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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3 금/ 생명에 대한 사랑의 연민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2 조회수1,43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30주 금, 루카 14,1-6(17.11.3)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끌어내지 않겠느냐?"(루카 14,5)





Healing of the man with dropsy on the sabbath





생명에 대한 사랑의 연민

 

예수께서는 구원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수종 병자를 치유해주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초대해준 바리사이의 집에서 서슴없이 바리사이와 율법교사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고,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쳐주는 것이 합당한지 합당치 않은지 물으십니다(14,3). 그러나 그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14,4).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무응답은 인간 생명에 대한 무책임과 회피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인간의 존엄함이 아니라 형식적인 법규준수와 사욕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생명을 위한 사랑과 정의를 회피하며 침묵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종 병자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14,4),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14,5) 그들은 이 말씀에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창조와 계약의 상징이자 해방의 표지인 율법의 근본정신과 생명을 향한 사랑의 연민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살아가는 매순간이 하느님의 경이로운 생명과 창조의 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열린 마음으로 생명의 연민을 드러내고 나누도록 힘써야 합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분과의 친교를 이어갈 때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찰 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문자화된 율법의 감옥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문자가 아니라 내 마음에 대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 우리 마음에 생명의 연민이 싹트게 될 것입니다. 생명도 사랑도 없는 문자에 나를 맡겨버린다면, 결국 하느님 부재를 불러오고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말 것입니다. 내 안에 하느님 없음이 곧 죽음입니다. 마음을 닫고 생명의 연민이 없을 때 비인간화와 반생명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바리사이들과 같은 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본 독점과 자본 권력의 부당한 행사, 권력의 횡포, 집단적 소외와 갈등, 온갖 부조리와 불의 앞에서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길 바라며 침묵하며 외면하는 무딘 마음과 무책임이 팽배해 있지요.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생명의 연민을 지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 소명이요 의무입니다. 이제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과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사랑을 실천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애정어린 마음과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온갖 생명을 형제로 받아들이도록 힘씁시다.

우리 모두 깨어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생명의 연민으로 형제 자매들을 받아들이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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