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사순 시기, 유대감을 갖고 사랑의 과제 찾아 나가자 -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기간에 회개와 보속·절제와 희생의 삶을 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자선을 실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0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40일간 이어지는 기도와 참회의 기간이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 의미를 가진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에서 준비한 기간이 40일이고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 산으로 가면서 40일 동안 단식했다. 예수님 역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다. 전통적으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사순 시기는 이마에 재를 얹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된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참회와 속죄의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다. 참회와 속죄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5주간 지낸 후 사순 제6주일에 해당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이한다.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주간인 성주간이 시작되는 시기다. 성주간 중 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는 신비를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로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목요일에는 미사의 유일성과 사제직의 일치성을 드러내는 성유 축성 미사와 성체성사 제정을 기념하는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된다. 성금요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집중적으로 기억하며 성사 거행도, 미사 집전도 하지 않는다.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구성된 수난 예식만 거행한다. 성토요일에는 예수님 무덤 옆에 머물러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제대도 벗겨진 상태이고 미사도 없지만, 곧 다가올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마침내 이뤄질 주님 부활을 기다린다. 이날은 1년 중 유일하게 시간전례 외에는 아무런 전례가 없는 날이다. 성토요일 해가 진 후,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성야 예식이 거행된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이러한 성삼일의 특별함을 살리기 위해 사순 시기에서 파스카 성삼일을 제외했다. 따라서 오늘날 사순 시기는 주일을 제외하고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정확히 40일이 아닌 38일이다. 사순 시기 전례의 특징은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기쁨을 노래하는 알렐루야와 대영광송, 사은 찬미가를 바치지 않는다. 제의는 회개를 의미하는 보라색으로 바뀌고, 성인들의 축일도 이 시기에는 삽입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 미사 전례를 통해 신자들에게 신앙을 심화하도록 이끈다.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한다. 또 하느님과 화해하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다시 결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해성사를 자주 보도록 권고한다.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사순 시기 중 모든 금요일에는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고행과 단식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이웃에 대한 자선과 나눔, 수난과 죽음 끝에 위치하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깊이 연결돼 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사목연구소장 윤종식 신부(전례학 박사)는 “특별히 올해 사순 시기에는 유대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까지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난 상황 속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의지하고 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과 지진 등 참혹한 재난이 일어나고 있어 그냥 불쌍하다는 마음만 가지고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더 의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 신부는 “이렇게 유대감을 가지고 사랑의 과제를 찾아 나가는 것이 오늘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순 시기를 보내는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2월 19일,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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