게 생각하여 배려하면서도,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시달리면서 처절하게 싸워 온 여자를 안식일에 사탄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치유 행적을 단죄하는 이율배반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보다 제도를 더 사랑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이 여인의 병을 안식일이 아닌 다음날 고쳐주실 수 있으셨겠지만, 오늘 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를 내일까지 연기하지 않으셨다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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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27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 복음은 종교적 삶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오랜 병고에 시달리던 여인을 가엾이 여기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치유하시자, 종교 지도자인 회당장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가 종교적 경건을 훼손했다고 분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선자’라고 강하게 비판하십니다.
이러한 이들은 외적인 계율과 자신을 경건하게 ‘보이게 하는’ 행동에는 철저하지만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의 실천에는 무심합니다. 위선의 밑바탕에는 이기적인 자기애가 자리합니다. 자신의 위선을 바라보지 못하는 종교적 실천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보호하는 방어벽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종교적 삶’은 사랑을 찾고 바라며 그 길을 걷는 삶입니다. 참된 경건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굳은 의지입니다.
미국의 제임스 마틴 신부는 ‘영신 수련’에 대한 안내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에서 종교적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초대합니다.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확고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우리의 상상력은 사로잡히고, 자신이 하고 있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 저녁이나 주말마다 하는 모든 일에서 비통함이나 기쁨, 감사의 감정 등을 느끼게 됩니다. 당신을 기쁨과 정으로 가득 채우거나 때로는 울게 만드는 것도 바로 사랑이 하는 일이지요. 사랑에 빠지십시오. 사랑을 지켜 나가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모든 일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을 본받는 삶이라고 일깨워 줍니다. 우리의 신앙과 종교적 실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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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28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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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29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려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회당장과 안식일 논쟁을 하시게 됩니다. 병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께 병을 고쳐 주십사고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으로 고통 받는 한 인간의 가엾은 처지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병이 치유된 여인은 사람들 앞에 똑바로 서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녀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 한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은 것입니다.
하지만 회당장은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고도 율법을 내세워 예수님께 따집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에는 안식일에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 것은 생업이 아니고 날짜를 따져서도 안 됩니다. 병을 고쳐 주는 것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여인처럼 잔뜩 움츠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물리적인 이유나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살아갑니다. 경제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열등감도 그러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그들의 움츠린 허리를 펴게 하여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건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살리고 일으키는 데에 굳이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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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24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들을 종종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 눈에는 유다인의 전통과 율법을 자꾸만 흔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그들 편에서는 예수님을 미워하고 적대감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보란 듯이 안식일에 사람들을 치유하시는지요?
유다 사회의 율법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는 안식일 규정이 가장 잘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안식일에 치유하시는 것은 율법의 본래 정신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창세기 말씀처럼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의 모든 일을 마치고 복을 내리며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창세 2,2 참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특히 안식일에 병마에 시달리는 여인을 치유하시는 것은 안식일이 은총의 날이며 삶의 멍에에서 풀려나는 날임을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미사를 참석하는 것도 계명이나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날이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날이기에 그분께서 이루신 부활의 은총과 복을 누리고자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의 모든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삶의 힘겨움에서 벗어나 하느님 안에서 쉬는 시간이 주일입니다. 하루 내내 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공기 좋은 데 놀러 다닌다고 해서 잘 쉬는 것은 아닙니다. 세속의 온갖 혼잡함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침묵 속에 기도하며 ‘영적 쉼’의 시간을 가질 때 진정한 쉼이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느님 안에서 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도 뒷날의 ‘영원한 쉼’의 날을 미리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나라가 낯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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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25)


바오로 사도는 불륜을 저지르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 숭배자라고 말합니다.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받을 몫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황한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런 자들과 상종하지도 말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몹쓸 병에 걸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여인을 병마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오히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다고 주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주님께서는 그 회당장과 같은 자들을 향하여 ‘위선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위선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말한 바로 그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때와 장소가 필요치 않습니다. 자비와 자선을 베풀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건을 따지고 경우를 살펴서 베푸는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체면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면이나 조건을 따진다면,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행동, 하느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적이고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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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26)


마을 뒷산에 ‘열 개의 거울’이 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안을 들여다보고는 신기해합니다. 자신을 닮은 강아지들이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는 눈을 찡긋합니다. 그러자 열 마리의 꼬마 개들이 눈을 감으며 웃어 줍니다. ‘멋진 친구들이군.’ 강아지는 반가워합니다.
또 다른 강아지가 ‘열 개의 거울’이 있는 집을 들여다봅니다. 그는 화가 나 있습니다. 안을 보는 순간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열 마리의 작은 개들이 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아지가 앞발을 내지르자, 그들도 발을 굴립니다. ‘기분 나쁜 녀석들이군.’ 강아지는 홱 돌아섭니다.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거울입니다. 내 모습을 비춰 줍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웃으면 그들도 웃고, 내가 화내면 그들도 화냅니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복음의 회당장은 예수님께 불평을 드러냅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예수님의 질책에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허리가 굽었던 여인은 몸을 떨며 감격해합니다. 여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안식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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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27)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청중 속에는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허리가 심하게 굽어 몸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가까이 부르시고는 기적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그러시고는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여인은 허리를 펴고 곧게 섭니다. 자신도 모르는 힘을 느꼈던 것이지요. 놀란 여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봅니다. 갑자기 회당 안은 술렁임으로 차오릅니다. 누구라도 당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 준다고 투덜거립니다. 그 역시 18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살았던 여인의 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에겐 율법 준수가 더 소중했습니다. 안식일이 아닌 날, 얼마든지 병을 고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기적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은총입니다. 굽은 허리 때문에 숨어 지냈던 여인이었지만 기적을 체험합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회당을 지키며 말씀을 돌보는 것이 직업이었던 회당장은 꾸중을 듣습니다. 기적을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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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29)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한 여인은 십팔 년 동안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녀에게는 안식일도 일상의 나날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쉬어야 한다는 것은 본인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회당에 들러 사람들을 만나고 기도하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안식일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낫게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여인을 붙잡고 있던 병마를 한마디 말씀으로 몰아내셨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안식일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살아 있는 은총을 만난 그 여인이야말로 어떤 율법 학자보다 더 깊이 안식일의 해방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신 행위에 분개하며 군중에게 말하였습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회당장의 이러한 태도에 예수님께서는 분노에 가까운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모르고 있는 회당장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주일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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