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1031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30 조회수93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10 31 () 가해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Tuesday of the Thirtieth Week in Ordinary Time

로마서
8,18-25 / 에페소서 5,21-33
루카복음 13,18-21

 

-------------------------------------------------

 

 

1독서 (홀수 해)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8,18-25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Reading 1


Rom 8:18-25


Brothers and sisters:
I consider that the sufferings of this present time are as nothing compared with the glory to be revealed for us.
For creation awaits with eager expectation the revelation of the children of God; for creation was made subject to futility, not of its own accord but because of the one who subjected it, in hope that creation itself would be set free from slavery to corruption and share in the glorious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
We know that all creation is groaning in labor pains even until now; and not only that,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we also groan within ourselves as we wait for adoption,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For in hope we were saved.
Now hope that sees for itself is not hope.
For who hopes for what one sees?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see, we wait with endurance.


 

-------------------------------------------------

 

 

1독서 (짝수 해)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5,21-33

형제 여러분,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33 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Reading 1


EPH 5:21-33

Brothers and sisters:
Be subordinate to one another out of reverence for Christ.
Wives should be subordinate to their husbands as to the Lord.
For the husband is head of his wife just as Christ is head of the Church, he himself the savior of the Body.
As the Church is subordinate to Christ, so wives should be subordinate to their husbands in everything.
Husbands, love your wives, even as Christ loved the Church and handed himself over for her to sanctify her, cleansing her by the bath of water with the word, that he might present to himself the Church in splendor, without spot or wrinkle or any such thing, that she might be holy and without blemish.
So also husbands should love their wives as their own bodies.
He who loves his wife loves himself.
For no one hates his own flesh but rather nourishes and cherishes it, even as Christ does the Church, because we are members of his Body.

For this reason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be joined to his wife, and the two shall become one flesh.

This is a great mystery, but I speak in reference to Christ and the Church.
In any case, each one of you should love his wife as himself, and the wife should respect her husband.


 

-------------------------------------------------

 

 

복음


+ 루카복음 13,18-21

그때에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Gospel


Lk 13:18-21

Jesus said, "What is the Kingdom of God like? To what can I compare it? It is like a mustard seed that a man took and planted in the garden. When it was fully grown, it became a large bush and the birds of the sky dwelt in its branches."

Again he said, "To what shall I compare the Kingdom of God?
It is like yeast that a woman took and mixed in with three measures of wheat flour until the whole batch of dough was leavened."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31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작은 씨앗 안에서 큰 나무를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감각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잠재력이 금방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에 대한 우리의 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통계가 알려 주는 숫자나 양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은 어려운 박해 시기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피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교회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내가 이웃과 나누는 사랑도 말이나 선물이 주는 외적인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어려운 시절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내적인 교감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하늘의 새들이 깃들만큼 크게 자랄 씨앗입니다. 보잘것없는 누룩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 온통 부풀어 오르는 그 가능성이 바로 하늘 나라의 출발입니다.
가능성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희망은 외적인 조건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이 희망은 나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희망으로 이미 시작되고, 우리의 투신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25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인간관계에서 가장 미묘한 부부 관계로 묘사한 바오로 사도의 비유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요즘처럼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부부로 인연을 맺고 자식을 출산하며, 평생을 신뢰하며 사는 게 힘겨운 때에, 이 여정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여정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제자로 믿음을 지키려 했던 순교자들로부터, 동정녀, 은수자, 수도자,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봉헌적 삶으로 지탱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를 떠나 이단 논쟁, 교권 투쟁, 성직 부패, 교회 분열 등은 물론 독선적인 아집과 편견에 물든 죄의 역사도 살아온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이 양면성을 끝까지 믿고 사랑하시는 마음을 바오로 사도가 부부 간에 지켜야 할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묘사하신 것은, 부부간에 서로 순종하고 존중하며, 신뢰를 지키고,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사적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처음부터 풍성한 나무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여정을 보면, 그들의 믿음은 겨자씨나 누룩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작고 보잘것없는 믿음의 씨앗을 성령의 도움으로 성장시키시어,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되고, 부풀어 오른 큰 빵을 만들어 주십니다.
교회가 그렇듯이 인간관계도 작은 일에서 신뢰를 지키고, 상대방의 숨겨진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작은 기대들을 채워 주는 희생적 사랑에서 성장합니다. 지금 내가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힘든 관계에 서 있다면, 내가 겨자씨와 누룩을 헛된 곳에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27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홀수 해 제1독서 로마서 8,18-25 참조)
바오로 사도는 확신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구원에 관한 말씀을 전할 때, 그의 굳센 믿음과 확신이 우리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앞에서 그는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고 역설하였고, 우리가 육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라 살게 되어 하느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과 현실을 보면, 과연 그와 같은 구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바오로 사도 또한 우리와 같이 미완성의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자기를 포함하여 우리가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그에 따르면 구원은 완성된 상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씨앗과 같은 희망으로 주어졌습니다. 싹이 터서 자라기 전에는 흙 속에 과연 겨자씨가 뿌려져 있는지 알아볼 수 없지요. 반죽을 발효시키기 전에는 누룩을 넣었는지 넣지 않았는지 알아볼 수 없지요. 우리의 구원도 흙 속의 겨자씨처럼, 반죽 속의 누룩처럼 세상 속에 섞여 있습니다.
하늘 나라가 완성되어 있고 지금 우리가 완전한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구원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품고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는 이미 구원의 겨자씨, 누룩이 선물로 주어져 있으며 무럭무럭 자라 거대한 나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시간과 영원의 관계를 밝혀 줍니다. ‘영광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28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29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영국 출신의 미국 배우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찰리 채플린은 젊은 시절 철공소에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사장은 그에게 빵을 사다 달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잠시 뒤 빵을 사 온 채플린은 사장에게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봉투 안에는 빵과 함께 포도주 한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게, 이게 웬 건가?” 하고 사장이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사장님께서 일이 끝난 다음에 언제나 포도주를 드시면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포도주가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 뒤 사장은 채플린의 월급을 올려 주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태도로 그를 대했습니다. 채플린은 남들이 무심코 지나친 것을 세심히 살피고 필요한 것을 채우는 데 성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은 작은 일에도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평화, 환경, 평등, 자유 등 인류의 구원과 관련된 문제는 무척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거창한 일은 작은 일의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곧 소화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주 작은 희생을 바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기서는 웃음을 주고 저기서는 친절한 말을 하십시오. 오로지 사랑을 위하여 실천하십시오. 하느님의 눈에는 하찮은 것이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느님께서는 하찮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그러한 일을 통하여 큰일을 해내십니다. 겨자씨에서 큰 나무를 이루는 지혜롭고 성실한 농부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30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복음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말씀은, 시작은 작고 보잘것없는데 결과는 놀랍다는, 시작과 결과를 비교하는 말씀입니다. 씨앗 가운데 겨자씨는 매우 작습니다. 이 작은 겨자씨가 싹이 터서 자라면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되고, 적은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온통 부풀립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수가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었고,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실 필요를 느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기에 영원무궁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교만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보잘것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세상을 이끄시는 방식입니다. 세상은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의 외형만을 바라보고 그들을 무시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보잘것없는 이들을 구원의 도구로 부르시어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누룩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 안에도 신앙의 누룩이 담겨 있는 한 우리 또한 하느님 나라의 성장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25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삶의 기본은 자신과 인연을 맺고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하여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운명처럼 엮여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믿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 삶의 기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사람들, 그들이 정말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인지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재산을 모으고 성공을 했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사랑의 관계가 깨져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기본이 무너져 있으면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잃은 삶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재물이나 사회적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한 하느님 나라의 씨앗, 바로 겨자씨는 우리 인간과 인간의 만남, 곧 ‘인연의 씨앗’입니다. 수십 억 년 우리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 나와 만나고 있는 신비스러운 인연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자라게 하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어 주는 인연, 그래서 그들의 삶에 축복이 되어 주는 인연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연의 씨앗을 물 주고 가꾸어 성장시켜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고, 한평생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운명처럼 만난 사람들과 신뢰를 잃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살았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삶일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26)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모든 부부에게도 여전히 호소력 있는 권고입니다. 부부뿐 아니라, 혼인을 앞둔 사람들도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귀담아듣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각 다른 몸이 한 몸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서로를 내어 주고 아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정 공동체는 그래서 구성원 모두가 사랑으로 뭉쳐진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해 주십니다. 너무 작고 초라하기 때문에 보는 이마다 지나쳐 버리거나 외면하기 쉬운 것이 바로 겨자씨와 누룩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미약한 존재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존중하시어, 마침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사랑의 삶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길 뿐 아니라 존중해 주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나라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27)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얼핏 보면 가루 같습니다. 그렇게 작은 씨앗이 나중에는 3~4미터 높이로 자라납니다. 봄이 되면 노란 꽃을 피우고, 작고 둥근 열매 속에는 황갈색의 씨가 들어 있습니다. 맵고 향기로운 냄새를 지닌 씨앗입니다. 그것을 가루로 만든 것이 ‘겨자’입니다.
복음에는 겨자씨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너무나 작은 씨앗이 커다란 나무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어설픈 ‘작은 믿음’이지만, 나중에는 ‘큰 믿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희망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씨앗은 작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꽃과 열매’가 숨어 있습니다. 믿음도 처음부터 강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님의 ‘힘과 사랑’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일은 ‘가꾸는 일’입니다.
믿음을 경건하게 대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기쁘게 대하려는 노력이 씨앗을 가꾸는 일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생각하지도 못한’ 체험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은총의 힘이 ‘이끄심’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 ‘큰 보답’을 받는 것이지요. 오늘은 우리에게 있었던 은혜로운 사건을 기억하며 감사드려야겠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28)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3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의 핵심은,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바뀐다는 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미한 것이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것이 되어 나타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 믿음의 씨앗에 담긴 신비입니다.
아이 적에는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주일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저 부모의 강요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서서히 깨닫는 가운데 그때의 기억과 체험이 신앙생활의 힘이 됨을 느낍니다.
모든 씨앗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꽃과 열매가 숨어 있습니다. 신앙의 씨앗도 ‘겨자씨만 한 크기’일 뿐이나 그 안에는 그리스도의 엄청난 힘과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가꾸는 일입니다. 꾸준하게 잘 가꾸면 그 씨앗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를 선물할 것입니다.

인생을 내 것이라고만 여긴다면 ‘겨자씨 한 알’에 불과한 삶으로 끝납니다. 내 뜻만을 고집한다면 결코 ‘겨자씨 수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은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