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30.강론."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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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10-30 | 조회수1,18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루카 13,10-17(연중 30주 월)
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세상의 고생과 무거운 짐과 질병으로 허리가 굽힌 채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살아내야 하는 힘겨운 일과와 주변의 평가와 눈치를 받으며, 허리를 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땅만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은 여인’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그 여인을 땅을 향해 굽어있어 하늘의 은총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우리처럼, 세속의 짐에 짓눌려 있는 영혼이었습니다.그런데,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고 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새로운 창조를 이루십니다. 당신이 주는 해방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제 여인의 영혼이 다시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굽은 허리가 펴진 것입니다. 바로 서서 걷게 된 것입니다.머리 위 하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치유를 간청하거나 믿음을 고백했던 것도 아니었지만,예수님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과 안수로 병을 고쳐주셨고, 그 여자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 나오는 ‘3년 동안 열매를 달지 못한 무화과나무’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직도 미처 열매 맺지 못하고 기 꺾이고 풀 죽어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셨습니다(루카 13,6-9).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허리가 굽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당신이 주는 해방을 맛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가슴을 활짝 펴고, 우리 주님을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대한 분노를,안식일에 몰려든 군중들에게 뒤집어씌워 율법위반으로 단죄합니다. <신명기>(5,12-15)와 <탈출기>(20,8-18)에 따라 안식일에 노동할 수 없다는 구실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여자가 한 일은 치유를 받았을 뿐, 노동을 한 것은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활동도 말씀과 안수 밖에 없었고. 치유자체는 하느님의 권능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회당장은 치유를 하느님이 이루신 해방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 노동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치유를 하셨지만, 회당장은 그것을 율법위반으로 간주했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탈출기>(20,8-11)에 따르면, 선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멈추고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곧 안식일은 장차 있을 휴식의 표상으로, 죄의 짐을 지지 말고 선행을 쌓아 미래의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실은 안식일의 뜻을 알지 못하였던 회당장이 병마에 묶여있던 여인처럼 문자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비난하기 위한 구실이었던 것입니다. 곧 그가 비난하는 진짜 이유는 안식일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찬양받는 것을 보고 질투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속마음을 숨기고 구실을 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선자라고 하시며 질책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루카13,16)
이처럼, 유대인들이 안식일이더라도 가축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날인 ‘안식일’에 아브라함의 병든 딸을 고쳐주시는 것을 당연한 일,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 그것은 하느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의 정신에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통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실현하시고,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 바로 그 일 말입니다.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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