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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2 목/ 하느님 안에 죽어 행복하게 사는 길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1 조회수2,573 추천수8 반대(0) 신고




위령의 날, 마태 5, 1~12ㄱ(17.11.2)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











하느님 안에 죽어 행복하게 사는 길

 

교회는 모든 성인대축일로 바로 다음 날 죽은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도록 초대합니다. 이 기도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앞에 ‘함께’ 서는 것이며, 생명과 죽음을 넘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누구든 예외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여기서 잘 죽을 수 있기를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들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욥은 자신을 계속 비난하는 친구들의 말에 몹시 괴로워하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고통에 대해 하소연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였던지 “내 이야기를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욥기 19,23) 하고 탄식합니다. 그는 극도의 고통과 싸우며 멸시를 겪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 때문에 끝까지 죽음을 넘어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19,25-27).

하느님은 의미이시고 희망이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인간은 희망의 존재이며, 그리스도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고 그 사랑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명확히 드러났기에(로마 5,6-8)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5,5).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고통을 견뎌내고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우리다운 응답은 ‘지금 여기서 죽음으로써 사는 것’ 뿐이지요. 하여 살아가는 동안 매순간 잘 죽는 그만큼 행복하다는 이 평범한 진리에 충실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참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줍니다. “영이 가난한 행복한 사람”(마태 5,3)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옴을 인정합니다. “온유한 사람”(5,5)은 권력이나 힘으로 자신의 권리나 정당함을 내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5,9)은 사랑과 용서로써 평화를 추구합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5,10)은 자신들의 순수함과 정의를 오직 하느님께 맡기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5,6)은 정의이신 하느님을 목말라 합니다. 곧 하느님의 선과 정의와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생생하게 느끼고 갈망하는 이들이지요. 모든 선과 거룩함과 평화와 기쁨의 샘이신 하느님과 함께 있음이 곧 참 행복이며 거룩함에의 길입니다.

오늘 죄중에 죽어간 이들과 전쟁과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을 포함한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울러 우리 각자도 매순간 희망이신 하느님 안에서 고통을 기꺼이 견디어내고 잘 죽기로 다짐해야겠습니다. 오해와 모욕, 핍박과 억울한 고통을 당해도 '하느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정의와 평화를 추구할 때 복된 죽음을 맞을 수 있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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