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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1 조회수1,73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제1독서 묵시 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제2독서 1요한 3,1-3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복음 마태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얼마 전에 컴퓨터 내의

자료들을 정리했습니다.

오랫동안 정리를 하지 않고

아만 놓다보니 쓸데없는

자료들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컴퓨터는 하드디스크의

용량만 크다면 얼마든지

저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별 필요 없는 것들

역시 계속해서 쌓여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 인간의 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컴퓨터처럼 검색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입력만 하면

쫙 정보가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인간의

뇌에 대해 연구한 어떤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억’을

담을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뇌는

원래가 모든 것을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특별한

기억만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기억에 남을 일이 아니라면

가치 없는 시간이라고 여겨서

기억을 담는 뇌에

저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작년 11월 1일에 어떤 일이

있는지 잘 기억하시지 못하는

분들 많으시지요?

그날 기억에 남을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뇌 과학자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뇌가 기억할만한 오늘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
기억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데,

기억할만한 것을 남겨두면

이를 통해 기억할 수 있고 그래서

기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 역시

특별한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억하게 되고,

이 기억을 통해 행복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특별한 만남의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거룩해지게 됩니다.

내 주변에 어떤 향기를

내는 것들이 있는가에 따라

내 몸에서도 그 향을 품는 것처럼,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하면

할수록 거룩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단순히 하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살고 계시는

성인들을 부러워하는 날일까요?

아닙니다. 성인들께서 주님과

함께 하면서 특별한 만남의

시간을 많이 가져서 거룩한

하늘의 성인이 되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어떤 삶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말씀해주시지요.

세상의 관점에서는 불행해보이지만,

주님과 함께 하면서 거룩한 삶을

간직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제 주님과의 어떤 특별한

기억을 만드시겠습니까?

이를 위해 형식적인 전례 참석은

 이제 그만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드러나는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 역시

우리가 피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봉사와 희생을 통해... 주님과

함께 하는 특별한

기억들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

(소크라테스)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오늘이 되세요.

"함께 하세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는 더 이상 현대사회에서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공동체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사교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오히려 사회나

 타인과의 교신을 끊고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을 통해

아픔과 상처를 너무나

많이 받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개인주의가 더욱 더

만연해집니다.

하긴 이제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고 하며,

자녀를 반드시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자그마치

 50%가 넘어선다고 합니다.

공동체를 이루기에는

개인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혼자 살기에

편한 것들처럼 보입니다.

물론 저처럼 어쩔 수 없이

독신을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구조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모습들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가 싶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드러나고 있지요.

폭력성과 함께 무관심을 통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자신의 희생만을

생각하면 절대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바로 눈앞에 뻔 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멀리 바라보면

희생 같아 보이는 행동

하나가 진정한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눈앞의 만족이 아닌,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분명해집니다.

함께하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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